brunch

함민복의 시와 산문들

브런치 북 2021 응모

by 기차는 달려가고

함민복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 이레

함민복 산문집 섬이 쓰고 바다가 그리다>, 시공사



시인은 1962년 충북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비극의 역사와 지독한 빈곤에서 도망치려 모두가 버둥거리던 산업화 시대에,

착실한 생활인으로 대한민국 발전 가도에 동승하나 싶더니.

그만 문학의 길에 온몸을 던지고 말았다.

잘 살아보자고,

모두가 돈벌이에 몰두하던 시대에 시인은,

가난을 떠나지 않고 서울과 주변 지역을 옮겨 다니며 시를 썼고.

이후 강화도에 정착했다.


함민복의 시 한 편, 한 편은 장편 소설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글은 짧고.

감정은 간결하며.

표현은 담담한데.

지극히 일상적인 단정한 언어로 시인은 우리가 내버리고 온 시절을 가만히 들려주는구나.



[눈물은 왜 짠가]


지난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 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든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 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 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눈물은 왜 짠가>,49~50쪽


아무것도 갖지 못해서.

찌는 여름날, 머물 곳 없는 어머니를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려야 하는 아들이 있다.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어머니는 당신은 못 드시는 설렁탕집으로 들어가신다.

고기도 못 먹이는데 고기 국물이라도 아들에게 먹이고 싶은 가난한 어머니.

설렁탕집주인은 무심한 듯 고기 국물을 더 주고,

깍두기도 한 종지 더 갖다 놓는다.

처량한 당신 신세보다도 막막한 아들 처지가 더 마음 쓰이는 어머니와,

어머니의 지극한 마음에 설렁탕집주인의 따순 마음까지 알아챈 아들은.

그저 꾸역꾸역 국물이나 삼킬 수밖에.

꿀떡 넘겨버린 설렁탕의 짠맛이 반드시 슬픔만은 아니리라.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 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눈물은 왜 짠가>,163~164쪽


안 그래도 어렵게 사는 형은 전세보증금을 빼서 뒤늦게 대학 다니는 동생 등록금을 댔나 보다.

사글세로 옮겨가는 온통 서글픈 살림살이에 동생은 한없이 미안한데

이사를 도왔다며 동생에게 자장면을 사주는 가난한 형.

송구하고 안타까워 마음이 괴로운 형제는 서러운 심정을 토해내는 대신 그저 덤덤하고.

슬픔으로 몸을 채운 시인은 바지런한 시장통 중국집 젊은 부부의 희망만 이야기한다.

고되고 고달픈 캄캄한 나날이지만 어디선가 희망은 자라고 있겠지.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을 받기만 해서 가슴에 대못이 박히기 전에.

하, 하, 핫!

마음 놓고 웃을 날이 늦지 않게 꼭 오길요.


시에는 분명히 초라한 가난뿐인데

애틋하고 절절한 가족 사랑이 길게 여운으로 남는다.

부모와 자식과 형제는 서로의 고단함을 안타까워하며 마음을 다해 서로를 보듬고,

자신의 고달픔보다도 부모가, 자식이, 형제가 겪는 고생으로 더 슬프다.

그렇게 주고받은 사랑과 연민을 그득 품은 순하고 맑은 시인은,

이렇게 착한 시를 쓰네.



[긍정적인 밥]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섬이 쓰고 바다가 그리다> 98~99쪽


시 한 편 원고료는 허허, 삼만 원.

시집 한 권은 달랑 삼천 원.

그 시집으로 시인에게 돌아오는 몫은 겨우 삼백 원.


시인은 고달픈 시인의 생활을 푸념하는 대신.

시 한 편으로 쌀 두 말.

시집 한 권으로 국밥 한 그릇.

시집 한 권 인세로 굵은소금 한 됫박이라는,

통념을 뛰어넘는 귀한 가치를 말한다.

시와 쌀과 국밥과 굵은소금.

모두 소중하기 짝이 없는데.

왜 우리는 이들을 하찮게 취급하는가.



강화도에서 시인은 잘 살아가는 것 같다.

최근에 나온 산문집 〈섬이 쓰고 바다가 그리다〉에는 시인의 강화도 초기 생활이 주로 담겨 있는데,

이웃을 도와 함께 바다 일도 하고, 트럭에 숭어를 싣고 팔러 다니기도 하셨단다.(51쪽)

이웃들은 갓 잡아온 생선으로 회를 떠서 시인을 부르고.

술상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동네일도 함께 한다.

여러 집 어울려 김장하는 날 이웃집 아주머니는,

“시인 선생, 김치 한 통 줄게. 그릇 하나 가져와. 어려워 말고.”(17쪽) 하신다네.


그리고 육지 사람인 시인에게 이웃들은 바다의 생태를 알려준다.

뻘에는 밭과 길이 있다. 바닷가 사람들은 뻘길로 들어가 뻘 밭에서 조개를 캐고 낙지를 잡으며 살아왔다.(214쪽)

온통 진창으로 보이는 뻘에는 그래도 사람이 다니기 좀 더 쉬운 다소 단단한 바닥이 있고.

빠져나오기 힘들게 다리가 푹푹 꽂히는 질척 질척 깊은 뻘이 있단다.


시인이 손꼽는 강화도 벚꽃 명승지!

1, 고려 궁지 끼고 북문 오르는 길가

2. 전등사 근처 강남 고등학교 교정

3. 함허동천에서 정수사 넘어가는 길에서 바라보는 마니산 산자락의 벚꽃


늦게 피는 산벚꽃은 연초록 나무 이파리들과 어우러져 파스텔화를 그려놓는다. 이 은은한 그림은 이상하게도 마음을 술렁여준다.

(〈섬이 쓰고 바다가 그리다>136쪽)



가난을 힘겹게 견디면서도 시인은 가난을 벗어나겠다고 함부로 발버둥 치지는 않는다.

가는 길이 온당해야 한다는 다짐이겠지.

우리는 비참한 역사와 비극적인 전쟁으로 오랫동안 힘들었다.

그 시절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도망치듯 서로를 밀쳐내면서 무작정 앞으로만 달려 나갈 때,

시인은 우리가 뒤에 내버리고 온 괴로움과 상처투성이,

초라하고 슬픈 폐허를 서성인다.

무너지고 쓰러진 황폐한 폐허더미에 몸을 굽혀

반짝이는 순수와 따듯한 인정의 사금파리 조각들을 찾아낸 시인은.

두 손에 소중하게 담아서는

한껏 각박한 우리에게 조용히 손바닥을 내미네.


고마워요, 시인.

탐욕과 비열함이 날뛰는 어지러운 속세에.

나지막하고 잔잔한 시인의 순한 시가 과연 힘이 될 수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의외로 시의 힘은 길고 깊어서.

봄바람처럼 살랑살랑 때마다 우리를 찾아와

딱딱하고 거친 마음을 살금살금 흔들어주겠지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 책에 관한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