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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만난 사람들

마음에 남은 풍경들

by 기차는 달려가고

원래 일정보다 제주도에 오래 있게 됐다.

입고 온 옷 한 벌에 갈아입을 옷 한 벌.

속에 입은 얇은 티셔츠는 빨아 입지만 다른 옷은 탈탈 털어 바람에 말리면서 버티고 있다.

이런.

앞으로 며칠 더 이리 지낼 예정임.



♤ 김대건 신부님


고산리를 가다가 어디서 내릴까, 하던 차에

길가 성당 앞에 버스가 서길래 덜컥 내렸다.

지역에 비해 성당 규모가 커 보였는데 담벼락에 소개글이 붙어 있었다.

김대건 신부가 상해에서 신부 서품을 받고 목선을 타고 귀국하던 중,

풍랑을 만나 42일을 거친 바다에서 떠돌다 근처 용수 포구에 닿았던 거였다.

그래서 한동안 고산 부근에 머물며 미사를 집전한 기념으로 일대의 천주교 관련 장소들을 잇는 김대건 신부길이 조성되어 있다.


김대건 신부 생가터에 지은 당진 솔뫼성지에 다녀온 기억이 떠오르고.

장장 42일 풍랑에 떠밀리는 작은 나무배에서,

분명히 식량이나 식수도 부족했을 텐데.

고난뿐이었던 25년의 짧은 생애를 떠올리니 울컥하는 심정이 되었다.

올해가 신부님 탄생 200년이다.

자신이 믿는 진리에 헌신하는 힘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 화가 이중섭


서귀포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였을 자리에 한국전쟁 중 화가의 가족이 일 년 가까이 살았던 집이 있다.

서귀포 주민의 일자형 작은집 끄트머리,

원래는 헛간쯤 되는 공간이 아니었나 싶던데.

흙바닥 통로에 물 항아리를 두고 솥 걸어놓고,

그 안쪽 작은 방에서 부부와 두 아들이 머물렀단다.

1.4평 방.

가진 돈도, 노동할 근육도 갖지 못한 화가는 동네 주민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힘겹게 생활을 이어갔던 것 같았다.

당시 피난민들 사정이 거의 비슷했겠지.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예술가로서 살육의 전쟁을 견뎌야 하는 비참한 심정이라니...

1956년 병사하기까지 40년 살았더라.

너무나 젊은 나이.



♤ 노인들


지방을 대중교통으로 여행하다 보면 노인들을 많이 마주친다.

허리가 굽고 다리는 후들거려서 몸을 가누기 어려운,

사물이 또렷이 보이지 않는 진짜 노인들이다.

건강하지 못해도 볼 일은 생기니 비틀비틀,

그렇게 위태로운 걸음으로 외출하시는 거다.


예전에 홍성에서,

버스정류장에 유난히 노인들이 많다 싶더니 바로 앞에 정형외과가 있더군.

아침 일찍부터 근처 촌에서 하루에 두어 번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나와 치료를 받고 돌아가시는 참이었다.

지방 소도시에는 인구 규모에 비해 정형외과와 한의원이 많아 보인다.

주변에 평생 버거운 노동으로 몸이 상해 어구구 어구구, 신음이 절로 나오는 노인들뿐이니.


제주도 버스를 타보면 유난히 관광객이 많이 타는 구간이 있고.

또 지역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구간이 있다.

그분들은 정말 토박이들이어서 말씀을 알아듣기가 어렵다.

제주도의 지형, 지질, 식생은 육지와 크게 다르고.

억양도 꽤 다르다.

어휘들도 독특하지만 지명들도 참 재미나더라.

지명을 지을 때 발상의 관점이 다른 지역과 다르지 않나,

혼자 이런 추측을 해보았다.


본론으로 돌아가,

버스에서 내릴 때 지팡이를 손에 쥔 할머니가 있었다.

노인들은 움직이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자신 때문에 버스가 오래 정차하지 않도록 버스가 서기 전에 미리 나오시려 하는데.

그러다 넘어질까 걱정되는 기사는 아직 일어나지 말라고 꽥 소리를 지른다.

기사분 뜻은 알지만 곱지 않은 언성을 들어야 하는 할머니 손을 내가 붙들고 함께 버스를 내렸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온 할머니는 한참 내 손을 쥔 채로 뭐라 말해야 하나 고심하는 눈치 더니.

고맙고 고맙다고,

그 표정이 어찌나 짠하던지 먹먹한 기분이 되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누구라도 작은 도움을 주고, 또 받아서.

주고받는 도움과 친절이 자연스러운 세상이 되면 좋겠다.

어느 지방을 가든,

늘 괄시받고 소외되는 노인들에게 작은 친절을 해드리면 어리둥절,

이걸 어찌 해석해야 하나, 당황하시는 경우가 있었다.


징그럽게 고생했으면서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세상의 관심 바깥에 놓여있는 지금 대부분의 노인 세대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은 누구나 느끼리라.

하지만 가까이하여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막 답답해진다.

세상은 변했는데 그들만의 이상한 세계에 갇혀서 엉뚱한 상상으로 오해하고 분노하는 사람들.

탐욕으로 정신 나간 세력이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는,

노인들에게 젊은 세대에 대한 강한 대결의식을 조장하면서.

괘씸한 젊은 놈들에게 구석으로 밀려나지 말자고,

노인들의 위기감을 이용하는 간교한 작전이 한몫하는 것 같다는 게, 나의 짐작이다.


품어야 하는데.

살아온 시간만큼 증오와 울화가 많은 옹고집 노인 세대를 마냥 상대하기에는,

젊은 사람들도 갈 길이 바쁘니.

에휴


항구는 예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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