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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끝날 때

마음에 남은 풍경들

by 기차는 달려가고

하루 이틀 짧은 나들이와 다르게 며칠, 몇 달 여행을 하면

피로가 누적된다.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겨 들고 떨어뜨린 것이 없나,

말끔하게 정리한 방을 둘러보고는.

공항에 미리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한참을 서성이다가 마침내 귀로에 오를라면.

지나가다 거울에 비치는 꾀죄죄한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 이제 돌아가면 우선 잠을 푹 자고 미장원에 다녀와야겠구나,

일상의 나로 돌아갈 때.

여행이 끝났다.


낯선 곳에서의 고군분투를 마치고 익숙한 자리로 돌아가는 약간의 안도감.

더해서 살짝 아쉬움.

무언가를 남기고 가는 미진한 기분으로 다시 와야지, 작게 한숨을 내쉰다.



제주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있는 성당에 들러 그동안 감사했다, 기도드렸다.

이제는 고마움을 아는 나이.

좋은 날씨도, 아름다운 풍경도, 불편하지 않았던 숙소와 식사도 모두 모두 감사.

길을 물을 때 언제나 친절했던 제주도 분들.

신호등 없는 길에서 머뭇거리면 늘 차를 세우고 먼저 가라며 기다려주었던 운전자분들.

불쾌한 기억이 전혀 남지 않은 여행이었다.

바다 바로 옆에 있는 공항에서는 바다도, 한라산도 볼 수 있다.


비행기가 날아오른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데.

내가 돌아다녔던 곳들이 담겨있는 비행기의 작은 창문.


굵은 빗방울이 하늘을 가리더니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르자 맑은 구름바다가 가득하고.



돌아온 서울은 하늘이 밝았다.

대신 열 며칠 사이에 날씨는 초가을에서 겨울이 되어버렸네.


피로감으로 늙어 보이는 모습에,

혹사한 두 벌 옷에,

함부로 굴려진 가방으로 서울로 돌아왔다.

졸려.



나는 왜 여행을 떠날까?

왜 막 어디론가 떠나려 할까?

...

언제까지 내가 혼자 여행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본다.


이번 여행으로 제주도를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

길도, 도시도, 숲과 바다도,

때때로 마음에 떠올라 그리워지겠지.

그래서 제주도 지도를 살펴보다가 아직 못 가본 곳을 가리키면서,

오, 가봐야지!

그렇게 또 여행 계획을 짜리라.


여행이라니,

여행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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