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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Nov 28. 2021

책 <걷기를 생각하는 걷기>

활자로 만난 인물들

울리 하우저 지음, 박지희 옮김, 두시의 나무



나는 어릴 때부터 걷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걷는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녔다.


사학과를 가겠다고 들어간 문과대학 신입생 즈음.

역사공부를 하려면 토인비은 읽어야지?

하고 펼친 토인비의 책 처음에, (내 기억으로는),

비행기보다는 기차(가물가물, 자동차?), 기차보다는 걷기가 그 지역을 더 잘 알 수 있다, 는 뜻의 짧은 글귀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관행적으로 걸었던 신체 행위에 여러 가지 인체의 지각 활동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문득 깨달았다.

적당한 걷기는 그 동작뿐만 아니라 걷기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신체의 여러 움직임과 시각, 청각, 사유 행위 같은 보이지 않는 활동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이번  들어 걷기 유행은 세계적인 추세인가 보다.

걷기에 좋은 길들이 세계 곳곳에 만들어지고,

걷기를 위한 패션과 장비들을 광고한다.

의사들도 걷기가 건강에 좋다고 한 말씀 보태시고.

걷기에 관한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은퇴한 프랑스 언론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두툼한 세 권의  <나는 걷는다>를 꽤 재미나읽었었는데.

독일 언론인이 쓴 이 책은 자신의 도보여행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몸을 움직이지 않는 현대인의 생활을 돌아보며 전문가들의 견해를 소개한다.



50대 중반에 들어선 저자는 늘 그랬듯 자동차를 타고 도시를 지나가던 어느 날,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보았고.

문득 차를 세우고  길을 걸었다.

그날의 짧은 걷기는 마냥 한없이 걸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 종일 앉아 지내는 생활에 신물이 나고.

몸은 통증으로 경고를 발신하는 중이었다.

온몸을 움직여 숲을 걷고 강을 건너 마침내 저기 남쪽 지중해에 닿고 싶어진 북쪽 나라 함부르크 사람은,

사장을 설득해 반년의 시간을 얻어낸다.

아들이 어릴 때 쓰던 작은 배낭에 입던 옷 두어 벌을 넣고

날씨가 좋으니 어디 걸어볼까 하고 훌쩍

(47쪽) 대문을 나서는 심정으로 무작정 길을 떠난다.


나이 들어가는 저자에게는 고인물로 늙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나 자신의 변화를 위해,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위해 익숙한 것을 버리는 중이었다. 나 자신에게 새로운 열정을 불어넣고 싶었다. (32쪽)


어릴 때 보물 찾기를 하며 작은 종이쪽지를 찾아다닌 것처럼

(40쪽),

표지판을 찾으면서 남쪽으로 가리라.


걷는다는 신체의 움직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걷기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우리의 몸을 이동시키는 가장 단순한 방식이다. 신발이 없어도 걸어가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항상 변화하려는 힘과 저항하는 힘, 그리고 균형이 필요하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33쪽)


하루 종일 혼자 걷고 마주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목적지는 남쪽을 향하지만 일직선으로 돌진하는 과업이 아니다.

세상 소식에 귀를 닫고 느긋하게 걷는다.

마음이 내키면 내려온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항상 전진만하고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인생은 구불구불하고, 오르락내리락하며, 좌우로 흔들리기 때문에 재미있는 게 아닐까? 자연에 처음부터 끝까지 곧기만 한 직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138쪽)


주변을 둘러보자 울퉁불퉁한 나무뿌리, 가시 돋친 나뭇가지, 금이 간 나무껍질, 연한 새싹들이 보였다. 나무 이파리들의 색상은 그 위에 그늘을 만드는 존재로 인해 달라졌다. 빛을 적게 받는 이파리일수록 진한 녹색을 띠었다.

(42쪽)


빌헬름 부슈는  행복은 모든 길로 도망간다고 말했다. 그리고 불행이 언제든지 닥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불행이 오든 말든, 나는 이 길 위에서 충분한 행복을 차곡차곡 모으기로 했다. 불행한 시간이 오더라도 견뎌낼 수 있는 기쁨의 창고를 만들 생각이었다.

(146쪽)


오랫동안 걸으면서 저자는 인간 신체의 경이로움을 다시 확인한다.

내 몸을 받쳐주는 발이 자랑스러웠다. 뼈 26개, 관절 30개, 근육 60개, 그리고 100개가 넘는 인대와 200개 이상의 힘줄로 이루어진 발은 내 신체의 모든 조직이 잘 움직이도록 견고하게 받쳐주는 항공모함이었다. 체중이 실린 다리에서 뇌의 중심에 위치한 뇌줄기까지는 신호가 직통으로 전달된다.  

(190쪽)



내가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현대 독일인들이 살아가는 실제 모습이다.

저자는 1962년 생으로 나와 비슷한 연배인데,

그가 어릴 적 자란 소도시 생활은 마치 한 세대  이야기 같고.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결혼하지 않은 채 동거하는 부분은 미래세대 생활양식으로 보였으며.

무작정 걸어보고 싶다는 이유로 반년의 시간을 얻을 수 있는 직장 환경은 확실히 우리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나 비어버린 농촌이라든가,

50년이 채 안 되는 동안에 도시와 마을의 풍경, 인간관계 유형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소회에는 깊이 공감했다.

지구 전반적으로 지난 반 세기 동안 사람들의 생활환경은 정말 크게 바뀌었다.


우리는 그동안 생명체로서 신체의 움직임을 너무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병든 어머니를 보살피면서 절실하게 알게 된 점은 인간의 신체는 움직이도록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해가 바뀐다.

새해에는 입과 머리뿐만 아니라 신체를 활발하게 움직이는 생동감 넘치는 생활을 하리라!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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