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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r 21. 2022

<닥터 지바고>를 다시 읽으면서

끄적끄적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라는 나라에 정이 뚝 떨어진 요즘인데.

아이고, 한숨만 나오는 이 상황에서 나는 다시 <닥터 지바고>를 손에 들고 있다.

영화로 잘 알려져 이 소설을 라라와 지바고의 애달픈 사랑이야기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실 이 소설에는 사상과 인간과 시대에 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사유가 담겨있다.


책을 펼치자 예전에 읽었을 때 느꼈던,

소설 속 인물들이 제각각 겪어내는 고통들이 또렷하게 떠오르면서 심리적으로 한쪽 한쪽 넘기기가 매우 힘들다.

세계가 대격변으로 진통하던 시기.

어느 개인도 시대의 격렬한 흐름에서 안전할 수 없어서 일상이 무너지고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랑 속으로 휩쓸려버린다.



소설에는 러시아의 자연이나 풍속, 러시아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담겨 있다.

겨울이 지나고 봄소식이 다가오는 장면 하나를 볼까?


날씨는 차츰 풀렸다. 양철 지붕 홈통과 처마를 따라 ‘똑 똑 똑’ 하고 물방울이 떨어졌다. 봄이면 그렇듯 지붕들은 번갈아가며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냈다. 눈이 녹고 있었다. (문학동네, 1권 75쪽))


라라는 결혼하고 우랄 지역의 고향으로 돌아가 교사가 다.

그곳에 겨울이 오는 시그널은 이랬다.


그녀는 유랴틴이 좋았다. 그곳은 그녀의 고향이었다. 유랴틴은 중류와 하류로 배가 다니는 커다란 린바강변에 있는 우랄 철도의 한 지선에 위치한 곳이었다.

 유랴틴에는 겨울이 다가오면 보트 주인들이 강에서 보트를 끌어내 짐마차에 싣고 시내로 옮기는데 이 광경으로 겨울이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트는 그들 각자의 집 마당으로 옮겨지고 봄이 올 때까지 거기서 겨울을 났다. 유랴틴에는 마당 안쪽에 하얀 뱃바닥이 보이게 엎어놓은 보트가 다른 지방의 학(鶴)들의 이동이나 첫눈과 똑같은 의미를 지녔다. (문학동네, 1권 170쪽)



소설에는 비참한 민중들의 생활사도 그려지고 있지만 부자나 인텔리 계급이 러시아라는 단위의 공공을 생각하고 수시로 토론을 나누며.

나의 이익을 뛰어넘어 러시아 전체를 위해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일을 실행하는 모습도 담고 있다.

한 예로,

라라를 가족처럼 사랑하면서 그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말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는 후견인 라브렌티 미하일로비치 콜로그리보프가 그런 사람이었다.

평민 출신으로 자수성가하여 큰 부자가 된 그는,


그는 자기 집에 불법적인 활동가들을 숨겨주고 정치사건 피고들에게 변호사를 대주고, 모든 사람이 농담으로 생각했지만 혁명에 자금을 댔으며 자본가로서 스스로를 전복시키면서 자기 소유의 공장에서 파업을 일으켰다. 또한 그는 사격의 명수이자 열정적인 사냥꾼으로, 1905년 겨울에는 일요일마다 세레브랴니 소나무 숲과 로시나 섬으로 가 시민 자위대에게 사격을 가르쳤다. 

(문학동네, 1권 119쪽)  



여전히 러시아에 이런 고귀한 전통이 남아있을까?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한 세기가 넘게 지났지만 민주주의는 요원하고 부패한 독재가 기승을 부린다.

세계적으로 참 답답한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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