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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pr 21. 2022

하염없이 걷는 길

끄적끄적

걷기를 좋아한다.

내가 유일하게 몸을 움직이는 종목.

되도록 걸으려고는 하는데 도시생활에서 걷는 곳이나 거리는 한정적이지.


제주도 올레길이라든가 각종 둘레길들.

해외로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시코쿠 순례길 같이 장기간  하염없이 걷는 길에 관심은 있다.

글도 읽고 유튜브도 재미있게 보는데.

배낭의 무게를 감당할 체력이 되지 않아 내가 그 대열에 낄 기대는 못한다.

특히 도보 여행을 위해 만들고 관리하는 길이 아닌,

도시나 들판을 지나 먼길을 걸어 목적지까지 오랫동안 걸어서 여행하는 도보여행자들은 참 대단하시다.



일상적인 거리를 한참 넘어서는 먼길을 걷는다는 행위는 참으로 매혹적이지만.

날씨의 변덕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매일, 매번, 배고픔을 해결하고 잠잘 곳을 찾으면서.

어깨에는 벗어버릴 수 없는 무게와 발의 비명을 견디는 일은 의욕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올리비에 블레이즈라는 프랑스 작가는 나이 마흔에 오로지 도보로 세계를 일주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계속 여행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해마다 여름쯤, 한 달 이내의 기간 동안 지난해 멈춘 곳에서 시작해 동쪽을 향해 걷는다.

프랑스에서 헝가리까지,

일곱 해의 도보여행을 <내가 걸어서 여행하는 이유>라는 책으로 펴냈는데.

(김혜영 옮김, 북라이프 출판)

좋은 길과 날씨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악천후와 험한 길, 물마저 부족한 환경에서 고생 고생하면서.

몸은 지치고 마음속으로는 자신의 행위를 회의하면서도,

또 때가 되면 배낭을 둘러매고 발걸음을 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온 수많은 우리나라 여행자들도 여행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고 지친다 하면서도 걷고 또 걷는데.

걸으면서 지나온 막막한 들판이라든가,

안갯속을 헤매던 숲이라든가.

길을 잘못 들고,

불편한 잠자리로 잠을 못 이루면서.

터벅터벅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너던 자신이 담겼던 이국의 풍경들이.

바쁘게 살아가던 어느 날 문득 떠오르면 가슴에 찌르르- 하는 통증으로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걸었던 길을 평생 그리움으로 기억하겠지.


왜?

걷는가?

또렷이 그 이유를 말할 수는 없지만.

내면의 어떤 충동이 발을 내딛게 하는 건 분명하다.

손익을 따지는 범위를 벗어난, 내 안의 원초적인 욕구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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