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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pr 09. 2022

예술가 권진규

끄적끄적

갑자기 기온이 올랐다.

어디라도 나가고픈 화창한 봄날의 토요일인데,

안 그래도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전시회를 보러 가려던 참이었다.

검은 나뭇가지에 파릇파릇 연두색 이파리들이 올라오는 정동길을 걸어서,

미술관에 닿는다.


조각가 권진규의 전시회였다.

100년 전 작가가 태어나고 돌아가신 날들을 포함하는 봄날, 약 두 달 동안의 전시회이다.

유족이 기증한 작품들과 개인 소장품들도 전시되어 있어서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참 좋은 기회이다.



전시자는 작가로서의 권진규 인생을 세 시기로 나누었는데,

각 시기를 입산- 수행- 피안으로 명명한 점이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그런데 전시회를 둘러보고 작가의 삶을 떠올리니 적절한 명명이더라.


예술가가 되기 위한 배움과 성장의 시기는,

마치 수도자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가 혹독한 과정을 거치는 듯한 수련의 시기였고.

그 뒤에는  인간으로서의 소소한 행복을 모두 단념하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이루어가려는,

오직 작품에만 몰두한 수행의 시기였다.


작가는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을 넷으로 나누어서 생활 전부를 작품 활동만 했다는데.

그렇게 해서, 작가의 삶이 그러했듯이 오직 본질, 오로지 존재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일체의 군더더기를 모두 떨쳐낸 생명의 정수만을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그러나,

화단에서도 작품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생계가 막연하니 작품 활동을 이어갈 동력을 얻지 못하여.

작가는 스스로 생을 마친다.



1973년,

그즈음의 대한민국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저 시민으로서도 심적인 갈등과 울분을 품고 살아가가혹한 시절이었는데.

본질을 추구하는 수도자 같은 예술가로서 살아내기에는 너무나 거칠고 무서운 세상이었다.


매주 작가를 만나러 겠다고 다짐하며 미술관을 나왔다.

오늘은 작가의 고단했던 삶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무겁구나.


작가의 작은 부처님이 좋았다.



* 덧붙여


전시장 벽에 걸린 스크린에서는

작품들과 작가의 집, 아틀리에를 모두 기증한 작가의 여동생이 작가의 삶을 이야기하시고 계셨다.

우리 부모님보다 연세가 위이실 것 같은데,

쨍쨍한 음성으로 또렷하게 작가와 인생을 소개해주셔서 감동이었네.

한편으로는 왜 우리 부모님은 저렇게 살아계시지 않을까, 서러운 마음으로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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