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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ul 05. 2022

서로 기대어 살아간다는 것

끄적끄적

나이가 들면서 좀 너그러워지는 부분이 확실히 있다.

나는 평생 관대한 사람이 결코 아니라서,

인간에게 칼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편이다.

사랑이라든가,

인간관계라든가에 돈 문제가 앞서면 절대 안 된다든지, 하는.

거의 비현실적인 기준으로 이도 싫다, 저도 싫다-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뭐.



가난한 나라의 젊은 여자들과 서구권의 나이 든 남자들이 일시적인 파트너가 되는 경우가 꽤 있다.

젊음과 약간의 미모, 얼마간의 돈이 서로 교환되는 것이다.

돈독 오른 조신하지 못한 여자와 호색한의 조합이랄지.

좋지 않은 시선을 받으면서도 동남아 도시에 가면 쉽게 눈에 띈다.

홍콩에 한창 여행 다녔을 때,

그곳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 주부들 사이에 필리핀 출신의 젊은 가정부들에 대한 경고성 소문들이 오가는 걸 보았었다.

남편 단속하려는 주부들의 심정은 만국 공통인지.


유튜브를 돌아다니다가 필리핀의 30대 싱글맘과 80대 영국 할아버지 커플을 보게 되었다.

여자에게는 벌써 손녀가 있었고.

그러니까 이른 10대에 아이를 낳았던 거였다.

결혼 생활이 잘못되었던지 혼자 아이들을 키웠다는 것 같았다.

순박하고 선량해 보이는 사람.

할아버지는 허허 잘 웃는 평범한 노인으로 보였다.

사연은 모르겠는데 젊어서부터 필리핀에 산 것 같지는 않았다.

여자가 영어도 못하는 상태에서 만나 함께 산지 5년이 넘었다는데.

지방의 서민 동네,

여자 이름으로 사준 500만 원짜리 낡은 집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허름하고 낡은 집을 얼마나 알뜰살뜰 깔끔하게 치우고 꾸몄는지.

가난 속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워온 여자로서는 아마 처음 가졌을 그 집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게 눈에 보였다.


영국에서라면 요양원에 우두커니 앉아 하루하루 달력의 날짜만 지워가고 있을 나이에.

할아버지는 그래도 '우리 집'이라는 화기애애한 공간에서,

자신을 위해 차려주는 밥상을 받으며 오손도손 이야기 나눌 사람이 있으니.

두 사람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구나, 싶더라.



돈이 매개했을 그 커플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가져왔던 선입견이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부부라는 게 반드시 사랑의 결정체만은 아니지 않은가.

애정을 기반으로 험난한 세상을 함께 헤쳐나가는 동반자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 상대자로 이른바 조건을 보는 거겠지.

그러니까 자신의 잣대로 볼 때 동반자로서 유리해 보이는 조건을 찾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젊고 건강한 신체의 이성을 찾는 사람도 있겠고.

자신에게 없는 돈이라는 조건을 찾는 사람도 있겠지.

그게 비슷한 나이 대에 비슷한 문화권이라면,

어머, 잘 어울린다!, 가 되는 것이고.

나이 차가 크거나,

동성이거나,

피부색이 다르거나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질 수 있겠다.


하여간 지금 내 생각은 이렇다.

서로에게 정직하고.

서로를 위하며.

서로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구하면서 겸손하게 의지한다면 그건 좋은 동반자.

일방적이고, 계산적이며,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은 좋은 동반자라 할 수 없다.

그렇게 보인다.



아, 그럼 나 자신에게도 너그러워진 기준이 적용되느냐? 하면.

그럴 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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