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 풀과 나무와 꽃과 그리고

by 기차는 달려가고

버스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고 수목원으로 간다.

등에는 도시락이 든 작은 배낭, 손에는 물 한 병을 쥐었다.

전철에서 내리자 아파트 단지가 늘어서 있고, 상점들이 이어지는 흔한 도시 풍경.


길을 건너니 수목원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나고 울타리 바깥으로 푸른 나무들이 보인다.

걸음이 빨라진다.

입장료를 내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섰다.

자, 이제 바깥세상은 잊어주세요.

천국을 찾아오셨군요.

행운이십니다.



이른 아침부터 서두른 덕에 입장객이 적은 조용한 숲길을 걸을 수 있었다.

키 큰 나무들이 양쪽으로 줄 선 푸른 길.

완만한 경사를 오르는 숲길에는 후드득 새의 날갯짓,

그리고 팔랑팔랑 나비.

푸른 잎들을 흔드는 바람 소리에,

상쾌한 나무 냄새와 투명한 이파리 사이로 반짝반짝 햇살.

마음 놓고 숨을 크게 들이쉰.

좋구나.

한참을 걷다가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본다.

또 다른 풍경.

내가 걸어온 그 길인가?

바라보는 방향이 바뀌니 달라지는 풍경.

오, 낯설다.



계속 걷는다.

숲 사이에 습지를 지나고, 꽃이 피어있는 나무들을 지나고, 연못 위에 다리를 건넜다.

무릎이 저릿해올 때쯤, 마침 휴식 공간이 있다.

나무 의자에 앉아 손에 든 물을 쭈욱,

배낭에서 먹을 것을 꺼낸다.

수목원에는 식물만 살지 않는다.

테이블 위로 윤기가 반짝이는 통통한 개미 몇 마리가 티끌 만한 취득물을 물고 열심히 행차 중이다.

기다릴게, 네 갈 길을 가렴.


높은 나무를 내려온 청설모 한 마리는 쪼르르 내게로 곧장 뛰어온다.

사람한테 익숙해?

몇 미터 앞에서 딱 멈춰 눈을 맞춘다.

오물오물 내 입이 움직이는 걸 보셨는지.

군밤을 주섬주섬 꺼내 먹고 있긴 했지.

통통, 가까이 다가온다.

달라고?

마음씨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심과

사람 먹는 음식이 청설모에겐 해로울 수도 있겠다는 갈등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겠다.

음...

우리 오늘 인연은 여기까지로 해.

나무가 주는 것으로 잘 살기 바란다.

운동화 끈을 다시 묶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수목원이 부쩍 많아졌다.

덕분에 멀리 찾아가지 않아도 가까이에서 안전하게 숲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나이가 드니 자연이 더 좋아진다.

예전에도 자연을 좋아는 했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이었고,

번쩍이는 대도시를 돌아다닐 때 가슴이 더 뛰었었다.


지금 나는 자연이 참 좋고, 자연으로부터 정말 따뜻하게 위로를 받지만.

나는 아직 자연 속으로 뛰어들어갈 준비는 되어있지 않다.

몸에 익지 않아 그저 동경만 뿐.


그래서 수목원을 찾는다.

수목원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간이라 의외성이나 자연의 장대함은 없지만, 안전하다.

나무와 꽃과 풀이 다양하다.

자라는 식물과 관람하는 인간을 모두 고려하여 설계되었기에,

쉬운 움직임으로 나무와 땅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식물에 관한 짧은 설명들이 있어,

관심은 높아졌으나 자연에 관해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수목원은 좋은 선생님이 된다.



아름다운 풍경을 나 자신에게 자주 보여주려 한다.

이런저런 일에 시달리며 치이면서,

마음이 메마르고 까칠해질까 봐.

나의 오감으로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껴서 마음 깊숙이 전해주려 한다.


오늘 나는 숲길을 걸었고,

푸른 하늘을 보았다.

부드러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살랑살랑 흔들리는 꽃의 향기와 꿋꿋한 나무들을 흠뻑 느꼈다.



고맙다, 얘들아.

덕분에 나는 조금은 착해진 마음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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