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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Nov 17. 2022

운명의 범위

끄적끄적

젊을 적에는 나의 능력과 가치관을 믿었다.

그로 인 선택과 실행으로 나의 행복한 인생을 열어갈 것이라 당연히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 나의 인생을 돌아보니 운명인가, 싶은 부분이 꽤 있다.

태어난 부모부터 나의 능력이나 선택은 아니니까.


아무리 내 인생이라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아주 적다.

내가 불시착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할 뿐.

그 최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적성을 알아보겠다고 적성검사를 하지만.

진로를 선택하는 청소년기 또는 이른 청년기에 알 수 있는 세계는 아주 좁고 얕고.

나 자신을 분명히 알기도 어렵다.

그래서 부모님의 영향을 받거나 번쩍번쩍 근사해 보이는 것들에 홀리거나.

생계를 해결하느라 닥치는 대로 일을 하거나 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낸 뒤에 진짜 자신의 적성이 이거였구나,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이미 정말 맞지 않는 배우자와 수십 년 삐그덕거리며 살아온 뒤이고.

원치 않는 일에 매달려 수십 년 목숨을 깎은 뒤이다.

머리는 백발, 기운은 다 빠지고,

속에는 울화가 가득하지.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간혹 바로잡고 싶다는 열망이 목까지 차오르지만.

그냥 술에 취해 잊어버리기로 한다.

그 얽히고설킨 미로를 알아내기도 어렵고

후회와 원망만 가득할 뿐 처음으로 되돌릴 수 없는 걸.

인생은 원래 이런 거려니,

남은 인생도 일상의 걱정, 근심에 파묻혀 관습대로 굴러갈 뿐이다.



공부를 잘한다고,

그러니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목줄에 감겨서.

1등 대학을 다니고 판검사로 임용되어 잔뜩 힘주고 살아온 사람들을 본다.

처음 디딘 발걸음에 전 인생이 끌려왔더니 재수 없는 꼰대가 되어버렸다.

머릿속은 텅텅 비고, 인격이라고는 개차반이며.

술에 절고 권력에 취하여 돈에 환장하는 중이다.


운명을 믿고,

운명을 탓하고,

나의 운명이 좋기만 바란다.

그러면서 좋은 건 다 내 잘난 덕이란다.


외양은 운명이더라도 사람이 그렇게까지 무능하지는 않다.

인격과 가치관은 내가 선택하고 가꿔갈 여지가 충분히 있다.

왜, 그런 노력은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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