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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Dec 15. 2022

집 주소를 물으신다면

책을 기록함

<춘향전>, 이석래 역주,  범우사



일본 근대기 책을 읽다가 알았던 사실인데,

근대식 우편 제도를 도입했으나 주소 체계는 정비되지 않던 시절.

일본 도쿄의 어느 집 주소는'큰길 관청에서 세 번째 골목 안 우물 옆에 있는 기와지붕 집'- 뭐 이런 식이었단다.

편지 겉봉에도 그렇게 쓰고.

손님으로 집을 찾아갈 때도 그 주소를 들고,

지나가는 이에게 이 동네 우물 옆 '아무개 상'의 집을 물었던 것이다.



<춘향전>을 읽고 있다.

대단히 해학적이어서 구절마다 빵빵 웃음이 터진다.

그 시절 사람들의 유머감각이 대단하다.

현실은 어려웠을 텐데 눈은 예리하고 마음은 넉넉했던 것 같다.

유머라는 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전체를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수거든.


이 도령이 춘향이에게

"네 집이 어디뇨?" 묻는다.


산문계 소설인 <경판, 《춘향전》>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이 산 넘어 저 산 넘어 한 모롱이 두 모롱이 지나가면 죽림심처 돌아들어 벽오동 섰는 곳이 소녀의 집이로소이다."

(19쪽)


판소리계 소설인 <완판, 《춘향전》>에서 춘향이는 방자가 대답하게 한다.

넉살 좋은 방자는 대답을 길게 늘인다.


"저기 저 건너 동산은 울울하고 연당은 청청한데 양어생풍 하고 그 가운데 기화요초 난만하여 나무나무 앉은 새는 호사를 자랑하고, 암상의 굽은 솔은 청풍이 건듯 부니 노룡이 굼니는 듯, 문 앞의 버들 유사무사양류지요 들쭉 측백 전나무며, 그 가운데 행자목은 음양을 좇아 마주 서고, 초당 문전 오동, 대추나무, 깊은 산중 물푸레나무, 포도, 다래, 으름넝쿨 휘휘친친 감겨 단장 밖에 우뚝 솟았는데, 송정 죽림 두 사이로 은은히 보이는 게 춘향의 집입니다."

(81쪽)



와, 멋지다!

아파트를 지은 건설업체의 브랜드로,

여러 회사가 함께 지었다면 여러 개 브랜드 이름을 다 읊는 요즘 주소는 도저히 부끄러워서 선조들 앞에 내밀지 못하겠다.


나도 이렇게 낭만적이고 장난기 듬뿍한 집 주소를 갖고 싶다.

궁리를 해봐야겠군.

아, 그전에 먼저 기화요초 지나서 죽림심처 우뚝 솟은 은은한 집 한 채 장만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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