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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r 17. 2023

육신과 혼이 나뉠 때

끄적끄적

옛날 양반집을 보면 집 뒤, 지대가 높은 곳에 사당이 있다.

조선시대의 종묘는 양반가의 사당과 마찬가지로 왕가에서 조상의 혼을 모신 곳이다.

사람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육신과,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정신과 마음인 혼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에서 사당과 종묘가 유래한다.


그러니까 사람이 죽으면 육신과 혼이 분리되어,

효용을 다한 육신은 땅에 묻히고,

육신에서 빠져나온 혼은 신위로 표시해 사당에 모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모든 조상의 혼을 언제까지나 모실 수는 없으므로

세대주의 기억에 남아 있을 고조부모인 4대조까지는 신위를 사당에 모시다가,

그 이상이 되면 신위를 땅에 묻는다.



국가적으로 훌륭한 업적을 이룬 분은 '불천위',  

, 신위를 땅에 묻지 않고 영원히 제사를 모시라는 왕의 서훈을 받은 조상이 다.

후손들은 그런 훌륭한 조상을 집안의 자랑으로 여기고.

친가, 외가, 처가에 모두 불천위 조상이 있는 후손은 '옥당'이라 부르면서,

스스로 특권층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냥 자기들끼리의 자뻑.

본인은 한 게 없이 단지 후손이라는 이유로 특별하다니,

웃기지 않나?

(내 기억에는 '옥당'이 맞는 것 같은데 검색에는 나오지 않네요.

혹시 틀렸으면 바로 잡아 주세요.)


참고로 종묘에는 정전이 있고 영녕전이 있는데,

세종대왕처럼 훌륭한 임금의 신위는 '불천위'라 영원히 정전에 모시고.

업적이 미미하거나 일찍 돌아가신 왕의 신위는 처음에는 정전에 모시다가,

4대 다음 후손이 즉위하면 신위를 녕전으로 옮긴다.

(한때 임금이었던 분의 신위를 땅에 묻을 배짱 있는 신하는 없으므로)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육신은 사라졌지만.

가끔 부모님의 혼은 정말 있으면 좋겠다, 다.

살아계실 때는 미처 몰랐던 거,

그래서 너무 미안한 거.

고마운 거,

자랑하고 싶은 거,

보여주고 말해주고 싶다.

살아있을 때는 육신이 앞서지만,

돌아가시면 혼만 남는다.


힘든 거, 슬픈 거, 괴로운 마음은 나 혼자 견디고.

좋은 거, 예쁜 거, 기쁘고 신나는 것들은 부모님 혼이 알아주면 좋겠다.

저승에서까지 딸을 염려하지는 않길 바라요.

우리 딸, 제법 의젓하구나, 마음 놓으시길요.


일본이나 베트남에는 집안에 조상 모시는 제단이 있더라.

늘 부모의 시선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면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지지 않을까,

좀 더 착한 마음을 갖지 않을까, 하는데.

옛날 사당이 있었던 양반집들을 떠올리면...

별 효과는 안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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