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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an 06. 2023

아플 때 먹은 음식

음식에 관한 단상들

며칠 몸 상태가 안 좋다, 싶더니 결국 크게 탈이 났다.

도무 몸이 통제되지 않는 상황.

원인이 무엇이든 나는 몸의 어떤 부분이 나빠지면 소화기관까지 아우성을 친다.

먹는 일이 힘들어지지.



새벽에 몸의 고통으로 잠이 깨었다.

이전에 병원에서 처방받은 비상약을 먹어야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몇 시간을 괴로워하다가.

간신히 약은 꺼냈지만 빈속에 약을 먹으면 위장이 날뛸 거라,

뭐라도 먹어야 하는데 구토 증세 때문에 먹을 수가 없는  거였다.


냉장고를 열었더니 샐러드 만들려고 깎아놓은 날고구마가 있다.

처음에는 빈속에 날고구마는 아니다 싶어서 그냥 넘겼는데,

다른 것은 입에 대기도 싫은 걸.

보리차를 따뜻하게 덥혀서 조금씩 마시며 날고구마를 작게 베어 천천히, 오래 씹었다.

신기하게도 시원하면서 물기가 있는 날고구마는 거부감 없이 목을 넘어갔다.

그렇게 고구마 몇 조각을 먹고 약을 먹을 수 있었다.

약을 먹고도 한 나절은 더 지나 정신이 들었다.

첫날은 그렇게 약을 먹느라 두 차례 날고구마 몇 쪽에 따뜻한 보리차만 먹었다.



이틀째 아침.

그러니까 이틀째 잠들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중이었다.

병원에 가야겠기에 레트로트 죽을 데워서 반쯤 먹고 몸을 일으켰다.

병원이 가까워서 휘청거리며 병원에 갔고.

처방받은 약을 먹고 몇 시간 지나 일시적으로 상태가 나아졌는데 여전히 입맛은 없었다.

시원하고 약간 단맛이 있으면서 담백한 날고구마만 먹히는 거다.

그렇게 둘째 날도 날고구마를 깎아서 따뜻한 보리차와 함께 조금씩 먹었다.


저녁이 되어서 몸 상태가 더 나아졌다.

여전히 입맛은 없어서 걸쭉하게 율무차 한 잔 마시고,

사과와 브리 치즈 조금.

건포도 몇 알.

약과를 시도했는데 기름맛이 견디기 힘들어 남겼다.

우유도 맨 우유는 내키지 않았는데

라씨를 만들어주는 분말을 넣으니 시원하고 새콤해서 먹을 만하더라.



사흘째 되어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낮에까지는 보리차와 날고구마만 먹었는데.

몸을 움직이느라 밖에 나가서 걸으면서 몇 가지 먹을 것을 사 왔다.

아기들 용 갈비탕 200g짜리를 기름기는 걸러내어 따끈하게 데워 먹고.

바나나를 하나 먹었다.

크루아상 샌드위치는 반을 잘라 데워먹었고.

밤을 구웠다.

몇 개나 먹을까?



한번 심하게 몸의 이상상태를 겪으면 마음이 급속히 위축된다.

내가 이 몸으로 뭘 할 수 있을까?

몸 상태가 몹시 안 좋을 때 꼭꼭 씹어 먹은 날고구마는 몸에 받더라, 는 경험을 얻었네.


조심하라는 몸의 경고로 새해가 시작되었다.

2023년은 어떤 시간이 되려나.

왠지 파란만장할 것 같은 비장한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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