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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an 30. 2023

집은 우리의 현실을 담고

책을 기록함

<우리가 살아온 집, 우리가 살아갈 집-서윤영의 우리건축 이야기>,

서윤영 지음, 역사비평사,     



이 책은 특히 조선시대 후기, 조상들이 살아온 집을 탐구한다.

집은 그 시대,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고.

그러니 사회의 변화는 고스란히 집에 투영된다.


지은이는 책 후기에서 자신은,

(민족문화의) 독창성을 말하기보다는 인류문화 혹은 세계문화 속에서 발견되는 보편성을 말하고자 했다. 우리 민족은 아름답고 독자적인 주거문화를 이룩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이 또한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화 양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다룬 많은 책들은 주로 독창성을 말하고 있기에 이 책에서는 그와 반대로 보편성을 말하고자 했다. (270쪽)

,라고 저술 방향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현장 답사보다는 문헌 탐구에 주력했음을 밝히면서.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시간의 후광을 벗겨내고자 했다. 개인의 경험도 추억이 되고 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치장되듯, 모든 역사와 문화도 과거의 것이 되면 무조건 찬사의 대상이 되는 경향이 있다. 

민족문화는 유일하고 독창적이기도 하지만 또한 인류문화의 거대한 틀 안에서 보면 매우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다. 

(270, 271쪽),라고 우리 문화에 대한 속 좁은 관점을 우회하여 비판한다.



이 책은 건축에 투영된 우리 역사를 상당히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뭉뚱그려서 옛날의 우리 또는 조선시대라 대충 생각해 왔던 것들이 담고 있는 오류를 먼저 지적한다.

책의 시작은 이러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전통이라 하면 곧 조선을 의미했으며, 그 모습 또한 매우 정형화되고 고착된 이미지였다. 일례로 TV에 등장하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그 등장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과 살고 있는 주택은 조선 초기이거나 후기이거나 관계없이 동일한 모습이다. 조선은 1392년에 건국한 이후 약 500년을 존속했던 나라인데, 그 장구한 세월 동안 복식과 주거 양식이 전혀 변화 발전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이라는 이름 아래 복식과 주거 양식을 뭉뚱그려 동일하게 그리고 있다.

사극 속의 여행자들은 한결같이 주막에 머무는데, 동전 한 닢에 쉽게 국밥을 사 먹을 수 있는 주막이라는 것이 화폐경제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조선 초기에도 존재했을까? 오히려 숙종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에 등장하는 과객은 돈으로 국밥을 사 먹는 대신 쌀과 된장, 말린 청어를 직접 가지고 다니면서 주막이 아닌 ‘요로원(要路院)’이라는 원에 들러 가져온 쌀을 주며 밥을 지어달라고 한다. 때로 사극에서는 기생이 개업한 기방에 장안의 한량과 선비들이 드나드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본디 기생은 관에 소속된 공노비이다. 노비가 독립을 하여 마치 요즘의 유흥업소와 같이 영업을 한다는 것은 신분제도가 무너져도 한참 무너져버린 구한말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모습은 대개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의 모습이며, 정확한 기록과 고증에 근거한다기보다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개인적인 기억과 회상에 의존하고 있다. 당시는 조선이라기보다 구한말이었으며, 외세에 의한 문화ㆍ경제적 침략이 시작되면서 전통 질서가 흔들리던 시기였다. 모든 사회문화 현상은 왜곡되거나 변형될 수밖에 없었고, 그 비틀린 모습을 조선시대 전체의 모습이라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5, 6, 7쪽)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매우 풍부하다.

이 짧은 글에서 책의 내용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으니,

한옥의 몇 가지 사실을 지적하는 지은이의 관점을 소개하겠다.


1) 고건축에 굽은 나무가 사용된 예-

일부에서는 이를 '자연에 순응하는 소박한 아름다움',

이라고 미화하는 해석이 있나 보다.

지은이는 이 점은,

(이 문제에 관해) 우리가 현재 읽어내야 하는 것은 조선 후기 민의 경제 성장과 그에 따른 주택의 증개축 현상이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해 살아가는 조상의 지혜가 아닌 것이다.

(8쪽),라고 지적한다.

즉, 굽은 나무라도 써야 할 만큼 건축용 목재가 부족했는데,

이는 경제적인 발전으로 주택 건축이 활발했던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단서라고 한다.


2) 사랑채와 안채의 구분-

옥에 사랑채와 안채가 구분되어 있는 점에 대해서 남녀차별로 해석하는 입장이 있는가 보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사랑채는 공적 영역, 안채는 사적 영역으로,

 여성은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적 영역인 사랑채에 나올 일이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라고 설명하면서, 남녀차별이라기보다 공적인 용도와 사적인 공간의 구분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주택에 공, 사적인 영역이 구분된 사례들이 있다. (50~53쪽)


3) 초가집은 과연 미적 감각을 표현한 걸까?-

현대를 사는 우리는 초가집에 대한 향수가 대단하지만 조선 후기 북학파 학자들에게는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바꾸는 것이 최대 관심사였다. (239쪽)


화재에 취약하고 금방 썩으며, 그래서 벌레가 우글거리고 비 새는 초가지붕은 단지 기와를 얹을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지 아름다와서가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북학파 학자들은 돈을 모아 기와지붕으로 바꾸자고 역설했으며.

조선 후기 경성 인구가 늘어나면서 조밀해진 주거지구에 화재 때문에도 초가지붕은 위험했다.


지금은 초가집을 두고 뒷동산의 부드러운 능선을 그대로 닮은 집이니 어머니의 가슴처럼 따스하고 누이의 웃음처럼 푸근한 집이니 하지만, 당시에 초가집은 비가 새는 것을 걱정해야 하고 때로는 볏짚 속의 벌레가 밥상 위에 떨어지기도 하는 질곡이었다. 그런데도 초가를 아름답게 느끼는 이유는 시간의 후광을 업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덧칠되었기 때문이다. (243쪽)



더하여 우리 전통 건축의 특징 한 가지-


우리의 전통 건축은 내부의 기능을 외연으로 뚜렷이 나타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근대 건축은 ‘건축의 형태는 내부 기능을 따른다’라는 명제로 압축될 수 있을 만큼 철저히 기능주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전통 건축은 건물 자체를 하나의 빈 그릇으로 생각했다. 건축에 어떠한 생활과 기능을 담느냐는 사용자가 결정하는 일이지, 건축가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그릇은 되도록 단순하고 깨끗이 비워져야 했으며, 그래서 사찰이나 궁궐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축에서 그 개별적 변별성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134, 135쪽)


읽어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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