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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Feb 20. 2023

꽃을 키우는 마음

책을 기록함

<가드너의 일>, 박원순 지음, 날 출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옛날에 내가 저질렀던 철딱서니 없는 잘못들이 떠오르고.

그래서 부끄럽다.

뭘 그리 잘났다고 쉽게 떠들었는지...

입을 꿰매어버리고 싶다.


때로는 남이 나를 의도적으로 괴롭힌 행동인데,

그걸 눈치 못 채서 "저 사람은 왜 저러고 사나?" 멍청하게 당한 일도 떠오른다.

울컥.

그러거나 말거나,  꼭 다물고 꽃구경이나 하러 가야지^^



"꽃만 볼 줄 알았는데 벌레를 잡고 있는"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지극히 인위적인 "정원"이라는 장소를 설명하면서.

정원을 디자인하고 가꾸는 가드너의 일을 소개하고.

가드너로 일하면서 얻는 기쁨과 애환을 적고 있다.


정원은 사람이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자기 취향대로 꽃과 나무를 배치하여 휴식하고 관상하며.

때로는 영감을 얻기도 하는 인공의 장소이다.

정원을 디자인하고 그에 맞춰 식물들을 심고 키우고 가꾸는 가드너는,

식물에 관한 모든 일을 해내야 한다.

그 일부만 봐도,

화단 흙을 갈아엎고 평평하게 다지기, 각종 씨앗 뿌리기, 물 주기, 약 뿌리기, 잡초를 뽑거나 풀 베어 내기, 잔디 깎기, 꺾꽂이(삽목), 화분 나르기, 나무 심기, 거름 주기, 시든 꽃 따 주기, 순 자르기, 가지치기 같은 일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연못에 낀 청태(푸른 이끼) 제거와 물청소, 재배하우스 비닐 교체, 관수 라인 설치와 보수, 보일러 점검, 각종 식물 재배에 필요한 조명 설치와 관리, 유류 탱크 점검과 기름 충전, 유해 화학물질 관리, 각종 도구와 장비 보수, 트럭을 비롯한 각종 차량 운행과 관리, 나무 파쇄와 퇴비장 운영 등 아주 많은 일을 한다. (76, 77쪽)



식물은 모양새가 다르듯이 씨앗이 다르고,

파종 방법이 다르며,

싹이 나오는 모습과 방식도 개성이 있다.

물, 빛, 공기 등등에 좋아하고 싫어하는 조건들이 각각 다르다.

그러니 모든 식물들의 특징을 공부하여 기억하고,

일일이 성정에 맞춰 키워야 한다.

정원을 가꾼다는 건 고된 육체노동과 한 지식과 섬세한 배려와 따스한 보살핌이 총동원되는 일이더라.


식물을 키우는 데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모두 중요하지만 지은이는 "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가드너들은 식물의 특성에 적합한 흙을 일일이 배합한단다.

한약방에 한약재가 들어있는 약장처럼 가드너들은 갖가지 흙과 거름을 준비해 두고 그 식물에 필요한 흙을 그때그때 조제한다.


나는 식물을 키우는 "일"이 참 착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착한 일'을 하는 지은이는 자신을 '식물 중독자'라고 소개하는데,

꽃이나 잎 따위를 지나치게 좋아한 결과, 식물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179쪽)

그래서 취미는 종묘회사 카탈로그 훑어보기,

다른 이들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다니듯이 이곳저곳 정원들을 구경 다니고.

눈에 보이는 식물들을 사진 찍으며,

동네 화원, 꽃시장을 돌아다니고.

식물책을 사고 모은다.

음, 이건 일반인도 따라 할 수 있겠다.



일은 고되지만 기쁨도 많다.

이를테면 일터에서 지은이는 이런 소리를 듣는다.


바람 부는 날, 식물의 잎들이나 마른 열매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도 듣기 좋다. 가만히 들어 보면 식물마다 내는 소리가 다 다르다. 벚나무나 느티나무 같은 활엽수의 잎들은 아주 빠른 템포로 드럼을 치는 소리를 내고, 참억새나 기장 같은 그리스의 잎들은 잔잔한 파도 소리를 연상시킨다. 귀리사초는 이삭들이 귀고리처럼 달려 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찰랑거린다. 잎이 뻣뻣하고 두꺼운 태산목이나 감나무, 후박나무나 까마귀쪽나무 등의 잎들은 바람에 뒤척일 때마다 새들의 날갯짓 같은 둔탁한 소리를 낸다.

(204, 205쪽)



4월 1일부터 10월 말까지,

순천만국가정원에서는 정원박람회가 열린다.

하루 종일 꽃과 나무속에서 행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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