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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r 09. 2023

새 시대를 열다

책을 기록함

<언덕 위 수도원>


니콜라스 판 글, 사진, 허유영 옮김, 컬처북스     



전에 쓴 글 "건축이라 함은"에 이어서 '니콜라스 판'의 책 <언덕 위 수도원>에 관한 글이다.


이전에 언급했듯이 프랑스 리용 근교에 있는 '라 투레트 수도원'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좌절하고 상처 입은 청년들이 수도원으로 몰려들자 이에 부응하여 운 것이다.

그때 가톨릭은 전 세계 어디서나 라틴어로 미사를 한다든가, 수도자의 기이한 행색 같은 중세시대의 관습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었는데.

온갖 참상이 일어난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인간을 구하지 못한,

 시효를 다한 '고인 물처럼 혼탁하고 우울한 교회의 분위기' (71쪽)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교회 내부에 있었으니.


그 자신 1차 세계대전의 부상병으로 퇴역 후 유럽을 떠돌다가 화가의 꿈을 버리고 수도원에 들어온 알렝 쿠튀리에 신부는,

교회의 역할과 본질을 깊이 고민하고 본질에서 멀어져 '화석'이 되어버린 교회의 현실을 타파하려는 의지와 행동력을 갖춘 분이었다.

무신론자이며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은 설계하지 않겠다는 고집쟁이 르 코르뷔지에를 설득하고,

여전히 케케묵은 관습대로 생각하고 움직이려수도원의 거센 반대를 극복하여.

1950년대에 르 코르뷔지에가 '롱샹성당'과 '라 투레트 수도원'을 설계하게끔 만들었다.

 


르 코르뷔지에를 지난 세기의 가장 위대한 건축가로 평가하지만 모두가 이에 호응하는 건 아니고.

나도 르 코르뷔지에의 직선과 콘크리트뿐인 차가운 외관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가로 주장한 내용과 설계한 건축물들은 당시 유럽의 현실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게 내 입장이다.

무겁고 장식적인 귀족과 부자들의 건물, 교회 건축물들은 어마어마하게 값비싼 것들로 허세와 권위를 덕지덕지 달고 있었고.

도시 사람들 대부분은 좁고 어두운 집에서 불편하고 비위생적으로 살고 있었다.

무거운 건물만큼이나 귀족들과 대부호들은 노동계급을 짓누르며 그들 위에 얹혀 있었는데.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이후 복구과정에서 대대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보통 사람들'이 억눌려왔던 자신들의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니.

수명이 다한 구시대를 청산하고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세상을 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만들어낸 일군의 사람들이 있었다.

르 코르뷔지에도 그중 한 사람이다.


전쟁의 폐허를 복구하면건축물 수요가 아주 많았는데.

이제 새 시대의 건물이란,

소수에게 집중되었던 재물과 권력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모두가 행복한 새로운 시대를 표현하고 실행하는 것이라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좁은 면적에 다수의 주택을 빠른 시일 내에 지을 수 있어야 했겠지.

그 실내는 환하고 바람이 잘 통하며 위생적이어서 단란한 가족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효율적인 집이어야 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불필요한 장식이 없고 지극히 보편적인 자재로 소박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단순한 집과 건물을 설계했다.

나는 그 점이 좋다.

집을 설계하면서 진정하게 살아가는 방식까지 제시한 셈이다.



본질에서 벗어난 가톨릭을 개혁하려는 쿠튀리에 신부의 노력이 성당과 수도원 건물로 결실을 맺은 뒤.

1958년 즉위한 요한 23세는 자애롭고 선량하며 얼굴에서 늘 미소가 떠나지 않는 "착한 요한"이라 불리던 순박한 분이셨는데.

실권을 쥐고 있던 추기경들의 노골적이고 거친 반대를 무릅쓰고,

“나는 그저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도록 하려는 것뿐이오!”  

(70쪽) 

하면서 공의회를 소집하여 교회 개혁에 착수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별난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사이가 아주 좋았던 어머니에게는 평생 귀여운 아들이었다.

롱샹 성당 헌당식이 열린 지 이틀 뒤인 1955년 6월 25일, 예순여덟 살의 르 코르뷔지에가 아흔다섯 살 노모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 그의 흥분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의 ‘코르비’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아주 우쭐했답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성당 헌당식에 참석했어요. … 그 성당은 근대 건축의 가장 혁명적인 대표작이 될 거예요.…”(105쪽)


다음에는 흥미 있는 인물,

르 코르뷔지에를 더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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