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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pr 19. 2023

슬픔에서 빠져나오기

끄적끄적

불치병으로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받는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환자 사후 유족에 대한 간단한 심리 치유 과정이 있다.

우리 어머니가 계셨던 병원에서는 그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이 넘었다.

그중에 만난 어느 심리학 전공자가 내게 말하길,

자살자 유족이 겪는 심리적 고통이 상당히 큰데,

나처럼 심한 통증으로 고통받는 가족을 오래 돌본 유족의 경우도 심리적 타격이 못지않다고 위로해 주셨다.



결코 없었던 시간이 될 수 없고,

흔적 없이 사라지기는 불가능하지만.

어머니 돌아가신 뒤의 3년 넘는 세월을 돌아보니,

나의 세포 하나하나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던 슬픔과 고통과 무기력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과정이었다.


내가 인지하기보다도 나의 슬픔은 훨씬 크고 무거워서,

더 이상 나를 괴롭힐 것 없는 캄캄한 동굴에 혼자 오도막이 쪼그려 앉아.

한 번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슬픔을 꺼내어 꼭꼭 씹어 소화해 내고는,

텅 빈 하늘로 날려버리는 과정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나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절여져 있던 고통과 슬픔이 느릿느릿 빠져나갔다.



잘 가,

무력했던 시간아.

삶은 성공과 실패와 기쁨과 슬픔과 비참하고 자랑스럽고 무기력하고 활기찬,

 모든 감정과 기운이 아우러져 문양을 이루어내는 온갖 빛깔의 태피스트리이고.

나는 슬픔의 빛깔을 그간의 단순무지한 내 인생에 더했으니.

벽에 걸린 '나'라는 직물은 좀 더 만해 졌으려나.


나와 같은 경험을 하셨던,

하고 계신 모든 분들께 토닥토닥,

깊은 위로와 공감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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