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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태영 Oct 16. 2024

7 일에만 힘 쏟지 않는 하루가 되길

딸에게 보내는 일곱 번째 편지

딸아! 딸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게 이렇게 행복한 거였단 사실을 많이 느끼고 있는 요즘이야.


아빠는 오늘 아침 수업 준비를 하면서 주어진 시간 속의 틈새를 찾아 창 밖을 내다봤다. 나뭇가지 사이로 알록달록 물들어가는 나뭇잎, 줄넘기 하는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뜀박질 소리와 참새들의 재잘거림이 오늘의 시작을 알리고 있어. 


이런 여유로운 풍경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딸은 얼마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해. 아빠도 돌이켜보면 오랜 교직 생활 속에서 정말 정신 없이 살아온 것 같거든. 주어진 일을 허투루하는 성향이 아니라 일이 주어지면 그 것만 바라보며 올인하는 아빠 자신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단순히 승진과 명예를 쫓아 한 일은 아니었고, 마음이 따랐기 때문에 했던 일들이었지만 그 시간들을 견뎌낸 스스로가 대단해 보일만큼 열심을 다한 시간이었지.


그런데 왜 이렇게 일에만 온 힘을 쏟았을까?


나 자신과 가족을 생각해 보면 좀 지혜롭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하는 생각도 함께. 벌써 10년 전 쯤일까? 큰 교육청에서 근무할 때 인사 관련 업무를 맡았는데 승진, 전보라는 인사 업무는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에 1년 중 6개월 정도는 야근을 쉬지않고 했던 것 같아. 원본을 살피는 데만 17번 이상이 걸릴만큼 집중해서 일을 했던 시기였지. 그 이후에도 일은 끊이지 않았어. 지방 교육청에서 과장으로 일할 땐 주말 행사가 유난히 많았어. 상주에서 그 지역으로 왔다 갔다 하는 시간만 왕복 3시간 정도였는데 가을 내내 가족과 함께하지 못할 만큼 정신 없이 지냈네. 이런 시절들은 아빠 인생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일이 우선되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


딸과 함께 밤 10시에 퇴근하던 시절 속 아빠


그래도 아빠는 후회만 하지 않아! '일'을 한다는 것이 행복이기도 했거든. 


예전부터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 중에 '소확행'이라고 들어봤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아빠는 그런 행복들을 일 하는 환경 속에서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어차피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나의 일터고, 나의 동료라면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야 나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거니까!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내 마음이 설레고, 행복한 일. 그리고 내가 잘 하는 일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소속된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 그런 마음으로 일했기 때문에 37년간 '교육직'이라는 업무 안에서 꾸준하게 잘 살아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우리 딸도 매번 그런 이야기를 하잖아. "힘든데 재밌어!" 그런 말을 들을 때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름의 행복을 찾아가며 일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역시 아빠랑 닮았구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하나는 꼭 말해주고 싶어. 지난 교직생활을 돌이켜보면 아빠의 일터에서의 행복은 열심히 찾으려고 했는데 막상 내 삶에서의 진정한 행복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더라고. 이제는 산 정상에 올라 서서 보니 지금까지 못 본 게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는 예쁜 풍경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모든 것들을 즐기는 것.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들을 내 일에서만 찾는 게 아니라 내 삶에서 찾아야 했구나 하는 아쉬움이 들어.


그래서 지금은 하루 중 나만의 행복을 찾기 시작했어. 아빠의 직장인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예쁜 미소를 보는 행복, 쉬는 시간 선생님들이 좋아 교무실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행복. 이젠 여기서 끝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이젠 아빠 담당이 된 설거지를 해야지. 그리고 난 후엔 엄마랑 1만보 걷기를 하러 고수부지에 나갈거야.


고수부지 걷기하다 아빠가 찍은 사진


사랑하는 딸아!

아빠 못지 않게 쉼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 딸이 오늘의 행복을 눈과 귀와 마음에 잘 담아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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