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열 한 번째 편지
사랑하는 딸아!
요즘도 많이 바쁘지? 건강이 제일이다. 일이 아무리 바빠도 무리하지 말고 좀 쉬어가면서 하거라. 아빠는 바쁘게 지내던 일상을 뒤로 하고, 오랜만에 맞이하는 방학을 보내고 있어. 관리자일 땐 주말이 따로 없을 정도로 출장도 많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는데 지난 한 학기를 보내면서도 또 다른 일들로 바빴던 것 같아. 출근하고 나면 수업 준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업, 선생님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기, 점심 시간이면 학교 주변 한바퀴 등, 하루의 일정이 거의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매일이 선물이고 행복했지. '방학'이라는 여유가 생기고 나니 지난 학기를 한번 돌아보게 되네.
지난 학기에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학생이 한 명 있었어. 오늘은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편지에 담아보려 해. 아빠가 도덕 수업을 들어가는 6학년 정**이라는 아이 이야기인데, 수업이 모두 끝난 쉬는 시간에 아빠가 있는 교실 문을 똑똑 두드리는거야. 문을 열어줬더니 빼꼼 고개를 내밀며 들어오더라.
- 어떻게 왔지?
- 선생님하고 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 그래 **이 오니까 선생님이 마음이 좋구나! 혼자서 이것 저것 하다보면 때로는 누군가와 대화도 좀 하고 싶을 때가 있거든. 그래 참 잘 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 특별한 건 아니구요. 제가 원래는 워낙 내성적이라 부끄러워서 발표도 잘 못했는데 선생님과 함께 도덕 수업을 한 이후로 제가 자신감도 생기고 발표도 잘 하게 되었어요. 선생님께서는 모든 학생들의 요구를 잘 받아주시고 존중해 주시잖아요. 그런데 11월부터는 저희 반 수업을 안들어시니까 너무 아쉬워요. 12월부터 다시 도덕 수업 하시면 안될까요?
규정상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더니 '선생님과 수업하고 싶은데요' 하면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가끔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찾아오라고 했어. 퇴직을 1년 앞둔 나에게 감사하다고 말 하는 13살, 6학년 제자 덕분에 마음 가득 행복이 차올랐단다.
점심시간에 복도에서 만난 6학년 아이들이 그 아이와 같은 똑 같은 이야기를 많이 했어. 선생님과 수업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고 이해가 잘 된다고 이구동성이다. 이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빠는 절로 힘이 난다. 아빠가 하는 수업 속 이야기들에서 다양한 경험과 가치관이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자양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거든. 그런 마음을 알아주듯 선생님 좋아요!를 외치는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
수많은 인연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마음이 통하는 사람, 그만큼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아빠는 38년 만에 훌륭한 제자를 만난 거야.
사랑하는 딸아!
우리 딸도 주변에 우리 딸의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지? 하지만 때론 사람 관계에 있어 상처를 받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도 많을 거야. 아빠도 삶을 살아오면서 내 마음같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마음 고생도 많이 했잖아. 그래도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훌륭한 제자를 만나 나의 자존감을 채우고 행복을 느꼈던 것 처럼 우리 딸도 그런 사람이 생각치 못한 곳에서 짠! 하고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멋진 사람으로 잘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야.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 우리 딸.
사랑해. 마니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