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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노인 Jul 11. 2017

#1 묘연

집사의 삶을 시작하기


우리 부부가 결혼 후 가장 하고 싶었던 건 고양이를 키우는 일이었다. 결혼 전 거의 고양이 상사병에 걸리기 직전이었던 우린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가정분양 고양이들을 끊임없이 찾아봤었다. 우리의 고양이 취향은 명확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친근한 성격의 개냥이. 생명을 데리고 오는 데에 취향이라는 단어를 적는 건 스스로 생각해도 저속하고 이기적인것 같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아닌 10년, 20년을 함께할 가족을 정한다고 생각하면 취향이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막상 이렇게 적었지만 사실 품종과 생김새에 상관없이 고양이만 보면 둘 다 사족을 못쓴다) 렉돌부터 브리티쉬숏헤어, 페르시안, 터키쉬 앙고라까지 많은 종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예산과 지역, 입양 시기 등을 고려하여 몇몇 아이들을 직접 방문해 살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우리가 첫번째로 찾아간 곳은 마포구 신수동이었다. 생전 처음 발디뎌보는 낯선 동네의 묘한 긴장감과 고양이를 본다는 순수한 설렘이 뒤섞여 가슴 한켠부터 머리끝까지 탄산수의 기포가 올라오는 것처럼 간질거렸다.


9월 중순의 농익은 햇볕이 조금 견디기 힘들 때 쯤 도착한 그 집엔 부모 고양이와 다섯 마리의 아기들이 함께였다. 그 사랑스러운 생명체들을 마주한 순간 가슴이 뻐근해졌다. 너무 기쁘고 사랑스러운 마음에 터져나오는 옥시토신을 가슴이 감당하지 못하고 경고를 보내는 듯 했다. 주인분들께는 죄송하게도 꽤 긴 시간을 아기들 옆에 앉아 바라봤던것 같다. 녀석들은 누구 하나 선택하기가 힘들 정도로 전부 아름다워서  그 순수한 생명체에 내가 손을 건네면 순식간에 더렵혀질 것 같은 두려움 마저 일 정도였다. 원래 여러 가정집 방문하기로 했던 우리의 계획 따위는 그 자리에서 기화됐고 어느새 어떤 아이를 선택하느냐를 논의하고있었다. 처음부터 가장 보고싶었던 둘째아이는 털 한올 잘 못 칠해진 곳 없는 미묘였다. 사진으로 봤을때보다 더 아름다웠던 그녀석은 우리 부부의 마음을 홀리기 충분했다. 문제는 느닷없이 내 무릎위에 올라와 앉아있는 첫째였다. 다섯 아이 중 가장 약하고 작은 이녀석은 오늘 처음보는, 세상의 온갖 때를 간직한 나에게 눈을 맞추고 아무렇지 않게 내 무릎에 털썩 누웠다. 조금 당황스럽고 동시에 기쁜 경험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부부는 둘째를 선택하고 입양 시기를 논의 한 후  그 집을 떠났다.


둘째라고 서로 입밖으로 내뱉으면서도 느꼈지만 사실 내가 마음속에 선택했던 고양이는 둘째가 아니었던것 같다. 결정의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못이 박히듯 첫째의 작은 체구와 반짝이던 눈동자가 내 가슴과 머릿속을 관통해 체증같은 불편함을 주었다. 그 체증은 결국 주인에게 첫째로 데려오겠다고 멋쩍게 바꿔 말하고 나서야 사라졌다.


10월 초 어느날 그렇게 마리는 우리의 첫번째 고양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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