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속았다
건강 관련한 일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건 이 분야에 사기꾼들이 참 많다는 것이다. 파고 파고 또 파도 사기꾼이 계속 나온다! 이정도면 거의 사기꾼 화수분 같은 시장. 옛날부터 괜히 약장수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님을 새삼 실감한다. 그만큼 사람들이 건강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홀려서 돈을 뜯기고 심지어 부작용으로 고생하게 된다. 석류즙 효능역시 약장수들이 써먹기 좋아하는 아이템 중 하나다.
석류즙을 찾는 사람의 상당수는 석류에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특히 갱년기 증상을 겪는 여성들은 체내 호르몬 균형이 무너져서 심신이 힘든 상태이니 당연히 혹할 수 밖에 없다. 그 밖에도 피부가 고민인 젊은 남녀 역시 석류가 피부 미용에도 좋다는 소리를 듣고 석류즙을 먹는다. 재밌는 건 석류가 갱년기와 피부에 좋다는 말을 의심없이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당신은 석류가 좋다는 걸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가? 잠시 떠올려보자. 아마 다음과 같은 경로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석류즙 약장수 > 종편 미디어 > 석류즙 쇼닥터 > 그걸 본 친구나 주변인 > "석류가 몸에 좋대!" > 당신
위의 과정에서 친구나 주변인은 물론 당신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분명한 사실은 당신이 스스로 석류를 연구해서 석류가 갱년기와 피부에 좋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무조건 어디선가 석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리고 의심없이 소문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미디어의 권위, 전문가의 권위, 지인의 친근함은 우리의 심리적 장벽을 무장해제하고 진실과 거짓을 섞어 교묘하게 집어넣는다. 석류즙도 그 혼탁한 진실 중 하나. 잘못된 정보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언제나 분석적인 사고를 유지해야한다.
먼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뜯어보자. 알려진 내용들을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1. 갱년기 여성에게 에스트로겐 보충이 도움이 된다.
2. 피부 미용에 에스트로겐이 좋다.
3. 석류에는 에스트로겐이 많다.
4. 석류는 갱년기 여성과 피부가 고민인 사람들에게 좋다.
자, 여기서 1번은 확실히 맞는 내용이다. 갱년기가 오는 이유는 폐경 이후 체내 에스트로겐 분비가 거의 끊기면서 감정적, 신체적 기복이 생기는 증상이다. 이때 적정 수준의 에스트로겐을 약제 또는 주사로 보충해주면 확실히 갱년기 극복에 도움이 된다. 2번은 조금 애매하긴 한데 테스토스테론, 그러니까 남성 호르몬 분비 과다로 인한 성인 여드름 등의 피부 질환은 에스트로겐 보충을 통해 호전될 수 있다. 대충 맞다고 하겠다.
이제 3번. 석류에는 에스트로겐이 과연 많을까? 이게 참 묘하다. 맞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틀렸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첫번째 이유는 석류에 있는 성분이 정확히 에스트로겐은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광고를 보면 식물성 여성호르몬 또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이소플라본이라는 물질이 석류에 있는 성분이다. 이소플라본은 에스트로겐의 전구물질이다.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을테니 풀어서 설명하겠다. 생화학에서 전구물질이란 선행 화합물을 의미하는데, 이소플라본이라는 물질이 화학반응을 통해 에스트로겐으로 변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석류에 에스트로겐이 많다는 말은 엄밀히 따지면 거짓말이다.
두 번째는 이소플라본은 석류의 씨에 많기 때문이다. 당신이 정말 에스트로겐의 효과를 기대하고 석류를 먹는다면 과육을 먹을 게 아니라 씨를 전부 씹어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심지어 약국이나 병원에서 처방하는 만큼의 에스트로겐을 석류의 이소플라본으로 섭취하려면 18~20개나 먹어야한다.
3번과 같은 이유로 4번은 헛소리다. 시중에서 파는 석류즙, 석류, 석류 영양제, 석류 음료, 석류 사탕, 석류 젤리, 석류 뭐시기를 아무리 먹어도 별로 효과가 없었던 건 대부분의 석류 상품들이 씨는 거르고 과육만 가지고 만들거나 석류 향만 내기 때문이다. 에스트로겐 성분이 없으니 당연히 아무 효과도 없을 수 밖에.
그럼 효과 없는 석류즙을 대신할만 건 뭐가 있을까? 식품 중 가장 좋은 건 콩이다. 콩은 석류보다 무려 80배나 더 많은 이소플라본을 함유하고 있다. 따라서 효과를 기대한다면 석류즙보다는 콩을 먹는 게 도움이 된다. 이쯤에서 문득 어떤 가설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혹시 효과는 아무래도 좋은 게 아닐까?' 무슨 말이냐면 효과야 있든 없든 상관없고 그냥 맛있으니 먹는 게 아닐까 하는 가설이다. 그러니까 이런 논리다.
석류가 몸에 좋대 > 먹어볼까? > 맛있네 > 효과는 별로 없네 > 근데 맛있으니까 꾸준히 먹어보자!!!!!
콩이 몸에 좋대 > 먹어볼까? > 맛없네 > 효과는 좋다는데 맛 없으니까 다른 거 찾아보자!!!!!
굉장히 이중적이고 앞뒤 안맞는 논리이지만 사람은 언제나 욕망에 지배당하는 동물인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설득력있는 행동 패턴이다. 아무튼 선택은 당신의 몫이나 석류즙이 실상 아무런 효과 없는 약장수의 사기라는 건 염두에 뒀으면 한다. 겸사겸사 갱년기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를 추천하고 이 씁쓸한 포스팅을 끝내겠다.
1. 비타민E
비타민E는 강력한 항산화 물질이자 폐경기 여성의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비타민이다. 안면 홍조를 일시적으로 완화하고 질 위축으로 인한 통증을 개선하는데 효과적이다. 단 처음부터 고용량의 비타민E를 먹는 것은 좋지 않고 의사나 약사와 상담 후 적은양의 비타민E 부터 섭취하여 점차 늘려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칼슘+마그네슘+비타민D
에스트로겐 분비량이 떨어지면 뼈와 관절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또한 심한 감정기복 증상이 나타나므로 칼슘과 마그네슘, 비타민D를 함께 먹으면 뼈 건강과 감정 컨트롤에 도움이 된다. 이때도 너무 고용량의 칼마디를 먹으면 칼슘 흡수량이 지나치게 늘어나 고칼슘혈증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욕심내지 말고 적정량을 섭취하는 게 중요하다.
3. 플라보노이드 + 비타민C
비타민C와 플라보노이드는 항산화 물질로 홍조를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면역 작용에도 관여하여 떨어진 면역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