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치원생부터 노인까지 피로를 몸에 달고 산다. 생기 넘치는 나날보다 피로하고 축축 처지는 날이 더 많다. 그래서인지 피로회복은 건강 카테고리에서 언제나 중요한 키워드다. 수많은 제품들이 피로를 풀어주겠다며 대중들 앞에 나서고, 이미지만 좋으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링거워터 링티 역시 그중 하나. 과연 링티는 당신의 피로를 풀어줄까?
흔히 과로 등으로 쓰러지거나 몸이 좋지 않을 때 병원에서 링거를 맞는 사람들이 많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픽픽 쓰러졌다가 눈 떠보면 병실에서 링거를 맞고 있는 상황이 클리셰처럼 등장한다. 이런 링거의 이미지 때문에 링거에 대해 환상을 품거나 과신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그들은 링거를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링거 = 피로회복, 영양공급, 치료, 스팀팩, 기력보충
링거는 19세기 영국 의사인 시드니 링거가 발명한 수액의 한 종류이다. 이후 알렉시스 하트만이 산성혈증의 치료를 목적으로 수액에 젖산을 추가하여 하트만 수액이 개발됐는데, 현재 우리가 맞는 링거는 19세기의 링거 수액이 아닌 하트만 수액이다. 하트만 수액의 구성을 보면 나트륨, 칼륨, 칼슘, 염소, 젖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특히 젖산이 중요한데 앞서 언급한 산성혈증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산성 혈증이란 말 그래도 피의 pH가 산성 쪽으로 기우는 것을 의미한다. 더 설명하고 싶지만 여기선 넘어가겠다.
아무튼 링거는 병원에서 그냥 놔주지 않는다. 가격도 비싼 데다 산성혈증이 아니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당신이 알고 맞는 링거는 진짜 링거가 아닌 그냥 생리식염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애초에 크게 아프지도 않은데 링거를 병원에서 놔줬다면 그 병원이 돈벌이에 미쳤거나 당신이 당뇨, 신부전, 약물 중독 등에 의한 산성혈증,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생리식염수인 수액은 왜 맞는 걸까? 가장 큰 목적은 수분 보충과 혈액순환이다. 원래 수액은 설사, 출혈 등으로 심한 탈수가 왔을 때 혈액 내 수분량을 빠르게 보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실제로 수액을 맞으면 입으로 섭취하는 것보다 많은 양의 수분을 몸에 공급할 수 있고 혈액순환이 일시적으로 원활해지며 노폐물 배출 속도도 증가한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일반 수액을 맞는다고 영양이 보충되거나 피로가 단번에 회복되는 일은 없다. 애초에 피로회복에 필요한 성분이나 영양분이 일반 생리식염수에 들어가 있지도 않으니 당연한 이야기이다.
정리하자면 흔히 알고 있는 링거는 수분 보충을 위한 생리식염수이고 생리 식염수에는 특별한 영양이나 기능이 없다. 따라서 링거를 맞거나 경구 수액을 복용해서 피로가 회복된다는 건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
링티 홈페이지를 보면 '피로회복제가 아니다. 링티다!' 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건 진실이다. 정말 피로회복제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가 받아들이기에는 마치 피로회복제를 링티가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더불어 지친 몸을 활기차게 만들고 야근이나 밤샘에 찌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듯이 광고한다.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먼저 링티의 식품 유형을 보자. '음료베이스'다. 여기엔 매우 중요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소비자는 잘 알지 못한다. 당신이 건강기능식품과 일반식품의 차이를 안다면 음료베이스라는 식품유형을 보고 피식 웃었을 것이다. 모든 식품은 상품화되어 광고하고 판매하기 전에 식약처의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이때 식약처에서 정식으로 인정한 기능성 원료를 사용하면, 실제로 특정 증상에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여 '건강기능식품' 마크를 부여한다. 반대로 뚜렷한 기능이 없는 일반 식품일 경우 그 유형에 따라 음료베이스, 캔디류 등 해당 제품에 맞는 식품유형을 표기하게 한다.
현재 식약처에서 실제로 피로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기능성을 인증한 원료는 인삼, 홍삼, 홍경천, 매실 추출물 등이다. 이외의 원료들은 개별인정을 따로 받아야 하거나 식약처에서 해당 기능이 없다고 판단한 원료들인 것이다. 이 경우 특정 기능을 암시하거나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위법으로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링티가 '피로회복제가 아니다'라고 표현하는 건 진짜 피로회복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인식을 교묘히 활용하여 마치 피로회복제인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는 것.
그럼 성분을 보자. 건강기능식품 인정을 못 받았더라도 성분이 좋으면 소비자로서 인정할 수 있으니 말이다. 원재료와 영양정보를 보면 1일영양성분기준치를 기준으로 나트륨이 22%, 탄수화물 3%, 비타민C가 500% 함유되어 있다. 이 밖에 타우린이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주사가 아닌 경구 수액을 만들 때는 보통 물 1리터에 소금 2.5g, 설탕 30g 정도가 들어간다. 링티는 500ml에 타먹는 제품이므로 500ml 기준으로 계산하면 소금 1.25g, 설탕 15g 정도가 실제로 경구 수액에 필요한 나트륨과 당의 양이다. 1.25g = 1,250mg, 15g = 15,000mg이므로 링티의 430mg, 7000mg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양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링티는 일반 링거 수액을 대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입으로 복용하는 수액의 역할을 할 수도 없다.
링티의 성분에서 그나마 피로회복과 관련이 있는 건 타우린 1,000mg 정도인데 박카스가 타우린 2,000mg을 넣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가성비가 썩 좋지 않다. 종합해보면 링티는 흔히 아는 포카리스웨트, 파워에이드, 토레타 같은 이온 음료와 기능적으로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정말 피로회복 효과를 기대하고 링티를 마신다면 플라시보 외에는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박카스나 레드불이 더 좋을지도... (카페인만 괜찮다면)
그러니까 링티는 의사의 권위, 군의관의 정직한 이미지,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 링거가 대중에게 주는 긍정적인 이미지, 식약처 심의를 벗어난 교묘한 카피를 버무려낸 마케팅의 산물일 뿐이다. 소금 조금 더 들어간 이온음료를 굳이 사 먹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차라리 이온음료에 비타민 알약을 사 먹는 게 피로에는 훨씬 도움이 된다. 더불어 피로 회복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가벼운 운동과 충분한 수면, 적당한 물을 마시는 것이지만... 뒷말은 줄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