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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노인 Jul 25. 2017

#5 대면(1)

그 놈 등장?!

마리가 집에 온 지 3일째. 빠른 속도로 온 집을 탐험하던 마리는 곧 이 집이 온통 자신의 영역이라는 점과 새로운 두 명의 보호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보였다. 첫날, 두려움과 긴장이 가득하던 눈빛에선 어느새 장난기가 보였고, 그 작은 발걸음엔 거침이 없어졌다. 형제들 중 가장 작은 체구라 피지컬에서 밀리는 바람에 밥을 많이 먹지 못했지만 이제 그럴 걱정도 없었고 다행히 새로운 보호자들도 자신에게 무척이나 호의적으로 보였다. 그렇게 모든 것이 평화로울 줄 알았다. 그놈이 등장하기 전까진…


그날은 아마 마리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크게 감정을 표출한 날일 듯 했다. 그날은 일찍부터 남집사가 보이지 않아서 언제나처럼 사냥을 나간줄 알았다. 여집사의 아늑한 품에 안겨 졸다 깨다 그루밍하다 나른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찰나였다. 기분이 무척 좋아서 자신에게 끔뻑 죽는 여집사에게 애교 한 번 보여주면 맛있는 걸 꺼내주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던 그때 문이 열리고 익숙한 남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슬슬 아빠라고 인식하고 있던 존재였기 때문에 오늘도 험난한 바깥세상에서 자신을 위한 사냥감을 물고 들어온 줄 알고 자식 된 최소한의 도리로 귀찮지만 직접 몸을 일으켜 마중을 나갔다. 그 사이 남집사가 조심스레 이동장이라 불리는 검은 통을 내려놓는 모습이 보였다. ‘저 안에 사냥감이 있나?’라는 순진한 생각으로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았다. 근데 웬걸? 거기서 무언가 시커먼 녀석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마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무섭고 비열하며 상스러운 욕을 내뱉었다.

“하앍!”

기가 막힌 건 녀석이 꿈쩍도 안 할뿐더러 자신에겐 신경도 안 쓰고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 마리 본인이 아끼는 알프스 냄새가 나는 양탄자도 킁킁댔다가 기껏 얼굴을 문질러 영역을 표시한 스툴의 다리도 건드려보고 아주 안하무냥으로 자신을 무시하고 활개치는 그놈을 보며, 아빠는 왜 저런 녀석을 데리고 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사랑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니! 배신감은 일단 뒤로하고 우선 눈앞의 적을 먼저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마리는 자신보다 몸집이 배는 커 보이는 녀석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말했다.

“하앍!”

마리의 심상치 않은 기세가 느껴졌는지 드디어 그놈이 마리 쪽을 돌아봤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이놈은 바보인가?’라는 생각이 든 마리는 다시 한번 여긴 내 영역이고 마지막 경고를 무시한다면 자신의 날카롭고 강맹한 발톱으로 인해 피눈물을 흘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 주지시킬 필요를 느꼈다.

“하앍!”

무려 세 번의 하앍질 끝에 그 녀석, 라리는(그새 괘씸하게 엄마 아빠가 이름도 붙여놨다) 드디어 마리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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