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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숏츠

서유기 선리기연

내가 사랑하는 배우들

by 임경주


나는 늙어도 좋으니 내가 사랑하는 배우들은 늙지 않고 언제나 그대로이기를.


생각 속에는 언제나 하나의 교훈이 존재한다. 압도를 당했다면 숭고함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영원한 삶이 아니라 영원한 생기다.(니체)

배우가 하나하나 보여주는 것은 시간 안에서다.

배우가 그 인물을 지배하는 것도, 지배하는 것을 배우는 것도 시간 안에서이다.

마음은 오직 동작을 통해야 하고 육체의 것인 만큼 영혼의 것이기도 한 목소리를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전달한다.


-까뮈의 연극 중에서-


난 배우들을 사랑한다.

그들이 영원히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젊음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주고 싶다.


서유기 선리기연은 영화를 사랑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18번? 아무튼 누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서유기 선리기연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이 그거 주성치 나오는 삼류 코미디 영화 아냐? 이런 식이다.

하지만 서유기 선리기연은 사랑과 주어진 사명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그린 명작이다.


자하는 당신 마음속의 느낌표요 아니면 마침표요? 아니면 머릿속에 가득 찬 물음표요?


자하는 그저 아는 여자인데 옛날에 내가 거짓말을 해서.... 지금 죄책감을 느낄 뿐이지 좋아하진 않소.

난 내일 혼인하오.


아마 이때 지존보가 자하의 마음을 알았다면 두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되었을까?


시장골목에서 다짜고짜 지존보에게 고백하는 자하의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쉿, 가슴이 너무 뛰어. 내 낭군이 근처에 있어.

직접 봤소?

그건 아니고. 내 자청보검이 뚜뚜 하고 신호를 보내줬어.

어디서 난다는 거요?

뚜뚜뚜 들리잖아.

그건 당신 입에서 나는 소리잖아요.

못 들으니까 내가 소리를 내준 거잖아. 무서워. 거짓말 아냐. 정말 무섭단 말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하늘에서 맺어준 인연이니 무서울 수밖에.

또 시작이군...

그래, 내 심장이 뛰고 있어. 보검도 소리를 내고 있고. 어쩌지? 그에게 뭐라고 말하지? 어떻게 해?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말해야죠.

날 싫어하면?

뭘 그렇게 따져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면서...

정말?

하늘의 뜻을 누가 거역해요.

맞아, 그래... 그 사람 왔어.

설마 난 아니죠?


어떤 문장이든 행간이란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난 이 시장통 골목에서의 자하의 사랑고백 장면의 대사만큼은 행간을 파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너무 좋고 안타깝고 마음 아프고 자하가 귀엽고 사랑스러워 몇 번을 보고 또 보는 장면이다.


지존보는 자하가 마음을 보낸 제자에게 아이러니하게도 죽임을 당하는데 죽기 전에 신속하게 가슴을 베어달라고 말한다.

그녀가 떠나기 전에 내 심장에 뭘 두고 갔다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빨리 가슴을 베어 주면 죽기 전에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을 거 같으니 최대한 신속하게 빨리 베어 달라고 부탁한다.


이 죽음으로 지존 보는 인간의 삶을 끝내고 제천대성 손오공으로 다시 태어난다.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금강원을 착용하는 장면에서 지존보의 독백은 가슴을 울린다.



난 죽어 마땅하오.

진정한 사랑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난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그걸 잃었을 때 비로소 크게 후회했소.

인간사의 가장 큰 고통은 바로 후회요.

하늘이 내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난 그녀에게 이렇게 말할 거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만약 사랑에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죽음으로 인간의 삶을 끝내고 제천대성 손오공으로 다시 태어난 지존보는 인간사의 정에 관여할 수가 없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정이 마음을 움직이면 금강원이 조여 온다.


하지만 자하의 죽음 앞에서 손오공은 다시 인간이었던 지존보의 마음으로 자하를 놓지 못하는데 금강원이 조여와 더 이상은 자하의 손을 붙잡고 있을 수가 없다.


내 낭군은 영웅 중의 영웅이고 언젠가는 구름을 타고 날 데리러 올 거라네. 난 첫 부분은 맞췄지만 마지막은 맞추지 못했어.


자하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금강원은 머리를 뚫을 듯 조여 오고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하의 손을 결국 놓쳐버린 손오공의 절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사람으로 하여금 울컥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서유기 선리기연은 손오공이 어떤 가슴 아픈 사연을 가슴에 품고, 악으로부터 인간사의 한을 달래고 그 처방전을 구하기 위해 서역으로 떠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시간과 지면이 허락된다면 하루 종일 말하고 싶은 이 영화는 절대로 가볍게 볼 삼류코미디영화가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알고 보면 볼수록 그 가치가 높고 멋진 명작 중의 명작, 서유기 선리기연을 보고 있으면 자하 역의 배우 주인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그녀의 삶과 인생이 스크린에서처럼 영원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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