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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숏츠

로켓

그녀의 추진력

by 임경주


나는 도대체 글을 왜 쓰는 걸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하루를 보내고 다시 잠들기 직전까지 단 한순간도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생각나고 그 예쁜 얼굴이 너무 보고 싶어 질질 짜면서 부치지도 못하는 편지를 썼던 부산아가씨 때문일까?


나이 먹고 글을 써도 어지간히 써야 옆에 있는 사람도 그러려니 하겠지.


당신은 그냥 글이랑 살아.


도대체 먹고사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고 아들 하나 남들이 다 부러워할 만큼 잘 키웠고 돈도 잘 벌고 있고 내 인생에 예쁜 딸만 없지 가질 거 다 가진 남들 부러운 스타일인 나는 왜 미친 듯이 쓰고 또 쓰는 걸까?


어쩌면 그녀에게 미쳐 있었던 뜨거운 청춘의 보상을 원하는 걸까? 아직도 여전한 지적허영심?


내가 이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얼굴 모르는 누군가는 하루 한 끼니를 걱정하고 있고, 누군가는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리고 있고, 누군가는 구박받으면서 생의 균열이 찾아온 것 자체를 모른 채로 성장한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예쁘게 잘 큰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대견하고 기특해 내 눈알이라도 하나가 필요하다면 빼서 주고 싶다.


누구나 다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간다.

그 상처의 크기는 서로 비교할 수가 없다. 남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든 어떤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 가든 내가 지닌 상처가 제일 크기 때문이다.


뭐 나라고 힘든 일 없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상처와 아픔을 이겨내고 힘차게 살아가며 운명을 바꿔 나가는 사람들을 나는 응원한다.


내 안의 그녀는 발상이 떠오르면 일단 저지르고 본다. 반드시 글로 표현해야 한다. 내 머릿속까지도 마구 헤집고 파고 들어와 멋대로 어지럽혀 놓는데 정말 죽을 맛이다.

난 그녀가 싸질러 놓은 언어의 배설물들을 정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뒤처리 담당은 항상 나니까.

내가 글을 계속 써야 하는 이유다.


부산아가씨에게 그저 잘 보이려고 했던, 이해하지도 못하는 보르헤스 전집을 옆구리에 끼고 지적허영심의 덩어리에 꽉 차 있던 나에게서 벗어나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정말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기 위해 이 사회의 어두운 곳을 더 보는 노력을 하고 싶다.


그 안에도 삶은 존재하고 사랑과 기다림 그리고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약속이 있다.


그 길은 어쩌면 내가 죽을 때까지 모를 수도 있지만 시도는 해야 한다.


불알 두쪽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내가 그래도 이 만큼 사는 이유는 일단 저지르고 보는, 무력한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카리스마로 가득 찬 내 안의 그녀의 로켓과도 같은 추진력 때문이니까.


그녀를 믿고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볼까 한다.

단 한명이라도 내 글이 위안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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