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아이러니
다섯 살인지 여섯 살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자다가 이불에 오줌을 쌌다. 새벽이었다.
꿈에서 모닥불을 보았고 시원하게 불을 끄며 좋아했는데 현실은 난감했다.
그 잠깐 사이 별 생각을 다 했던 것 같다.
계속 자는 척할까? 아니면 막내누나 옆으로 슬쩍 도망칠까?
난 혼날 각오를 하고 엄마를 깨웠다. 엄마가 젖은 이불을 만지고 보더니 많이도 쌌네. 그러셨다.
엄마도 다 큰 놈이 이불에 지도를 그려 놀라셨나 보다.
엉덩이 맞을 각오를 하고 있는데
뭐 어쩌겠어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하시면서 이불을 치우셨다. 쉬 더 안 마렵냐며. 더 자.
난 울 엄마 아니었으면 지금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 하기도 싫다.
혹독한 사춘기 때 반항도 하고 사고도 쳤고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저 멀리 도망도 쳤었다.
아버지는 대화를 단절했지만 엄마는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나 몰래 학교에 두 번 찾아갔었다는 말을 하면서 우실 때 쌓여 있었던 내 분노는 화산처럼 폭발했고 미친 놈처럼 소리쳤다.
왜? 뭘 확인하고 싶어서? 도대체 왜! 이제 와서 뭘 어쩌자고! 산병신 만들어 놓은 게 누군데 왜!
엄마는 울기만 하셨는데 그 때 나 몰래 학교를 두
번 찾아간 아버지의 행동은 정준하 말처럼 그건 진짜 날 두번 죽이는 것이었다.
아이는 성장과정에서 성숙한 어른, 현명한 어른을 만나지 못하면 숨은 우연과 운명에 희생당한다.
자신의 가능성과 꿈을 스스로 발견하기도 전에 어른들과 세상이 정해놓은 틀 속에 갇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틀은 때로는 편견이고, 때로는 아집인데 가장 무섭고 슬픈 건 무기력의 학습이다.
무기력한 아이는 사랑받지 못했다는 기억 속에서 불행을 찾아 가는데 때론 그런 자신을 이겨내고 큰 성취를 이루어 내고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도 결국에는 원점으로 돌아온다.
행복을 눈앞에 두고도 불행을 찾아간다.
그래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지식이나 훈육이 아닌 그의 내면을 바라봐 줄 수 있는 따뜻한 시선과 삶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 줄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다.
한데, 숨은 우연과 운명으로부터 지배당하지 않고 희생당하지 않는, 내적불행이 없는 행복한 아이로 성장하게 해주는 현명하고 성숙한 어른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숨은 우연과 운명의 희생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