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의 힘
빠르고 신나는 태평소 소리와 함께 화면이 열린다.
고려시대 청자 양각죽절문이 탄생해 두 손으로 높이 들고 기뻐하는 도공의 모습은 촌스럽기 짝이 없다. 도공을 연기한 배우의 의상과 분장은 조잡했고, 심지어 가장 중요한 배우의 연기력이 삼류에 가까웠다. 일명 발 연기라고나 할까? 그래도 속도감 있는 구성 때문인지, 제법 집중이 된다.
영상은 양각죽절문의 탄생과 그 생애를 단 3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보여주고 있었다. 조선시대를 지나 현대에 오기까지 일제강점기와 해방기를 거치며 일본주인을 만나 바다를 건너갔다가 다시 한국 광산주인에게 팔리는 장면이 초반 1분을 차지한다. 군부독재에 맞서는 시민들의 시위 장면이 스쳐 지나가면, 한옥식 호텔 아일랜드가 맨바닥을 다지고 세워진다. 호텔 로비에 양각죽절문이 전시되는 모습과 함께 주인이 바뀌었을 때마다 치솟는 청자의 가격이 자막으로 표시된다. 여기까지가 2분이다. 최종가격 24억. 마지막 주인은 호텔 아일랜드의 회장 진부희의 손에 쥐어지고 뉴스앵커의 보도장면이 이어진다.
양각죽절문 국보 제169호 지정.
이상 호텔 아일랜드 로비에 장식되어 있는 국보 169호 청자 양각죽절문의 홍보영상이다.
호텔 아일랜드는 한옥식 건물로도 유명하다. 더 유명한 건, 이곳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국보청자 양각죽절문을 모두가 볼 수 있게 로비 중앙에 전시해 둔 것과 그 옆에 50인치 모니터로 3분짜리 홍보영상을 24시간 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청자는 만질 수가 없다. 눈으로만 보아야 한다. 강화유리 속 900년 역사를 간직한 보물청자는 홍보영상과 함께 24시간 첨단 도난방지시스템이 작동 중이다.
그녀가 호텔 로비에 처음 등장한 건 신입사원 면접 때가 아니다. 꽤 오래되었다. 호텔리어로 입사한 뒤로도 유독 청자 앞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던 그녀는 회장과 경영진들의 총애를 받았다. 하지만 객실청소원이나 레스토랑 웨이터리스에게는 천하의 개 쌍년으로 통했다. 사람을 서열로 나누어 윗 서열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정도로 깍듯하고 아래서열에게는 제멋대로이며 함부로 막 대하는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인 것이다.
아, 남자는 노인이건 아이이건 그녀의 서열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친절하다. 여자만 해당한다.
사람에 따라 사용하는 말투와 행동이 전혀 다른 그녀에게는 잘 나가는 검사 애인이 있었다. 고급 술집에서 접대부로 있을 때 그 검사를 만났는데 그토록 친절하고 다정하던 남자가 막상 동거에 들어가니 변태성욕자에 소시오패스로 둔갑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도 사실 좋아서 만난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공부만 잘한 덜떨어진 놈인 것 같아 대한민국 검사를 치마폭에 가두고는 쥐락펴락 할 계획이었다. 한데, 막상 살아보니 이렇게까지 미친 변태 놈일 줄이야.
그래도 얼굴은 때리지 않았다. 방언에 가까운 욕설과 함께 등짝을 허리띠로 채찍질한 뒤 성욕을 충족하면 선물처럼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는데, 호텔 아일랜드 입사도 그 선물 중의 하나였다.
그녀는 또 동거남을 통해 고위급 검찰과도 친분을 쌓아 나갔는데, 그중 한 명이 대검찰청 검사장이자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K다.
K는 그녀의 동거남 검사를 수족처럼 부린다. 말은 가족이라면서, 아끼는 만큼 키워준다면서 이용만 해 먹고 있는 것이다. 방언에 가까운 욕설 안에는 잘 들어보면 K도 있었다.
청자를 좋아해 그 앞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건 K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가격이 얼마라고?
24억입니다.
그녀와 K는 청자 앞에 나란히 서서 청자 얘기만 한다.
저 녀석. 천오백만 원일 때 잠시 내손에 머물렀었지. 그때는 국보도 아니었어. 국보가 되면서 내 품을 떠나버린 거야.
어떤 사연인지 그녀는 묻지 않는다. K가 알아서 다 털어놓는다.
20년 되었나? 이 호텔 사장이 바뀔 때니까. 진사장 나 아니었으면 지금 저 자리에 없어.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가격을 더 높여볼까 해요.
무슨 수로?
행사죠. 영화인의 날 유명 연예인들을 초대해 여기에 세울 거예요. 그들에게 재미로 즉석 경매를 붙이는 거죠. 어차피 사지도 못할 거 막 부를걸요? 시작가 24억. 과연 얼마로 끝날까요. 자연스러운 언론 홍보 후 실제 경매에 내놓으면 최소 두 배는 오를 겁니다.
그녀의 말처럼 호텔관리자 경영진 회의에서 그녀가 내놓은 호텔 마케팅전략 이벤트는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실행된다.
그녀가 경매진행자로 나선 가상경매에서 청자는 3백억으로 최종 낙찰되고 그 주인공은 바로 그녀다.
경매진행자가 갑자기 경매자로 돌변해 경매가를 때리니 연예인들과 진 회장 그리고 경영진들이 포복절도하며 그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행사장의 즐거운 분위기는 방송과 SNS를 타고 폭발적으로 퍼져나간다.
청자의 잠정 가치는 훌쩍 뛰어올랐다. 추정 감정가 1천억 돌파. 전문가들이 내놓은 종합의견이었다.
행사가 끝난 밤, 3분 정전과 함께 청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진 회장이 보고를 받고 들어와 확인에 들어간 CCTV 영상기록은 그녀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긴급 경영진 회의가 열렸다. 처녀귀신에게 홀렸다가 정신을 차린 총각들처럼, 그녀의 실체를 확인한 경영진은 충격에 빠지고, 오랜 시간 침묵한다. 입사지원서와 함께 그녀가 제출한 서울대 고고학과 졸업장과 6개 국어가 가능한 큐레이터 자격증은 다시 보니 가짜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이렇게 허술하고 대충 만들어진, 조잡하기 짝이 없는 위조문서를.
그녀의 눈부신 미모와 청아한 목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목구멍에 뭘 한 번도 넣지 않은 성대는 저런 신비한 목소리를 간직하게 되는 것일까? 속된 말로 너무 예쁜 여자는 똥도 안 싸고 이슬만 먹는다더니, 딱 그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도둑년이다. 한데, 도둑년이 24억짜리 국보청자를 훔칠 목적으로 학력위조에 경력위조라는 가면을 쓰고 호텔리어로 입사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너무나 많았다. 그녀의 범행은 단순했다. 정전이 일어나도 보안시스템과 카메라는 작동한다. 그걸 그녀가 몰랐을까?
자, 여러분 보세요. 내가 훔쳐가요.
영상을 보면 누가 봐도 그녀였다.
정전은 어떻게 된 겁니까?
전기설비담당자가 개처럼 끌려와 증언한다. 진 회장의 부하들에게 얼마나 심하게 얻어맞았나, 퉁퉁 부은 얼굴은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설비담당자가 억울하다며 공개한 공문메일은 더 기가 차다. 그녀가 보안시스템 작동확인을 위해 3분 정전을 공문으로 정식 요청했다. 발신인의 이름은 보고 또 보아도 그녀다.
당장 호출해. 아니, 이년 잡아와. 그냥 잡아끌고 와. 전화를 안 받으면 집으로 쳐들아가서 잡아 오고 집에도 없으면 밀항이든 뭐든 튈 수 있는 경로란 경로는 전부 다 차단해 잡아와. 무조건 잡아 와, 당장!
진회장이 격노해서 소리친 뒤, 위조문서의 증명사진을 본다.
어디서 봤을까. 진회장이 기억을 더듬는다.
보물을 훔쳤으면 그걸 들고 어디든 도망을 쳐야지, 출근도 당당하다.
호텔을 발칵 뒤집어 놓은 년의 행동은 어제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다만, 그녀의 뒤를 새카만 개처럼 한 남자가 따라다니고 있다는 게 달랐다.
K였다. 진회장의 호출에 그림자처럼 그녀를 따라 들어온 K는 압수랍시고 청자를 자기가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압수?
네. 회장님은 문화재 국보 제169호 양각죽절문을 상대로 불법홍보를 통해 덩치를 키워 가격을 높였고 이는 곧 자유 시장 경제질서 구현을 위한 공정거래법에 위반 됩니다. 또한 이로 인해 발생할 이익에 대한 세금은 횡령과 동시에 비자금조성으로 이어지니….
검사장님. 지금 장난하십니까?
아니요. 회장님은 지금 중대법을 위반한 피의자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겁니다.
진회장이 듣다 못해 격노하며 일어선다.
당장 이익이 발생한 게 아니잖아! 그러면 이 도둑년은 뭐야?
어허, 거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도둑년이라니요. 이분은 용감한 제보자이자, 소중한 문화유산을 범죄피의자로 부터 이동조치라는 매우 적절한 절차를 통해 지켜낸 분입니다.
그래, 이제 알겠네. 언제부터 작당한 거야?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각오해. 이런 천하의 못된 도둑놈년들 같으니라고.
진회장은 이 때만해도, 지금까지 쭉 그래온 것처럼 자신만만 했다. 싸움을 걸어온 이 잡것들을 상대로 통쾌하게 박살내 후회하게 만들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K의 말은 곧 현실로 이루어졌다.
그녀는 검찰 보도 자료를 통해 언론의 각광을 받고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연말타종행사에 초대되어 용감한 시민상을 받는다.
진회장이 검찰포토라인에 섰을 때 그녀는 방안에서 홀로 오래된 사진을 꺼내 보고 있었다.
그녀로 보이는 꼬마 아가씨와 양쪽에서 손을 잡고 있는 그녀의 부모가 호텔 아일랜드 로비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그들의 뒤로 양각죽절문이 보인다.
그녀의 기억 속, 사진을 찍어준 남자는 아빠의 비서다. 지금 TV를 통해 보고 있는 젊은 날의 진회장인 것이다.
그녀의 아빠가 세운 호텔 아일랜드는 초기경영난에 허덕였고 미래가치를 알아본 큰손들의 매매 유혹이 끊이지 않았다.
진회장이 그녀의 아빠였던, 당시 호텔 사장의 인감을 사용해 대리인 자격을 획득한 후 호텔을 담보로 120억 불법대출을 승인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의 아빠가 오히려 불법대출 및 배임횡령혐의로 구속되었고, 호텔은 경매로 넘어간다. 진회장이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경매자들의 법원 입장을 가로 막고 살짝만 부딪혀도 드러눕고 폭행을 당했다고 신고를 하니, 큰손들은 호텔 아일랜드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채고 경매를 포기한다.
역시나 진회장을 포함한 조직폭력배 그 누구도 입건은커녕 경찰의 형식적인 수사만 받고 이 희대의 사건은 마무리 된다.
그리고 호텔 아일랜드는 법원 재경매를 통해 헐값에 낙찰된다. 진회장이 호텔 아일랜드의 새로운 주인이 된 것이다.
이 모든 판 뒤에는 바로 K가 있었다. 불법대출 심사개입, 그녀의 아빠를 기소, 은행의 경매 결정 개입. 조직폭력배 동원 용인에 경찰수사압박까지.
그 대가는 청자와 함께 호텔 아일랜드 년 수익의 3분의 1이었다.
그녀가 동거남 검사와 함께 구치소를 찾아가 진회장을 상대로 거래를 제안한다.
20년 전, 호텔을 차지하는 과정은 K의 주도 아래 이루어 졌다. K의 만행을 기자회견을 통해 고백하고 지금까지의 상납장부를 공개해 총장 낙마를 유도하라. 내사를 받게 하면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진 않을 것이다.
그녀의 제안을 가만히 듣던 진회장이 그녀를 알아본다.
그래 어쩐지 처음부터 낯이 익었어. 그 꼬마 아가씨 였구나. 아버지 잘 계시냐?
그녀가 오래도록 진회장을 노려본다. 진회장이 똑같이 노려보더니 이내 눈을 내리 깔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그 동안 부귀영화를 누렸으니 늘그막에 속죄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텐데?
내가 미쳤어? 같이 죽을 짓을 하게? 그리고 이렇게 된 건 네 아버지의 무능함 때문이지 내가 잘못한 건 없어. 호텔 살아난 거 봐.
그래, 그럼 모든 걸 다 잃고 남은 평생을 감옥에서 썩어봐.
사기꾼에 도둑년 따위가 무슨 힘이 있어서? 네 년이야 말로 학력위조에 취업사기 거기에 특수절도까지 종합선물세트로 싹 다 고소할 테니 수사 받을 준비나 하고 있어.
20년 전 불법대출, 조직폭력배 동원 법원경매방해 혐의로 여기 내 남친께서 당신을 직접 기소할 거야. K는 다시 손에 들어 온 보물 지키기 위해 이번엔 당신 절대로 안 봐줄 걸? 그러게 왜 한 번 넘겨 주었던 청자를 국보로 만들어서 다시 뺏은 거야? 그 양반 그 때 얘기만 하면 입에 거품 물던데.
어디 맘대로 해봐.
진회장이 그녀를 향해 비웃음을 날리더니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녀의 동거남을 향해 혀를 찬다.
끌끌끌…. 사내놈의 자식이 어디 할 게 없어서 계집 뒤치닥 거리나 하나?
그녀의 동거남이 씩 웃으며 핸드폰을 켜고는 음성을 들려주었다.
진회장 그 늙은 여우 어떻게든 날 끌어내리려 하겠지.
그 자가 뭘 하든 아무 상관 없잖습니까?
상관이 있어. 호텔 거저 드시게 만들어 준게 나니까.
그렇다고 해도 대가를 받은 게 없으면, 설령 받았다고 해도 그 증거가 없으면 무슨 소릴 떠들어도 그저 헛소리일 뿐입니다.
그렇지. 근데 그게 있을 것 같으니까 문제인 거지. 진회장 기소 진행하고 압수수색 영장 나오면 샅샅히 뒤져서 상납장부부터 확보해.
알겠습니다.
그녀의 동거남 검사가 음성녹음을 껐다. 진회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두 주먹을 움켜쥐고는 부들부들 떤다.
그녀가 말한다.
당신도 잘 알잖아? 검사들 전결처리. 총장을 포함한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거. 내 남자가 당신 하는 거 봐서 전결처리로 끝내면 기소도 중지되고 K만 끝장나는 거야. 이제 알겠어? 내가 여태 무슨 말했는지?
진회장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의 양심고백은 세상을 놀라게 했고, K는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차기 검찰총장 유력 후보자 K의 두 얼굴.
조간신문 1면을 장식한 내용은 K를 몰락시키기에 충분했다.
20년 전, 호텔 아일랜드 인수 과정을 둘러싼 이권 개입과 조직폭력배 동원 용인과 경찰수사 압박에서의 권력남용 그리고 최근 문제가 된 국보 보호조치가 개인소유를 위한 탐욕으로 밝혀지며 그 위선의 가면이 벗겨진다.
이런 개 후레자식들을 봤나? 감히 날 건드려?
K는 뒤통수를 맞은 사실을 깨닫고 그녀와 그녀의 동거남을 상대로 역공에 들어간다.
학력위조공범, 취업사기공범 그리고 특수절도 공범혐의로 두 사람을 다 기소한 것이다.
그날 밤, 그녀의 동거남은 모든 것이 다 엉망진창이라며 만취한 상태로 그녀를 때리고 학대하다 지쳐 잠들었다.
그녀는 잠든 동거남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들어 112를 눌렀다.
갈기갈기 찢어진 여자의 등이 세상에 공개 되었다. 그녀가 호텔 아일랜드를 둘러싼 진회장과 검사 K의 이권 다툼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사회적 공분이 터지고 청자 양각죽절문의 진짜 주인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녀의 학력위조와 사문서위조를 통한 취업사기가 뜨거운 감자로 남아 치열한 법정공방이 진행되었다.
모든 것이 다 계획적인 범행이다. 과거 술집에서 일을 하며 검사를 유혹했고, 그 영향력을 이용해 호텔에 입사한 이유도 청자를 훔치기 위해서다.
증인을 신청합니다.
호텔객실청소원이 증인으로 나와 그녀의 이중적인 인간성을 고발했다.
도대체 호텔에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인사는커녕 눈도 안 마주치고 청소업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현장을 찾아오면 간섭만 하는데 저는 진짜 방해만 되었어요. 그것뿐이겠어요. 일은 안하고 허구한 날 청자 앞에만 있는게 언제고 사고 칠 줄 알았습니다. 청소원인 저는 저렇게 웃음을 팔고 높으신 분들 비위만 맞추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네요.
재판장님. 지금 증인의 증언처럼 자신에게 영향력이 없는 사람들은 철저히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며 힘 있는 자들에게만 잘보이면 된다는 식의 행태는 모든 범죄자들에게 보이는 특정 행동양식입니다.
K가 증인석에 섰다.
먼저 청자를 훔쳐주겠다며 유혹해왔고, 연예인 홍보를 통한 몸값 올리기 계획을 설명했죠. 전 말렸습니다. 하지만 이미 일을 벌인 뒤였고, 한쪽은 도둑 맞았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범죄로 부터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이동조치였다고 주장하니 그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 청자를 잠시 보관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 때 그녀의 변호사가 일어섰다.
재판장님. 제 의뢰인이 문화재보호관리부에 문화재보호 이동신청을 요청하고 그 확답을 받은 기록을 증거로 제출합니다.
변호사가 제출한 공문서는 문화부장관 직인이 찍힌 진짜였다.
검사가 깜짝 놀라 그녀에게 손가락질 하며 심문에 들어간다.
피고인! 피고인은 진회장에게 앙심을 품고 검사장 K를 유혹해 둘 사이를 갈라놓아 서로 싸우게 하는 것이 주 목적 이었죠? 그 방법이 청자인 것이고요.
이의 있습니다.
기각합니다. 검사 측 계속하세요.
네 재판장님. 피고인이 호텔에 학력과 경력을 위조해서 까지 입사한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자신의 업무와 현장직원들에게는 관심이 전혀 없고 청자에만 유독 관심을 보였다는 이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곧 피고인의 특수절도와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검사 측의 주장은 인정되지 않았다. 나이가 지긋한 정원관리사와 경비 그리고 남자청소원은 전혀 다른 증언을 했기 때문이었다.
굉장히 따뜻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누굴 무시하다니요.
사실 증인으로 나선 객실청소원이 문제였다. 어느날 갑자기 관리자로 들어와 꼼꼼한 일처리와 회사기물관리를 정확히 하는 그녀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과 편견으로 부딪쳤고, 뒤에서 험담과 함께 그녀를 쓰레기로 만든 것이다.
그녀가 변론 기회를 얻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저는 학력을 위조하지도, 자격증을 위조하지도 않았습니다.
재판장님! 지금 피고인은 세치 혀로 법정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피고인.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새빨간 거짓말을 표정 하나 안바뀌고 당당하게 합니까?
저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봐요, 피고인!
검사가 터무니 없는 소리라며 위조된 증명서를 재판장에게 제출한 그 때였다.
이의있습니다.
그녀의 변호사가 일어났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조실부모로 세상에 홀로 남은 저희 의뢰인은 생존 그 자체가 고통이자 고뇌였고 동시에 기적이기도 합니다. 지금 제출된 검사 측의 자료는 그녀의 동거남의 폭력과 강압에 의해 진실을 말할 기회조차 없었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살아 남기 위해 무슨 일이든 못할까요? 하지만 술집작부에 창녀라고 무시하고 때리고 학대한 수준은 고문에 가깝습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폭력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저기 저 피고인 석에 앉아 있는 동거남은 제 의뢰인의 수입 절반을 가져갔고 도박으로 탕진했습니다. 이 사실만 보아도 제 의뢰인의 취업은 동거남의 강압에 의한 것이지, 청자를 훔칠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의뢰인의 학력과 자격증은 위조가 아닌 진짜입니다. 그 증거를 제출합니다.
변호사가 무죄의 증거를 제출한다.
변호사가 제출한 그 무죄의 증거 자료는 바로 진짜 서울대 고고학과 졸업장과 6개국어 공인인증자격증에 진짜 학예연구사 자격증이었다.
K와 진회장 그리고 그녀의 동거남은 모두 실형을 선고 받고, 호텔 아일랜드와 국보 양각죽절문 청자는 그녀의 소유로 귀속되었다.
그녀가 오랜 시간 계획해왔던 복수를 성공시킨 날, 그녀와 함께 기뻐해줄 부모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아빠는 교도소에서 진회장이 보낸 사람에 의해 살해당했지만 K에 의해 자살로 사건은 종결되었고 그 충격으로 인해 그녀의 엄마도 어린 딸을 홀로 남겨둔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날은 유독 한파가 심했다.
영하 12도의 밤, 잠옷 차림의 소녀가 맨발로 얼어붙은 도로를 걸으며 울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