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세월

원죄

by 임경주


아내를 찾았다. 싸움 끝에 접시를 던져 깨버리고 집을 뛰쳐나간 아내는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아파트단지내 공원에서 그네에 앉아 힘없이 발을 밀고 있었다. 아내의 등은 매끄럽고 예뻤지만 측은해보였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아내와 다시 정면으로 마주하려니, 맥주병의 뚜껑이 열린 것처럼 내 안에서부터 복잡하고도 무수한 감정들이 거품처럼 끓어올라왔다. 마침내 솟구쳐 오르면, 나 역시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돌아선 아내는 나를 보지 않았다.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돌아가야 할 곳인 집으로 향해갔다. 이대로 싸움이 끝나길 바랐지만,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아내의 눈을 피하며 전화를 받았다.

“나중에 통화해요. 전화 드릴게요.”

단호하게 말했다. 아버지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수화기에서 미약한 콧소리가 들려왔다. 어렸을 때 올려다보았던 아버지의 콧구멍과 코털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 코털은 지저분했고 더러웠다. 긴장한 탓일까? 불쾌했다. 수화기를 붙잡고 있는 내 손은 땀으로 가득 차 미끄러웠다.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박박 씻었다. 거울을 보았다. 내 얼굴은 사라지고 어머니의 얼굴이 나타났다. 거울 속,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병실에서 어머니는 가슴을 부여잡고 통곡했다. 의사는 수술을 해도 가망이 없다고 말했다. 관상동맥이 꽉 막혀 이미 심장의 삼분의 이가 괴사되었다. 믿지 못할 말이었다. 아버지는 몇 번 찾아왔지만 어머니를 돌보지는 않았다. 남편의 역할보다는 장례식장에서 상주의 역할에 충실했다. 조의금을 모두 가져갔다. 아내가 아버지를 가장 싫어하는 이유다.

“정말 너무하시네. 또 얼마를 해 달래?”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당신 자꾸 이럴 거야?”

“제발, 그만하자…….”

“뭘 그만해? 그 동안 우리가 해준 돈이면 월세 방 하나쯤이야 얻고도 남잖아? 도대체 무슨 염치로 우리 집에서 함께 살자는 거야? 하여튼, 해도 해도 너무하시잖아!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주 뻔뻔하다 못해 도가 너무 지나친 거 아냐?”

“그만해!”

“왜 소리를 질러! 당신 진짜 도대체 누구 편이야?”

난 진짜 누구의 편일까? 아내의 두 눈을 보고 말았다. 숨이 막혀왔다. 아내의 두 눈동자는 빨갛게 핏발이 서있었다. 어머니의 눈도 그랬었다.

“나 미치는 꼴 또 보고 싶어? 당신도 제발 좀 확실히 하란 말이야. 난 하여튼, 아버님이랑은 절대 같이 못살아!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내가 아버지를 모시면 아내는 집을 나가겠다고 말했었다. 아내는 아들을 낳고, 산후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돌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내는 몹시 힘들어했었다. 아내의 말처럼, 난 지금 확실하게 아버지에게 말해야 했다. 함께 살 수 없다고. 아내가 원하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난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내를 설득할 수도 없었다.

“내말 알아듣겠냐고?”

아내가 다시 물었다. 난 끝까지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아내는 안방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다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이 잠에서 깨지 않고 잘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아내와 각방을 사용한지 오래되었다. 창고로 사용하는 작은 방에 들어와 잠을 청해보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문득, 결혼하기 전에 만났었던 여인 K가 떠올랐다. K는 이혼을 했다. 며칠 전, 친구를 통해 내 연락을 기다린다는 K의 말을 전해 들었다. 하지만 난 K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아버지의 붓글씨 작품 중 -원죄(原罪)없이 잉태되신 성모마리아여- 이 문구 중에서 죄(罪)자가 떠올랐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서 대출관련서류를 머릿속에서 하나씩 정리했다. 도장은 어디에 두었더라. 난 붉은색 인주가 묻은 도장을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자고나면, 투자한 주식종목이 폭등하여 부자가 되어 있을 이변을 기대하지만 언제나 똑같은 아침, 똑같은 일상.

“그래 잘한다, 잘해. 그냥 이 집을 팔아서 다 드리지 그래? 난 나갈 테니까, 남자들 셋이 잘 살아봐.”

난 아내의 경고를 무시했다. 아침밥도 거른 채 출근길에 대출서류를 챙겼다.

“다녀올게.”

돌아누운 아내의 등을 향해 말했다.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섯 살배기 아들이 이불 속에서 머리를 내밀고는 아내대신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었다.

운전을 하면서도, 사무실 안에서도, 오전 내내 내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빨갛게 핏발선 아내의 눈동자였다. 죽어가던 어머니의 눈동자도 그랬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은행에 들렀다. 금리조건이 어떻게 되는지, 대출기한은 어떻게 할 것인지는 전혀 관심 없었다. 은행직원의 친절한 설명은 귓가에서 욍욍거리는 파리소리처럼 들렸다. 아내가 혹시 집을 나가버렸을까, 그것만 걱정되었다.

대출이 완료되었다. 주민등록증을 챙겨 넣다가 깜짝 놀랐다. 증명사진의 내 얼굴이 아버지의 얼굴로 보였다.

‘당신은 아버님을 너무 닮았어.’

문득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를 꼭 닮았다. 난 이 말이 정말 싫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파란색 대문이 화려하고 기둥에 초인종이 달린 양옥집으로 이사를 했었다. 무당이 징을 치며 굿하던 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동네노인이 내 얼굴에 새끼손가락을 세웠다.

“잘 생긴 게 아버지를 꼭 닮았네? 네 아버지 능력이 보통 능력이 아닌 것이여! 두 집 살림을 아무나 하나?”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냈었다.

“이 영감탱이가 노망 들렸소! 취해도 곱게 취해야지. 당장 나가쇼!”

어머니는 그 노인의 등을 파리채로 때리며 마당으로 내쫓았고 소금을 뿌렸다.

이웃사람들의 시선은 싫었지만, 이사한 집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전에 살던 셋방과는 달리 넓은 마당이 있어서 좋았고, 단감나무와 석류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어서 좋았다. 특히 작은아버지의 집과 가까워서 좋았다.

작은아버지는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왔다. 나는 엄했던 아버지와는 달리 인자하고 밝고 농담을 좋아해 친구처럼 우리를 곧잘 웃겨주었던 작은아버지를 무척 좋아했었다. 작은아버지가 집에 놀러오면 집은 꽉 차보였다.

난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자주 비교해보았다. 작은아버지는 마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지네를 발견하면 젓가락으로 잡아 머리만 떼어내고 산 채로 상추쌈을 싸먹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같은 형제지만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정이 항상 목말랐던 나에게 작은아버지는 새끼고양이를 안겨주었고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사촌형제들과 함께 목욕탕에서 서로의 등을 밀어줄 때면 작은아버지가 진짜 아버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위로 누나가 넷이나 있는데, 누나들 모두가 나처럼 작은아버지를 좋아했다. 큰누나는 작은아버지를 위해 술상을 봐주는 것을 즐거워했다. 작은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기분이 좋아져서 이야기보따리를 술술 풀어놓았다. 난 아버지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내가 아버지에 대해서 아는 것은 서예가이기 전에 경찰이었고, 서울에서 서예학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과, 웃지 않는 얼굴에 갈기 힘든 먹물 그리고 묵묵히 써내려가던 붓글씨와 작품이 완성되면 하얀색 화선지 위에 찍히던 붉은색 낙관이 전부였다. 하지만 내가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은 서울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는 그 얼굴 모르는 여자였다. 작은아버지는 아버지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그 여자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어떻게 생긴 여자일까? 작은아버지도 내가 아버지를 쏙 빼 닮았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나는 갈 곳을 잃은 사람처럼, 의자에 앉아 주민등록증의 증명사진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문득 K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전화를 걸고 싶지는 않았다. 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끝났다. 아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회사에 전화를 했다. 이대로는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 반차를 사용했다. 은행을 빠져나와, 곧장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아내는 집을 나가지 않았다. 아내는 나를 본체만체, 울고 있는 아들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이 욕심쟁이야! 친구 걸 왜 빼앗아?”

난 아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아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고 혼을 내는 걸까? 아들은 나를 보더니, 더욱 서럽게 울었다.

“도대체 내 아들을 왜 울리는 건데?”

나는 옆집아이가 가지고 놀고 있는 전화기장난감을 빼앗아 아들에게 안겨주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상처주고 싶지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너는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확신시켜주고 싶었다.

“아빠가 최고지? 사랑해, 아들!”

난 표현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들을 껴안고 뺨을 비볐다. 옆집아주머니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더니, 아내에게 대충 인사하고는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갔다.

“정말 왜 그래? 잘못했으니까 혼 내키는 건데 사람이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서 어디에 써먹을까? 이사 와서 아는 사람 한명도 없이 지내다가 겨우 친해졌는데, 앞으로 저 아줌마 얼굴을 내가 어떻게 봐?”

“내가 뭘?”

“내가 뭘? 저 아줌마 방금 불편해하는 거 못 봤어? 제발 좀 그렇게 티 좀 내지 마! 유난 좀 떨지 말라고. 자기 자식 사랑 안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어? 꼭 그렇게 티를 내야 돼?”

아버지는 과연 나를 사랑하긴 했을까? 내가 입을 꼭 다물어버리자, 아내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돈은 보냈는지, 회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지금 집에 와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아내는 신경질적으로 설거지를 시작했다. 난 집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악착같이 살아왔다. 어렸을 때부터 그토록 꿈꿔왔던 내 집 장만의 꿈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것은 무엇일까? 가슴속이 뻥 뚫려 있는 것만 같은 이 공허함의 정체는 정말 무엇일까? 나는 아내의 등 뒤로 다가갔다. 아내의 매끄러운 등을 보며 말했다.

“아버지, 내일 집에 오셔…. 짐은 나중에 한꺼번에 옮기자고….”

설거지를 하는 아내의 손이 멈추었다. 난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물소리만 들려왔다.

“셋이 잘 살아봐.”

아내는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수돗물을 잠그지도 않고 고무장갑을 신경질적으로 벗더니, 베란다로 나갔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방충망까지 열어젖힌 아내는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난 고무장갑을 끼고 아내 대신 설거지를 시작했다. 베란다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한숨소리는 수돗물소리에 묻혔다.

주방창문을 통해 도로풍경을 내려다보았다. 가로수의 연등하나가 수거되지 않아 바람에 너덜거렸다. 가로수마다 줄을 이어 화려하게 불을 밝혀주었던 연등이었지만, 이제는 홀로 수거되지 않아 낡고 지저분하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석가탄신일 전날이었다. 그날, 전시회장에서 그렇게도 밝은 어머니의 얼굴은 처음 보았다. 어머니는 하늘색저고리에 밤색치마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서 환하게 웃었다. 아버지의 옆에 딱 붙어 손님들에게 인사했다. 그 모습과 표정이 너무나도 곱고 예뻐 다른 사람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얼굴이었다. 누나들 중에 제일로 예쁜 누나가 셋째누나인데 그 때 어머니의 얼굴은 셋째누나의 얼굴처럼 예뻤다.

전시회가 있기 전날, 서울 행 버스에 오를 때만 해도 어머니의 얼굴은 달랐다. 내 손을 꼭 붙잡고 버스에 올라탄 후, 도착할 때까지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터미널에 마중 나온 아버지를 만난 순간, 어머니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화사하게 변했다. 어머니와 난 아버지를 따라 식당에 갔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서예학원도 구경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우리를 집이 아닌 여관으로 안내했다. 난 여관입구에서 들어가기를 망설이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여관에서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여관에서도 아버지는 붓글씨를 썼고, 난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먹을 갈았다. 어머니는 거울 앞에서 아버지가 사준 노란색레인코트를 입어보며 물었다.

“엄마 예쁘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예뻤다. 영화 속의 여주인공 같았다.

어머니가 빨리 자라며 이불을 펴주었다. 어색했다. 어머니도 어색해했고 먼저 이불에 눕는 나도 어색했다. 장시간 버스여행으로 피곤한 탓에 눈을 감자마자 잠들었다. 하지만 얼마나 잠들었을까? 나는 거친 숨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뜬 순간, 어머니의 알몸을 보았다. 재빨리 눈을 감았다. 그대로 있기가 무척 힘들어, 조심히 등을 돌렸다. 순간,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진정되지 않은 호흡은 서로 뒤엉키고 있었다. 난 베개가 비뚤어진 탓에 목이 불편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입안에 고인 침은 목구멍으로 겨우 넘어갔다.

“불 꺼…….”

아버지가 속삭이듯 말했다. 어머니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내 머리위로 걸어와 전등을 만지자 방이 어두워졌다. 창문을 통해 달빛이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난 살며시 눈을 떴다. 어머니의 팔을 보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어머니의 팔은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화선지 같았다. 어머니는 다시 아버지의 옆에 누웠다. 보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의 몸 위로 아버지의 몸이 포개지고 있었다. 곧 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친 숨소리가 다시 뒤엉키었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잔상으로 남은 불빛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밤하늘의 별처럼 복잡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불규칙한 것들로 가득 찬 세계에서 아름다운 성좌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난 몸이 불편해도, 마음은 편안했다.

잠시 후, 깔깔깔 거리는 어머니의 웃음소리와 함께 다정하게 들려오는 두 분의 대화소리는 내 마음을 더욱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많이 컸네.”

아버지는 내 목을 들어 베개를 고쳐 베어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이불을 목까지 덮어주었다.

“자식들에게 좀 다정하게 대하면 안돼요? 아버지를 너무 무서워하잖아요.”

어머니가 속삭이듯 말했다.

“버릇없어질까봐……. 오랜만에 보면 좋은 소리가 잘 안 나와. 떨어져 사니까……. 옆에서 자꾸 가르쳐야 하는데…….”

“서울까지 올라왔는데 어디 놀이공원이라도 좀 같이 가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요…….”

“같이 놀러가는 것도 좋지만, 이제 와서 내가 자식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글씨를 더 열심히 쓰는 모습 보여주는 것밖에는 없는 거 같아…….”

난 어머니의 긴 한숨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들었다. 그 얼굴을 모르는 여자에 대한 말은 끝내 듣지 못했다.

연등이 장식된 거리를 돌아 전시회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진한 묵향이 나를 반겼다. 묵향은 아버지의 냄새였다. 전시회장에 걸려있는 아버지의 작품들은 위대해보였다. 작품마다 찍혀 있는 붉은색 낙관은 태양을 본 것처럼 내 두 눈 속에 들어와 박혔다. 그것은 아름다운 성좌였다. 아버지의 작품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무실에도 걸려있었다. 그 때도 그랬다. 교무실에 걸려있는 아버지의 글씨를 처음 발견했을 때, 그 붉은색 낙관을 알아보았을 때, 내 심장은 기쁨을 넘어 희열로 가득 차 벌렁거렸다.

나에겐 긍지였다. 자랑이었다. 돈 보다 더 크고 값진 정신적 유산이었다.

전시회장에는 국회의원들도 찾아와 아버지를 축하해주었고, 과거 경찰학교동문이라는 경찰서서장도 찾아와 축하해주었다. 어머니는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면 어김없이 다가와 귓속말로 저분이 누구라며 설명을 해주었다.

거대한 성모마리아를 그린 화가의 그림 밑에 아버지의 글씨가 들어간 합동작품은 압도적이었다. -원죄(原罪)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罪는 한 방울 먹물을 감추고 있다. 아버지와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다.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 인사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활짝 핀 목련처럼 화려하고 예뻤다. 하지만 난 여자 손님이 찾아올 때마다 긴장을 했었다. 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어머니도 나처럼 여자 손님을 대할 때면 긴장한 얼굴이었다.

전시회가 끝나갈 무렵, 어머니는 어떤 힘든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과도 같은 통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난 확신할 수가 있었다. 그 여자는 초대받지 못했다. 틀림없었다. 부엌에서 울고 있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머니는 조용히 내 손을 붙잡고는 손목에 시계를 채워주었다. 아버지가 사주더라. 검정색 전자손목시계였다. 손목에 휘감기는 시계의 감촉은 내 목 뒤를 받쳐준 아버지의 손처럼 따뜻했다. 난 시계를 벗어 어머니의 손목에 채워보았다.

어머니의 손목은 달빛에 보았던 것처럼 유난히 희고 가늘었다. 그 위에 채워진 시계가 먹물처럼 새카맣게 보였다.

나는 죄(罪)자를 떠올렸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만 존재하는 끈끈한 유대감과 정이 느껴졌다. 난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쏟아지는 수돗물에 상념은 그릇의 거품처럼 씻겨나갔다. 낡은 연등에서 시선을 돌려 설거지에 집중했다. 그릇과 접시를 헹구고 또 헹구어 냈다.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계속 헹구어냈다. 설거지를 끝낸 나는 베란다로 향했다.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아들.”

엄마치마폭에서 벗어나질 않고 있는 아들에게 손짓했다. 아들이 달려와 안겼다. 난 아들의 손을 잡고 아내에게 말했다.

“산책 좀 하고 올게.”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창밖만 바라보고 서 있을 뿐이었다. 난 조심히 현관문을 닫았다. 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아내가 저대로 뛰어내릴까봐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결국 아내는 주저앉아 참고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내의 울음소리는 어머니의 울음소리와 같았다. 그 날의 악몽이 떠올랐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단칸방하나로 셋방살이를 할 때였었다. 추석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어머니는 한바탕 울음을 터트리고 난 후, 복받쳐 올라오는 서러움을 진정하지 못한 채 흐느끼고 있었다. 차라리 귀신이기를 바랐다. 어머니가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그 울음소리는 부엌에서부터 새어나오고 있었다. 귀신이 아니라면, 주인집할머니이길 바랐다. 다가가기는커녕, 부엌문을 바라보고 서 있는 것조차도 무서웠고, 끔찍했다. 뒤돌아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난 부엌문을 열고 들어갔다. 양철문의 녹슨 경첩이 소름끼치는 소리를 자아냈고 어두운 부엌 안으로 한발을 내딛는 순간, 매우 이질적인 광경을 보았다. 어머니는 아궁이 옆에 쭈그려 앉아 울고 있었다. 작은 계집아이 같았다. 어머니가 고개를 들어 올려 나를 보았다. 어머니의 머리카락은 심하게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은 피멍과 함께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통곡과 함께 구토를 했다. 나는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군가가 온몸을 사포로 빡빡 문지르는 것처럼 소름이 돋아났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어머니를 이렇게 만든 자를 내 손으로 때려주고 싶었다. 그 때 방안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난 구두를 보았다. 구두는 굉장히 컸다. 아버지가 집에 왔다. 누나들은 어디로 도망갔을까?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분노는 깨끗하게 사라졌다. 나도 어머니처럼 저렇게 될 것만 같아 무서웠다. 들어와라. 나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바닥에 모포를 깔고 붓글씨를 쓰고 있었던 아버지는 뜻밖에도 밥상을 차려주었다. 밥상과 부엌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울음소리, 그 묘한 경계에서 난 보리밥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먹어라. 안 먹고 뭐하냐.”

난 아버지의 낮은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겁에 질린 상태로 수저를 들고 보리밥을 가득 퍼서 입안에 담고 꾸역꾸역 씹어 삼켰다. 목이 메여 수저로 된장국을 연속 퍼먹었다.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아버지는 다시 붓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울고, 아버지는 붓글씨를 쓰고, 난 보리밥을 먹고 먹을 갈았다.

난 끝내 어머니의 편이 되어주질 못했다.

그날 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 번 더 크게 싸웠다. 일방적인 어머니의 공격이었다. 그 여자랑 살 거면 날 먼저 죽이라고 소리쳤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미친 여자처럼 굴었다. 아버지의 얼굴과 머리를 마구 잡아 뜯었다.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오더니, 같이 죽자고 울며 소리쳤다. 아버지의 바지를 잡고 찢었다. 계속 참고 있었던 아버지도 결국 참지 못하고 어머니를 밀고 때리며 그래 같이 죽자고 소리쳤다. 어머니는 소리치며 울다가 이불에 토했다. 속의 것을 모두 토했다. 울다가 토하고, 토하다가 울었다. 누나들과 나도 구석에 몰려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아버지는 집을 뛰쳐나갔다.

새벽에 어머니는 문 앞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 때 난 오래도록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도 아버지처럼 집을 뛰쳐나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날이 밝아올 때까지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현관문을 열자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가 힘차게 들려왔다. 아내는 나를 보더니 청소기전원을 끄고는 소파에 앉았다.

“당신은 아버님을 너무 닮았어.”

그렇게 말하는 아내의 눈동자는 어머니의 눈동자처럼 핏발이 서 있었다. 내가 아버지를 꼭 닮았다면, 아내는 어머니를 꼭 닮았다. 울음소리도, 매끈한 등도…….

“내 말이 틀렸어? 거울 봐봐. 닮아도 너무 닮았어. 완전 붕어빵이야. 남자 셋이 다 똑같이 생겼다니까? 어이구! 내가 못 살아. 피는 물보다 진하다더니.”

난 아내의 말에 대꾸하지 못하고 곤충도감을 찾아 펼쳤다. 밖에서 잡아온 곤충을 도감과 비교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이 곤충채집함의 뚜껑을 여는 바로 그 때였다. 거실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전화벨소리는 내 심장을 갈퀴처럼 파고들어와 쥐고 흔들었다.

“여보세요.”

채집함이 열려있었다. 곤충들이 빠져나왔다. 곤충을 싫어하는 아내가 기겁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아버지다.”

“네…….”

난 전화기를 귀에 대고, 채집함에서 빠져나오는 곤충들을 아들과 함께 잡아 담았다.

“무슨 소리냐? 비명소리 아니냐?”

“집사람이요. 벌레보고 놀라서요.”

“소란스럽기는……. 거기, 너 사는 곳 아파트주소 말해봐라.”

“버스 타기 전에 다시 전화주세요. 시간 맞춰 나가 있을게요.”

“그럴 필요 없다. 지금 아산에 도착했다. 주소 말해라, 택시 타면 된다.”

왜 아버지의 말투는 늘 화가 난 사람처럼 무뚝뚝할까. 난 아버지가 묻는 말에 잘 대답하지 못했던 어린아이처럼, 주소를 말하지 못하고 아내와 눈을 마주쳤다. 아내는 내 눈을 피했다. 떡갈나무하늘소 한 마리가 아내의 하얀 발 사이를 통과했다.

아내는 나를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이 다 벌레처럼 혐오스럽고 싫다는 듯 주방으로 도망치며 소리쳤다.

“싫다, 싫어! 정말 지긋지긋하다!”

나는 아내의 등 뒤로 다가갔다.

“아버지 지금 도착했어. 그동안 서울생활 정리하느라 돈이 좀 필요했나봐. 어쨌든 아버지나 나나 지금 당장 방 얻을 돈은 없어.”

“그래서 뭐?”

“당분간은 우리와 함께 살아야 된다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이야. 난 당신이 우리 다 버리고 친정에 가도 할 말 없어. 가고 싶으면 가.”

아내는 한참동안 내 눈을 노려보다가 소리쳤다.

“내가 우리 집 나두고 어딜 가? 어쨌든 방 얻을 때까지 만이야. 알았어?”

난 뜻하지 않았던 아내의 말에 두 눈이 커졌다. 아내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 그 동안의 걱정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난 아내의 대답으로부터 희망을 발견했다. 아내의 허리를 껴안고 소리쳤다. 고맙다, 사랑한다. 난 적극적으로 표현했지만, 아내는 거칠게 반항했다.

“대출받은 돈은 언제 다 갚고 방은 또 언제 얻어? 고모들한테 전화 좀 해봐요!”

“알았어, 알았어.”

이미 누나들에게 전화를 돌려보았다. 다들 알았다고만 말할 뿐 돈을 보내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긴 뭘 알아! 아 진짜 꼴 보기 싫어! 이거 못 놔?”

아내는 내 팔뚝을 물어뜯었다. 하지만 난 더욱 더 힘껏 아내를 껴안았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애증이 교차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정을 목말라 했던 나는 집안구석구석에서 아버지의 오래된 흑백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때는 아버지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었다. 동시에 예술가의 삶도 이해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꿈꾸던 삶은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 사진을 찾아보지 않았고 아버지와 예술가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것이 싫었다. 내가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도 싫었다.

택시 한 대가 앞에서 멈추었다. 돈 계산을 하는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가 택시에서 내리자, 난 시선을 돌려 외면했다. 일부러 외면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었다. 아버지는 말없이 뒤를 따라왔다. 승강기를 타서도, 현관문을 열 때도 난 고개를 숙인 채로 아버지를 보지 않았다.

“여기가 몇 평이냐?”

“24평이요.”

퉁명스러운 내 대답에 아버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난 평소처럼 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을 벗었다. 아들이 와락 안겨왔다. 몸을 돌려, 아버지에게 손자를 보여드려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돈이 필요할 때만 끈질기게 연락을 해오는 아버지가 미웠다. 세월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아이는 이렇게 자랐지만, 아버지는 늙고 병들었다.

“똑바로 서서 인사해야지?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해봐.”

아내는 떨어지지 않으려하는 아들을 강제로 떼어냈다. 똑바로 세우고는 머리를 누르며 인사를 시켰다. 아들은 인사는커녕 엄마의 치마 뒤로 숨었다. 그 모습이 어렸을 때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아버지를 올려다보지 않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월을 따라 어느새 많이 늙고 작아져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안쓰러운 마음과 꼴 보기가 싫을 정도로 미운 마음이 동시에 교차되어 괴로웠다. 내가 과연 평범한 직장인이 아닌 아버지와 같은 예술인이었다면 아버지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까? 문득 그 날, 새벽에서 동이 틀 때까지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난 이런 생각에 잠겨 있었던 것인데, 눈은 아버지를 노려보고 있었나보다. 아버지는 구두를 벗지 못했다. 세월을 따라 질기게도 날 따라온 어두운 기억들과 그래도 날 견디게 해주었던 행복했던 기억들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근심의 날들이 서로 뒤엉키며 교차하는 시간사이에서 나는 아버지를 죄인처럼 문 앞에 세워둔 채로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 들어오세요. 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헝클어진 머리로 눈물범벅이던, 어린 계집아이 같았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화가 났다. 겁에 질려 어머니의 편이 되어주질 못했던 비겁한 나 자신에 대한 화였다. 이제 와서 어머니의 편이 되면 가슴 속 죄송스러운 마음이 사라질까? 이 새카만 한 점이 감춰질까?

아버지는 그저 장례식장에서만 착실한 상주로 돈만 챙겨간 사람이라고, 아버지처럼 못된 사람과는 절대로 같이 살 수가 없다고, 아내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소리치고 싶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래도 아버지를 항상 그리워했다는 것이라며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며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때, 묵향을 맡았다. 아버지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려 낡은 가방을 내려다보았다. 저 가방 오래되었다. 저 가방에서 새어나오고 있는 묵향은 아버지의 냄새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 몰래 저 가방을 열어보았다. 가방 안에는 화선지를 비롯한 서예도구와 몇 권의 책이 있었다. 아버지는 여관에서도 저 가방을 열어 먹을 갈게 했고, 붓글씨를 썼다. 난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그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날 여관, 노란색레인코트를 입고 거울을 보며 좋아했던 어머니의 그 환한 미소.

“여보…….”

아내가 날 부르며 눈치를 주었다. 나는 말없이 손을 내밀어 아버지의 가방을 받아들었다. 제법 무겁다. 온기와 함께 묵직한 세월의 무게가 전해져오는 순간, 어색하고 낯선 분위기를 참지 못한 아들이 칭얼거리며 내 손을 잡아 안방으로 이끌었다. 난 아들의 힘에 이끌려 아버지의 앞에서 멀어졌다. 구두를 벗지도 못하고 서있는 아버지에게 끝내 말하지 못했다. 아버지, 들어오세요. 이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들을 핑계 삼아 아버지의 가방을 들고 어린아이처럼 안방으로 숨고 말았다. 방문을 닫고 등을 기댔다. 아버지의 가방에서부터 새어나오는 진한 묵향이 안방을 가득 채웠다. 밖에서는 내가 하지 못한 말을 아내가 대신하고 있었다.

“아버님… 들어오세요.”

“아가……. 당분간 신세 좀 지자.”

“네…….”

아내의 대답을 듣는 순간, 눈앞에 어머니의 등이 보였다. 고개를 돌린 어머니가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보내주었다.

아버지의 병세는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당뇨합병증이 심해져 안구를 적출해야만 했다. 말기치매까지 겹쳐져 환각과 망상에 시달렸고, 기억이 사라져 자식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기억은 화선지처럼 하얀 백지상태일까? 아니면 한 방울의 먹물이 튀어 박힌, 이대로 계속 사용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화선지와도 같은 상태일까? 아버지는 새카만 벌레들이 사방에서 기어온다는 말을 반복했다.

마지막 순간, 숨 쉬는 것조차도 힘들어하던 아버지에게 경련이 찾아왔다.

“아버지!”

내가 아버지를 부르자, 아버지가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벌레들에게 시달렸다. 저 벌레들이 날 잡아먹으려고 달라붙는다며 고함을 질렀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평생을 써온 글씨를 벌레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난 아버지의 두 손을 꼭 붙잡아주었지만, 경련은 멈추질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난 지켜보는 것조차 힘들어 차라리 두 눈을 감고 말았다.

젊은 모습의 아버지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모포를 깐다. 화선지를 펼치고 서진을 위아래로 고정시켰다. 옆에서 먹물을 가는 어린 나도 보인다. 먹을 움켜쥔 고사리 같은 손. 한 바퀴 돌리는 순간, 먹과 벼루가 부딪쳤고 먹물이 탁 튀어 올랐다. 애써 준비해둔 화선지에 한 방울 먹물이 튀어 박혔다.

고민하던 아버지가 날 향해 미소 지었다. 붓을 들고 글씨를 써내려간다.

-原罪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튀어 박힌 한 점은 罪자에 숨겨졌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잘 써졌네.

화선지를 망친 한 점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한 방울 먹물은 사라진 걸까?

처음부터 없었던 것일까?

아버지가 비명을 내질렀다.

“벌레! 벌레들이 달라붙어! 싫어! 싫어! 제발 좀 치워줘!”

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버지……. 벌레가 아니고 아버지 글씨예요. 아버지가 평생을 써온 글씨요. 그리고 엄마… 아버지 원망 안 해요.”

난 비뚤어진 아버지의 베개를 고쳐 베어주었다. 따뜻한 감정과 온기가 느껴지는 순간 폐를 찢던 아버지의 거친 호흡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꼭 붙잡은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내 손안에서 무엇인가가 모래처럼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것이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 고비를 넘기고 잠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호흡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 집안에 가득 차 있었던 묵향이 빠져나오며 코를 자극했다. 나도 모르게 문을 꼭 닫았다.

“왜?”

“잠깐만…….”

이렇게 새어 나가는 건 싫었다.

시간이 흘렀다. 난 다시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창문과 방문을 모두 다 열고 환기를 시켰다. 난 이제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세월을 따라 질기게도 따라온 이 슬픈 기억들이 과연 마음의 환기를 통해 사라질 수 있을까? 문을 닫았던 순간처럼, 빠져나가지 못하게 붙잡아두고 싶었던 행복했던 기억들은 어디에 간직해야 할까? 난 앞으로 힘차게 살아가고 싶다.

아내와 함께 아버지가 사용했던 방을 정리했다. 모든 걸 다 버렸지만, 아버지의 붓을 비롯한 서예도구들과 호가 새겨진 도장 그리고 낡은 가방만큼은 지금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原罪를 쓰기 전, 망쳤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향해 보내주던 아버지의 미소가 그립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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