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기무라란코(木村蘭光)2
기무라란코(木村蘭光)
16세. 95년 11월 모리오카(盛岡) 남부(南部) 번(藩) 출신. 화재로 부모님을 잃은 천애고아(天涯孤兒).
키 165센티미터. 몸무게 48킬로그램.
IQ210 천재(天才).
애브젝트 0도의 계획에 의해 부모님을 잃고, ‘나선문’ 가신 양도정의 양녀로 입양됨.
15살에 일본(日本) 동경(東京) 대학원(大學院) 체육학과 졸업(卒業).
'근육운동과 힘의 세계 그 역학의 법칙(MUSCLE MOVEMENT AND WORLD OF POWER MECHANICS A RULE)' 저자.
애브젝트 0도 일원(一員). 모추용 직속(直屬).
모추용 대행, 탁위소에 관한 성장보고서 작성 및 애브젝트 상부보고 대행(代行)…….
-애브젝트 7도, 탁위소의 감시자 기무라란코(木村蘭光)에 관한 보고서 중에서-
기무라란코는 위소의 그림자가 되어, 함께 움직였다. 위소의 아파트는 방이 세 개였는데, 하나는 표관장이 차지했고, 또 하나는 기무라란코가 차지했다. 위소는 불청객들에게 방 두 개를 모두 내주고 안방에서 생활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위소는 집에 들어오면 두 사람이 꼴도 보기 싫어 안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렇게 생활하다보니, 기무라란코가 화장실문제로 불편함을 호소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표관장은 30분 동안, 화장실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화장실문이 닫혀 있어도 뿌락, 하는 방귀소리가 멈추지 않고 들려왔다.
기무라란코는 화장실 앞에서 생리현상을 참다 못 해, 안방으로 쳐들어왔다.
“위, 위짜앙! 저 급합니다. 잠시 나가있어 주십시오!”
기무라란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방화장실로 향했다.
“뭐, 뭐야!”
화장실 문이 닫히자마자, 오줌소리가 쏴아! 하고 들려왔다. 위소는 민망해서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표관장의 뿌락! 하는 방귀소리가 거실화장실에서도 들려오고 있었다.
위소는 한숨과 함께 또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었다. 결국은 기무라란코가 화장실이 딸린 안방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기무라란코는 일단 발이 넓었다.
동경대학원 재학 중에 배화재단페노메논웨이브연구소의 교수와 연줄이 있어서, 위소와 함께 그곳에서 연구팀의 협조아래 체력측정을 시도했다.
위소는 바이오채성분 분석기에 올라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뛰었다. 뛰고 있는 동안, 한국검도협회장 모추용이라는 사람이 뒤에서 팔짱을 끼고 구경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의아해했다. 큰 키에 큰 덩치, 그리고 지독히도 못 생긴 얼굴에 굉장히 날카로운 눈매의 소유자였다. 그는 꼭 다문 입술로 인해 무척 강인해 보였다. 더군다나 입을 열면, 괴멸적인 치열 때문에 더욱 흉측해 보였다. 마치, 판타지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오크를 닮은 인간이었다.
위소는 애써 그를 무시했다. 체력측정에만 집중했다.
위소는 심폐지구력, 순발력, 유연성, 근지구력, 체지방비율까지 통합점수 중간성적을 받았다. 분석기에서 내려왔을 때 모추용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체력이 문제군요, 상위 1퍼센트로 올라야 합니다.”
위소는 기무라란코와 함께 로드에서 뛰었다. 기무라란코는 자전거를 타고 졸졸졸 따라왔고, 위소는 달리고 또 달렸다. 복부의 지방과 내장의 지방이 산소에 연소되면서, 방귀가 뿡뿡 나왔지만 뒤를 졸졸졸 따라오는 일본소녀 때문에 마음껏 터트릴 수도 없었다.
식단까지도 그녀가 직접 짜서 올렸고, 심지어는 연인처럼 위짱, 아! 하며 반찬을 집어 입에 넣어주기까지 했다.
위소는 몇 번이고 자신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놈들을 찾지도 못한 채, 이렇게 나선문의 재건을 위해 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답답했다.
위소는 지금이라도 그만두겠다고 말을 해야 한다고 고민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있는 표관장에게는 잔인한 짓이었다. 더군다나, 가면을 착용하지 않으니 변해가던 몸이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팔뚝과 종아리의 곤충가시는 깨끗하게 사라진 상태였다. 위소는 ‘나선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깊게 고민하고 깊게 생각해볼 일이었다.
‘나선탄’을 이루고 나면 무엇이 있을까. 위소는 궁금했다.
기무라란코가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온 뒤, 홍사범은 개밥에 도토리가 되었고, 현관문 앞에서 몇 번을 서성거리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어찌됐든, 위소의 삶은 짜증의 연속이었다.
표관장도 성은아줌마라는 사람의 전화를 받고, 외출이 잦아지더니 어떤 날은 아예 들어오지도 않았다.
위소는 그런 표관장에게 화가 났다. 누군가의 통제를 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 통제를 하는 자가 멋대로 생활한다는 것은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좋은 일이면 모를까, 불륜을 저지르며 말이다. 위소는 그동안 참고 참았던 말을 터트리고 말았다. 표관장이 새벽 4시에 들어왔을 때였다.
“저, 참을 수가 없어요.”
“왜 그러냐?”
“저 관장님과 함께 사는 것 힘들어요. 제가 나갈게요. 저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표관장은 자신의 잘못을 아는지라, 머리를 긁적거렸다.
“좋다. 그럼, 약속해라.”
위소는 표관장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절, 믿으세요.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표관장은 위소의 눈을 한참 쳐다보더니,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는 표관장이 나가자, 감옥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기무라란코와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은 달콤하기까지 했다.
헌데, 표관장이 빠져나가니 홍사범이 또 그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왔다. 어떤 날은 무대포로 위소의 집에 쳐들어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했다.
“위소야, 피아노연주회 티켓 끊어왔는데. 함께 가자. 응?”
하필, 티켓을 끊어 와도 위소와 라이벌이었던 -배화영재고등학교 시절- 김가영의 개인전이었다. 그녀는 재벌 2세였는데 성격도 괴팍했고, 툭하면 위소를 무시했었다. 위소는 보기 좋게 그녀를 실력으로 눌러주었지만, 아마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가 되었을 것이다. 위소는 그녀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그녀가 발전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속이 쓰리고 슬퍼질 것만 같았다.
“싫어요.”
위소가 툭 쏘자, 홍사범도 신경질이 나서 세탁기를 돌렸고, 청소기를 밀었다. 다리를 절며 청소기를 미는 모습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기무라란코는 홍사범의 청소기를 피해 식탁에서 소파로 옮겨 다니며 노트북에 무엇인가를 작성하고 있었다. 위소는 두 여자 사이에서 난감했다. 기무라란코는 홍사범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평소 하던 대로 행동했다. 한참을 노트북에 빠져있더니,
“에, 에취! 위짜앙! 단백질을 돈으로 계산하자면 1그램에 8억 7천만 원 정도? 호호호!”
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기무라란코는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가더니, 검은콩을 우유에 갈아 위소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홍사범은 청소기를 밀다말고 멈추어 서서, 입을 삐죽거리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뭐? 1그램이면 한 방울도 안 되잖아?”
“맞습니다. 이렇게 챙겨서 먹으면 몸이 얼마나 흡수 할 것 같습니까? 위짱의 몸무게가 65킬로그램이니까 하루에 65그램은 흡수해야 합니다.”
“돈으로 따지면 566억이네?”
“호호호! 단백질도 다 같은 단백질이 아니죠. 빈혈치료제로 사용되는 단백질 EPO를 얘기한 겁니다.”
“아, 그래……. 그러면 그렇지.”
홍사범은 설거지를 하면서 두 사람의 얘기를 들었다. 자신이 꼭 식모 같았다.
홍가연은 자신이 밀려나는 것이 싫었다. 기무라란코라는 어린 소녀가 재수 없었다. 그것은 여자의 질투였다.
쨍그랑, 하며 유리컵이 깨졌다. 일부러 한 것이 아니라, 거품 때문에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버렸다. 홍사범은 깜짝 놀라, 고무장갑을 벗고 파편을 주웠다.
“아!”
유리파편이 엄지손가락을 찔렀다. 위소는 곧장 달려왔다.
“괜찮아요?”
“가까이 오지 마!”
홍사범은 소리를 질렀다. 위소의 몸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다치니까, 오지 말라고.”
“다쳤잖아요.”
위소는 유리파편 따위 개의치 않았다. 피가 나는 홍사범의 손을 잡았다. 홍사범은 위소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나 할 말 있어. 잠깐 밖에서 보자.”
“왜…… 요?”
홍사범은 한숨을 내쉬더니,
“휴우, 나 네가 너무 안타까워서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라고 말하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위소도 곧장 뒤를 쫓아 나갔다.
위소가 밖으로 나왔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위소는 14층 계단을 뛰어내려 홍사범 보다 먼저 도착해 기다렸다. 위소가 숨을 헐떡거리고 있자,
“들어가 봐. 더 이상 할 얘기 없어.”
라고 말하더니, 차 있는 곳까지 절뚝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왜 그러세요?”
위소가 묻자, 홍사범은 차 앞에서 멈추었다.
“왜 그러냐고?”
“네, 왜 그러세요?”
“몰라서 묻니?”
“네, 모르겠어요.”
“나, 앞으로 도장 안 나갈 거야. 그런 줄 알아.”
“아, 왜요?”
“너 이러고 있으면 안돼! 정말 안돼!”
홍사범은 소리를 질렀다. 그만큼 호소력이 짙었다. 위소는 홍사범의 손을 붙잡았다.
“피가 계속 나잖아요.”
“이거 놔…….”
홍사범은 위소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위소는 홍사범의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빨아주었다. 한참을 빨고 난 뒤,
“아빠가 어렸을 때 이렇게 해주었어요. 금방 낫더라고요.”
홍사범은 위소에게 손을 붙잡힌 채, 꼼짝하지 못했다.
“연주회 보러가요. 낼 가요. 사범님과 같이 가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김가영 그 녀석 날 많이 무시했었거든요. 2년 동안 발전한 거 보면 배 아플 것 같아서 가기 싫었던 거라고요.”
“아, 그랬구나……. 그럼, 가지 말자. 내가 미안하다.”
“아뇨, 가요.”
“아냐, 아냐. 그건 그거고. 하던 얘기는 마저 해야겠어. 나 그냥 하는 소리 아냐. 너 도장 계속 나오면, 나 안 나올 거야. 나 도장에서 더 이상 너 안 봐.”
“사범님…….”
“넌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거야.”
“알아요. 나도 알아요. 나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힘들어요.”
위소도 속내를 터놓았다.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잔혹한 운명은 날 어디로 끌고 가는 것일까. 위소는 힘들었다.
“전 어디로 가야할까요? 제 길은 어디일까요?”
위소가 물었다.
“난 이제 차를 타고 이 길을 따라 여기를 빠져나갈 거야. 지금 이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인거지. 그리고 네가 가야할 길은 뒤돌아선 저 입구, 피아노가 있는 네 집이고.”
“사범님…….”
“위소야, 한 가지만 부탁할 게.”
위소는 홍사범의 손을 놓았다. 홍사범이 뿌리치고 있었다.
“잊지 만 마.”
뭘요? 라고 위소는 소리 없이 물었다.
“네가 피아노 치는 사람이라는 거. 넌 피아노 치는 사람이야. 세상에는 울고 싶은 사람들도 많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죽고 싶은 사람들도 많아.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그런 거 있잖아.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따뜻해지는 그런 음악. 난 네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해. 손가락이 부러져서, 세계 정상에 오르지 못하면 어때? 조금은 부자연스러워도 칠 수는 있잖아.”
위소는 마음이 짠해왔다. 홍사범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차에 올라탔다.
“사범님!”
하고 붙잡았지만, 차는 홍사범이 말한 길을 따라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