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스펙트럼 아이에게는 생각보다 더 세세히 알려줘야 한다
남편과 자주 다투지 않는 편이다. 성숙하게 이해하고 넘어가기 때문은 아니고, 그냥 묻어놓는다고 해야 할까. 기분이 나쁠 때 바로 그 자리에서 말하면 좋은데 몇 번 참다가 말하는 터라 그 말이 쉬이 곱게 나가지 않는다. 남편의 행동으로 인해 상한 내 마음과 행동에 대해서만 말하면 되는데, 송곳의 끝을 상대방에게 향하고 있다 보니 좋게 끝맺음이 되지 않곤 한다. 그래서 언성이 높아질 것 같으면 자리를 피하고 각자 시간을 가진 다음 대화를 나눈다. 어쨌든 그래서 아이는 부모가 싸우는 것을 거의 못 보고 자랐다.
가정에서 아이가 부부 싸움을 보지 않고 자라는 것을 의도한 건 아니나, 자연스럽지도 못했다. 아이는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채는 것이 아직 어려운데, 감정을 터트리는 상황을 많이 경험하지 못한 탓이 크기 때문이다. 엄마가 이래서 화가 났고, 엄한 사람에게 분풀이를 하기도 하며, 풀리지 않는 감정에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마지막엔 사과를 하며 안아주는 것을 일부러라도 보여줬었어야 했었나 보다.
그날은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와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방에 가열식 가습기를 쓰는데, 평소 물을 채우는 것과 세척하는 걸 내가 도맡아 했었다. 그날따라 물 채우는 것을 남편한테 부탁을 했다. 침대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면서 높은 곳에 가습기를 두고 써야 했는데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화장대 위에 놓고 썼다. 그런데 남편이 오랜만에 가습기 부품을 설치했던 터라 조립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물을 3리터나 채워 넣은 것이다. 아이와 그림책을 읽으면서 가습기로 눈이 잠깐 머물렀는데, 아뿔싸 순간 뭔가 잘못됐구나 생각했다. 분명 물이 가득차 있어야 했는데 조립이 잘못되어 생긴 이격사이로 물이 스멀스멀 세어나와 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무 재질인 화장대 상판 위로 흥건한 물은 당연하고, 그 밑으로 속옷 서랍, 구급약품통, 결혼식을 담은 cd까지 잡다한 물건 사이사이로 야속하게도 물은 흘렀다.
너무 화가 나 문제를 일으킨 남편을 큰 소리로 불러세우고 상황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졌다. 본인이 조립한 적이 없어서 몰랐단다.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 그 말만 빼고 하는 남편의 태도에 화가 났다. 고성이 오가기를 수 분, 문득 아이를 보는데 귀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 혼자 그림책을 넘기는 아이를 보며 순간 앞이 멍해지면서 뭔가 잘못되긴 했구나 생각했다. 토해났던 말들을 대충 정리한 후 남편을 내보내고 아이에게 이 상황을 물었더니 역시나 모르겠단다. 바닥에 물이 흥건한 건 모르더라도 부모가 말다툼을 크게 하고 있는데, 모르겠다니 가슴이 내려앉는다.
내가 잘못한 게 없고, 나와 상관이 없다면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아이라는 걸 또 깜빡했다.
아빠가 실수로 가습기에 채운 물이 새어 안방이 물바다가 되었기에 엄마가 화가 난 거라고 상황 설명을 해줬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에 맞는 사과를 해야 하고, 사과를 받아도 화가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엄마가 지금 그런 기분인데, 나중에 화낸 부분은 아빠에게 사과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네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주변에서 큰 소리가 오갈 때는 쳐다보며 분위기를 살펴야 한다고 일러줬다.
그래 맞다. 너에겐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했던 걸 새삼 깨닫는다. 다만 너에게 알려주는 것들이 잘못 조립된 가습기처럼 밑빠진 독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