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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동댁 Jun 13. 2024

나는 사회성을 어떻게 배웠더라?

어릴 적, 엄마는 나를 데리고 시장에 자주 가셨다. 시내에 상설시장이 있었지만, 2일과 7일에는 제법 큰 장이 섰다. 그런 날은 인도를 점령한 가판대와 산나물을 파는 할머니들, 꽃과 묘목을 늘어놓고 잡다한 물건을 실은 트럭, 부식 재료를 파는 상인들로 북적북적했고 운이 좋으면 찹쌀 꽈배기를 얻어먹는 날도 있었다. 


아빠의 식성도 있었고 바닷가 근처에 살았던 터라 시장에 가면 엄마는 꼭 생선을 사셨다. 지금이야 전국 곳곳에서 나는 식재료들을 마트에서 쉽게 구하지만, 그 시절엔 비싼 가격 탓인지 고장에서 많이 나는 것들이나 제철 재료를 찾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리저리 둘러보시고는 " 이 명태, 어떻게 해요?" 하셨다. 어떻게? 뭘 어떻게 해? 도대체 매번 왜 얼마냐고 묻지 않으시는 엄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3천 원에 책정된 생선을 엄마가 5천 원어치를 산다고 하면 얼마나 더 줄 수 있는가? 아니면 반대로 더 적게 산다고 하면 양이 얼마나 되는지가 궁금했던 게 아닌가 싶다. 네고하는 과정인 셈이다. 지금은 마트에 적힌 가격을 보고 장바구니에 담으면 그만이다. 합리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안사면 되는 일이다. 깎아달라 하거나, 덤을 달라고 하거나, 결국 말할 필요가 없다. 


나는 엄마처럼 그러지 않았다. 내 주변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는 친구, 딩크족도 있었다. 거기에 아이를 데리고 가는 행위가 민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간식이 먹고 싶거나 심심하다고 칭얼댈 수도 있다. 내가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건 괜찮지만, 다른 사람의 대화까지 중단될 수밖에 없기에 이를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한 친구 중에는 우리 아이를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만 본 친구도 꽤 여럿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야 했었나 보다. 아이가 어릴 때 코로나 팬데믹 상황도 있었지만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것이 싸고 새벽 배달까지 완벽하니 매번 비대면으로 주문했다. 그 편리함은 결국 아이에게 더 어려움을 준 건 아닐는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일부러 더 많이 데리고 다녔어야 했다. 많은 관계에서 오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대화법을, 그 경험을 더 많이 봐왔더라면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아니 어디에 일부러 더 데리고 다니느라 에너지를 쓰지 말고, 그냥 물 흐르듯 자연스레 했더라면 어땠을까. 짝을 찾아 역할놀이한다고 1평 남짓한 놀이 치료실에 아이를 몰아 넣고 돈을 쏟아부었던 날들이 허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회성은 관계 속에서 익힐 수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버지, 삼촌, 이모, 외삼촌, 고모, 사촌 등과 부모님 관련 얘기를 들려주자. 단골 식당이나 이웃들과 대화를 나눠보게도 하자. 병원에 가서 어디가 아픈지 스스로 말해볼 수 있어야 하고, 식당에서 키오스크 대신 직원에게 주문도 해보게 하자. 시간이 배로 걸리더라도 민폐라도 느껴지더라도 조금만 참을 걸 그랬다. 아이가 어릴수록 어른들은 무릎을 낮춰주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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