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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May 27. 2016

[책] 성석제 - 왕을 찾아서

이야기꾼의 탄생

나는 기꺼이 새 자전거 한 대를 돌려주었다. 그녀의 입술은 잠깐 사이에 약간 부풀었다. 미지근하다가 뜨거워졌다. 그건 뜨거웠다. 나는 그녀가 내게 빌려준 자전거를 아주 천천히 돌려주었다. 그건 달콤했다. 그러나 그건 미끄러웠다. 그건 온몸으로 느껴졌다. 가슴속에서는 흰 말과 검은 말과 잿빛 말, 얼룩말이 동시에 뛰고 있는 것 같았다.


성석제 - 왕을 찾아서

6점


성석제 작가의 첫 작품이다. 작가가 후에 발표한 작품들에 비해서 지나치게 곁가지가 많다고 느꼈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순정>, (현재는 <도망자 이치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순정이 좋다.)에서 읽고 감탄했던 ‘재밌음’이 덜했다. 그때 느꼈던 아 정말 그냥 순수하게 재밌어서 재밌는 소설이 있구나! 재밌다!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너무 강했기 때문일까. 아무튼 성석제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아쉬움이 남았다.

우선 ‘나’의 감정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회고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소설에서는 외려 자기감정이 과잉되지 않나? 그런데 ‘나’는 불친절하게 느낄 만큼 자기감정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나’가 겪은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보고 듣는 사건들과 간접적인 서술들, 여러 개의 레이아웃으로 층층이 구성된 ‘캐릭터’로 말할 뿐이다. 물론 감정을 직접 서술 방식으로 말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원래는 더 고급지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독자가 화자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나아가 화자의 감정에 이입하지 못하면 안 된다. 그러면 아무리 잘 쓰인 소설일지라도 매력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석제는 소설의 매력을 꺼질 듯 말 듯 살려나간다. 내러티브와 구조의 약함을 오롯이 자신의 말 빨로! 밀어붙인다. 아마도 성석제 작가는 작가가 아니면 걸출한 사기꾼이 되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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