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읽지 못하는 일기 (1)
연애를 잘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당신과 그의 마음이 늘 쌍방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된다
인정.
연애가 주는 괴로움은 자기의 감정에 꼭 맞는 부분이 아닌 상대의 나머지의 감정은 전부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모자란 부분은 늘리고
넘치는 부분은 잘라낸다
나는 그를 사랑하니까 그는 나를 사랑할 거야
나는 그를 떠나지 않을 거니까 그는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는 나를 사랑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도
나만 그를 사랑하고 있으면 된다는 말이고,
그건 어쨌든 당신 감정이 끝이 나야
그 연애도 끝이 난다는 걸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선택권은 나에게 있는 셈이다.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고
자기감정의 끝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그래서 연애가 쉽다.
연애가 자신의 감정이라는 단 하나의 나침반에 의해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퍽 쉬운 건 아니지만 자기감정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보다 훨씬 쉽다.
하지만 그는 나를 사랑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심지어는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확인했을 때도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똑같이 사랑하는 게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이고,
그건 겉으로 보기에는 당신의 사랑하는 감정을 당신이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신이 불확실한 그의 마음을 추측하고 헤아리려는 바로 그 순간
모든 감정의 선택권은 당신이 아니라 그에게 있게 된다.
왜냐면 당신은 그의 감정을 안다고 착각할 뿐이지 사실은 전혀 모르니까.
세상의 모든 관계는 상호작용에 의해 매 순간 변한다.
그래서 상대의 감정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자기의 감정도 부정하는 꼴이 된다.
그러면 이제 연애는 본격적으로 어려워진다.
연애의 나침반이 그의 감정이라는 강력한 자기에 의해 휘청거리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연애를 쉽게도 어렵게도 만드는 것은
나침반, 당신 감정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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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니까 만약 당신이 '연애'가 아니라
'사랑'을 하고 싶은 거라면 또 다른 종류의 나침반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사랑이라는 여정은 또 다른 종류의 나침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나침반은 사랑을 떠나기에는 아직도 연약하고 거의 쓸모가 없어 보인다.
이 겉만 번지르르하게 아름다운,
연애에 최적화되어있는 나의 나침반을 들고
나는 사랑이라는 여정에 떠날 것인가
그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여전히 망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