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인생책 02화

엄마

by Shin Huiseon


내 친구의 남자친구를 처음 소개받았을 때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 같으면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타입이었다. 이유를 그때는 잘 몰랐다. 가벼워 보이고 왠지 믿음이 가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친구가 그 남자와 연애하면 손해인 것 같고 결혼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근데 내 친구는 지금 그 남자하고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그 사람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우리 아빠 때문이다. 그 사람은 우리 아빠하고 비슷한 유형의 사람인 것 같은데 나는 아빠하고 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아빠를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말주변이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닌데 친구가 많고 다른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잘 대하고 약간 웃기기도 하는 캐릭터인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웠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엄마의 악필 때문이었다. 아빠는 엄마가 글씨를 잘 쓰지 못한다고 화를 냈다. 아빠는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완벽주의자였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의 가계부를 언니가 대신 쓴 적도 있다. 언니는 똑똑하고 야무졌다. 언니는 어떻게 해야 아빠 마음에 드는지를 알고 있었다.

엄마는 4명의 자녀를 낳았다. 사실은 4명이 아니라 5명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집에서 낳는 바람에 살리지 못했다는 첫째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을 잃은 엄마는 줄줄이 딸만 셋을 낳았다. 나는 둘째 딸이다. 내 여동생을 가졌을 때 엄마는 배를 발로 차는 힘이 장난이 아니라며 당연히 아들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근데 낳아보니 딸이었다. 엄마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막내아들까지 낳은 것은 첫째 아들에 대한 상처, 할아버지의 손자에 대한 고집이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엄마는 딸 많은 집의 다섯 번째, 아니면 여섯 번째 딸로 태어났다. 이모가 여섯 명, 외삼촌이 한 명 있다. 엄마의 이름은 말의였는데 엄마와 아빠 결혼사진에는 엄마의 이름이 말임이라고 적혀있다. 엄마가 말의라는 자기 이름이 부끄러워서 이모의 이름으로 결혼을 했다고 들었다. 엄마 이름은 부르기 어려운 이름이라서. 결혼사진 속의 엄마는 날씬하고 예뻤다. 엄마는 자식을 네다섯 명 낳고나서 살이 쪘다.

엄마는 집근처 가까운 의원에서 맹장수술을 받았다. 맹장수술이 간단한 수술이라는 건 어린 나도 알았다. 엄마가 입원해있는 동안 우리 남매는 의원 안팎을 뛰어다니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하지만 엄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밤에 의사가 늦게 왔고 엄마의 심장이 멈췄다고 했다. 어른들이 의료사고라고 했다.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가끔 엄마의 가방 속에는 과자가 들어있었다. 내가 엄마한테 쓸데없는 고집을 부릴 때 엄마가 가방 속에서 과자를 꺼내줬다. 평소에 먹는 과자보다 비싼 과자였다. 나는 엄마가 우리에게 주려고 과자를 산 줄 알았다. 어른에게도 가끔 과자가 필요하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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