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아버지는 1919년에 태어나셨다. 할아버지 주민등록번호를 처음 봤을 때 식민지 시대 사람이 내 눈앞에 있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키도 크고 몸무게도 100킬로그램이 넘는 기골이 장대한 사나이였다. 할아버지는 마음씨가 좋아서 소를 팔러 길을 나섰다가 어찌 된 일인지 막걸리 한 잔 얻어먹고 송아지를 끌고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요즘 말로 하면 호구였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일본 나가사키로 건너가서 선박에서 일을 했는데 그 체격에도 일이 너무나 고되었다고 한다. 몰래 도망쳐서 부산으로 왔는데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1953년도 전쟁터에 징병돼서 차를 탔는데 ‘아모’라는 사람이 와서 “너는 동생이 전쟁터에 있으니 집으로 가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마 아모라는 사람이 뒷돈을 받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때는 전쟁터에서도 형제 중에 한 명은 그렇게 살려줬다고 한다.(아모라는 사람은 한국인인데 창씨개명한 이름이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매일 밤 소주를 맥주컵에 가득 따라서 한 잔씩 마셨고 담배를 많이 피우셨는데도 건강하게 오래 사셨다. 아빠는 할아버지가 건강하신 이유가 큰아버지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 그렇다고 했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마르고 검버섯이 피어있는 얼굴인데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실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주무실 때 손가락을 할아버지 코에 대보곤 했다.
몸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 가던 날 할아버지가 나한테 유언처럼 한 말이 있다. “장롱 안에 백만 원이 있다.” 친척들이 주고 간 용돈을 모아서 백만 원을 숨겨뒀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 백만 원을 아무도 찾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손가락에서 금반지를 빼서 많은 식구들 중에서 나에게 주었다. 식구들이 다 같이 식사를 할 때였는데 그 자리에 있던 숙모가 질투하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숙모가 그 반지를 대신 받아서 목걸이로 만들어주셨다. 그런데 나한테 그 목걸이가 잘 어울리지 않아서 책상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나는 사회생활을 잘 못해서 보따리장수처럼 일자리를 여기저기 옮겨 다녔는데 그러다 보니 생활비가 부족할 때가 많았다. 나는 돈이 없으면 굶고 돈이 있으면 쓰고 그랬는데 어느 날 그 목걸이가 생각났다. 그래서 금은방에 가서 할아버지 목걸이를 팔아버렸다. 그 돈을 받아서 추운 날 집까지 걸어오면서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내 핸드폰 바탕화면에는 할아버지가 계단 난간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사진이 있었다. 친구가 그 사진을 보고 모건 프리먼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 말이 듣기 좋았다. 할아버지 덕분에 내가 무사히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