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낮은 자리

누가와 함께 걷는 기다림 (14)

by 교회사이

기다리며 읽는 누가복음서, 대림절 두 번째 주 토요일


“네가 누구에게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거든, 높은 자리에 앉지 말아라. 혹시 손님 가운데서 너보다 더 귀한 사람이 초대를 받았을 경우에, 너와 그를 초대한 사람이 와서, 너더러 ‘이 분에게 자리를 내드리시오’ 하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앉게 될 것이다. 네가 초대를 받거든, 가서 맨 끝자리에 앉아라. 그리하면 너를 청한 사람이 와서, 너더러 ‘친구여, 윗자리로 올라앉으시오’ 하고 말할 것이다. 그 때에 너는 너와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을 받을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누가복음서 14:8-11)


낮은 자리 2.JPG photo by noneunshinboo


“저기, . . . 제 자린데요.”


“손님, . . . 미안합니다만, 거긴 다른 분이 앉으실 자리입니다.”


자리 다툼, 자리 싸움을 넘어 자리 전쟁이 되어가는 세상입니다.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 그런 유치한 놀이가 더 이상 아닙니다. 없던 자리 만들고, 있던 자리 없애고,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자리를 만들고. 웬만해서는 감히 끼지도 못할 전쟁터입니다. 조금 무섭기까지 합니다.


“참 버겁다, 따라가기 . . .”

혹시 그런 생각 드십니까?


이 전쟁을 난 이겨 낼 수 있을까 없을까, 그 생각할 겨를 없이, 별 수 없어 남들 따라 걷고 달리고, 괜찮은 척도 해보고, 아직 내 힘 다 쓰지도 않았다 척도 하고, 운 좋게 남은 자리 있나 두리번 안 보는 척 보고, . . . 해보지만 여전히,


“참 어렵다, 사는 게 . . .”

하십니까?


‘너무 힘이 든다’ 다들 그럽니다. ‘나’라고 뾰족한 수 있나요? 너 나 없이 힘이 드는 건 오십 보와 백 보의 차이일 뿐입니다. 새끼손가락으로 새털 드는 듯 사는 게 가볍다 하시는 분, 아직 못 만났습니다.


홀로 서기 말고 2.jpg photo by noneunshinboo


그런 나에게,

“이제 그만 하면 되었다, 여기 와서 내 옆에 앉아라.”


돌아보니, 거기 가장 말석 맨 끝 자리, 가장 낮은 자리, 누구도 쳐다볼 생각도 않는 자리에 앉아 계신 주님이십니다. 무슨 ‘꿔다 놓은 보릿자루’도 아니시고, 저에게 먼저 말 붙이지 않으셨으면 아마 몰라뵈었을 것입니다.


“이리 와 내 곁에 앉아라. 지금 여기 앉아 있기 조금 불편하고, 남들도 몰라줄까 걱정도 되고, 계속 여기만 앉았다 그냥 가게 될까 불안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너를 청한 사람이 와서, 너더러 ‘친구여, 윗자리로 올라앉으시오’ 하고 말할 때가 곧 올 것이다. 그 때에 너는 지금 네 곁에 앉아 있는 나와 함께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을 받을 것이다.”


참 좋은 소식, 참 기쁜 소식입니다.

그리고 대림절입니다.


‘친구여’ 하고 나를 부르시는 그 주님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낮아졌을 때에, 우리를 기억하여 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주님 속히 오시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기다립니다. 아멘.” (시편 1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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