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念慮),
그거 하고 말고 할 게 아니라

누가와 함께 걷는 기다림 (12)

by 교회사이

기다리며 읽는 누가복음서, 대림절 두 번째 주 목요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은 음식보다 더 소중하고, 몸은 옷보다 더 소중하다. 까마귀를 생각해 보아라.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또 그들에게는 곳간이나 창고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제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너희가 지극히 작은 일도 못하면서, 어찌하여 다른 일들을 걱정하느냐?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생각해 보아라.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의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 차려 입지 못하였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풀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지 않으시겠느냐?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 . .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누가복음서 12:22-31)


염려 놓을 것.JPG photo by noneunshinboo


염려(念慮), 그게 어디 누가 하란다고 해서 하고, 말란다고 해서 말고 할 수 있는 것인가요?

염(念) · 려(慮), 누가 생각해라 해라 해서 하고, 생각하지 말아라 말아라 해서 말고 할 수 있는 것인가요?


그렇다고 제 멋대로 들고 나고,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그 염려와 생각들을 저대로 가만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염려, 그 심란하고 어지럽고 얽히고설킨, 때론 너무 나쁘고 못된 생각들이 나를 집어삼키게 그냥 놔둘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하긴 해야 합니다. 무슨 수를 쓰긴 써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고삐 풀린 망아지를 맨손으로 내가 어떻게 잡을까요? 내가 무슨 수로 보이지도 않는 그걸 길들일까요?




염려, 그리고 생각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늘 있습니다. 경험으로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 . .


“염려와 생각, 그것들과 애써 싸우려 하지 말아라. 대신 너의 염려를 붙들어 맬 어디를 찾아라. 너의 그 심란하고 힘들고 아프고 못된 생각들을 꼭 붙들어 어디 단단히 맬 곳을 찾아라.”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어디를 내가 설사 찾았다 해도, 누가 그걸 붙들어 맬 수 있을까요?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염려 붙들 것.JPG photo by noneunshinboo



‘난 어쩔 수 없다, 내가 어쩌지 못한다’, 꼭 쥔 그 손 펴지 못하고 오히려 더 단단히 그러쥔 나, 놓아버리지 못하고 떨쳐내지 못하는 생각들, 내 맘에 담아 놓은 그 염려들을 나 대신 붙들어 맬 분, 그 맬 곳 되어 주신 분. 계십니다. 오십니다.


그런데, 이참에 내 염려들을 미련없이 그 분께 아예 맡겨드리면 어떨까요?


놓아야 할 것은 그만 놓고, 잡아야 할 것은 다시 잡는 대림절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요, 우리의 방패이시니, 우리가 주님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그 거룩한 이름을 의지하기에 우리 마음이 그분 때문에 기쁩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 우리에게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아멘.” (시편 3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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