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을까 없을까,
그 놀부 심보

누가와 함께 걷는 기다림 (13)

by 교회사이

기다리며 읽는 누가복음서, 대림절 두 번째 주 금요일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그런데 거기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허리가 굽어 있어서, 몸을 조금도 펼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이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불러서 말씀하시기를, ‘여자야,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는 곧 허리를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것에 분개하여 무리에게 말하였다. ‘일을 해야 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엿새 가운데서 어느 날에든지 와서, 고침을 받으시오. 그러나 안식일에는 그렇게 하지 마시오.’ 주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끌고 나가서 물을 먹이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이 매임을 풀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니, 그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모두 부끄러워하였고, 무리는 모두 예수께서 하신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 (누가복음서 13:10-17)


놀부 심보 1.JPG photo by noneunshinboo


나의 ‘마음을 쓰는 속 바탕’*은 어떨까요? 나의 ‘마음 주머니’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여기 보이는 회당장(synagogue leader)의 그 마음 바탕이 그리 뽀송뽀송 ‘카시미롱 솜’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그 마음 주머니에서는 크게 기대할 뭐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네 놀부 심보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흥부로는 안 보입니다.


안식일, 회당에 계셨던 예수께서 18년 동안 병에 시달리던 한 여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랬더니 회당장이 난리입니다. 난리 정도가 아닙니다. 분노했다고 합니다. 회당장이 거기 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안식일에는 그렇게 하지 마시오!”

회당 책임자로서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안식일에 해야 할 것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소. 안식일에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소. 지킬 것은 지키시오.”

법과 원칙이 있습니다.


“꼭 오늘이 아니어도 당신들에게는 엿새나 더 있소. 아픈 곳이 낫고 싶고, 슬픈 곳도 위로받고 싶으면, 그 엿새 가운데서 어느 날이든 올 수 있소. 그러나 오늘은 안식일이니 그러지 마시오.”

간절하고 절실한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다른 날도 많으니 그때 와라, 그때 와서 병이 낫든 위로를 받든 하면 될 것이 아니냐, 이해심과 배려심(?)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생각이 다르십니다.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끌고 나가서 물을 먹이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이 매임을 풀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안식일이 안식일인 이유, 회당이 회당인 이유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주님이신 이유, 교회의 주인이 주님이신 이유입니다.


안식일의 주인.jpg photo by noneunshinboo


한해를 돌아보는 대림절, 혹시나 해서 나에게 물어봅니다.

나에게는 저 놀부 심보가 있을까, 없을까? 그 못된 심보가 나에게 있는지 없는지 나만 알까, 남들도 알까? 나만 모를까, 남들도 모를까? 혹시 나만 모르는 건 아닐까?

모르긴 몰라도 지금 나에게 오고 계신 주님은 아시지 않을까요?


“하나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나를 철저히 시험해 보시고, 내가 걱정하는 바를 알아주십시오.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아멘.” (시편 139:23-24)


* ‘심(心)보’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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