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遊)신부의 사순절 ‘함께 걷는 어둠’
사순절 첫 번째 주간 목요일, 걸으며 읽는 마가복음서 (8)
“잘 들어라.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그것을 쪼아먹었다. 또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돌짝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않으므로 싹은 곧 나왔지만, 해가 뜨자 타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버렸다. 또 더러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지니, 가시덤불이 자라 그 기운을 막아 버려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런데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가 되었다.” (마가복음서 4:3-8)
예수께서 하신 이 비유의 말씀을 혼자 읽거나 아니면 설교를 통해 듣고 난 후에 늘 따라오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과연 나는 어떤 밭일까 하는 것입니다. 예배도 꼼꼼이 참석해서 말씀도 열심히 듣지만 영 그 말씀이 나에게 와 닿지 않는 나는 밭도 못되는 그럼 길가일까? 말씀에 때론 울고 때론 웃고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지만 며칠이 지난 뒤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나는 그럼 돌짝밭일까? 내게 주신 말씀으로 듣고 흔히 말하 듯 나 오늘 은혜를 받았다 했지만 이런 저런 생각의 바람에 흔들려 꽃 피고 열매 맺을 사이없이 사그라드는 나는 그럼 가시덤불 무성한 밭일까? 그것도 아니면 누가 뭐라고 해도 역시 나는 좋은 밭일까?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무슨 두부 자르 듯 쉽게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을까, 꼬집어 어느 하나로 줄곧 있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길가였다가, 그러다 돌짝밭이었다가, 다시 가시덤불 속이었다가, 드물지만 좋은 땅이 되었다가 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요? 좋은 밭이라고 좋아라 하다가 며칠이 채 못가서 다시 길가의 가시덤불 속 돌짝밭이 되기도 하고, 가시덤불과 울퉁불퉁 돌로 덮인 길가가 되기도 하고, 어찌어찌 다시 한 뼘의 좋은 밭이 되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요? 그 한 뼘의 좋은 밭도 얼마 못가서 어찌될지 모르니 잠시 잠깐의 좋은 밭일 뿐, 이미 호시탐탐 돌멩이와 가시덤불이 이때나 저때나 기회를 엿보고 있으니 맘 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게 ‘나’라는 밭, 나의 마음밭의 실제 모습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돌멩이 역시 어디서 갑자기 날아든 것도 아니고 그 가시덤불 또한 별안간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니고,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내가 가져다 놓은 것, 내가 심고 물을 준 것이 아닐까요? 그 모든 것들이 다 솔직한 나의 마음밭이 아닐까요?
참 시끄럽고 복잡한 사람의 마음밭, 왜 그 농부는 길가의 흙먼지와 돌멩이와 가시덤불 그 모든 것들을 한데 넣어 믹서로 갈 듯 쟁기로 갈아 아예 새 밭으로 만들지 않았을까요? 왜 그런 후에 그 씨를 뿌리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좋았을텐데, 그랬다면 이전 저런 고민과 생각과 노동도 필요 없고 간단하고 쉬웠을텐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요?
그러다 가만히 드는 생각입니다. 시시때때로 맞는 여러 형편들이나 처지들, 그리고 그 쓸모 없어 보이는 흙먼지와 돌멩이들과 가시덤불이 사실은 나의 마음밭이 영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은 밭이고 또 계속 좋은 밭일 수 있도록 나를 깨우치고 나를 깨우는 것들이 아닐까, 벌써 그 씨가 내 안에 있어 내 마음밭에 더욱 단단히 그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는 과정이 아닐까, 그 뿌리 내린 씨에서 더 많은 싹이 돋고 가지들을 내고 잎들이 나오는 그 여정이 아닐까, 나는 이미 좋은 씨 뿌려졌으니, 좋은 꽃이 피고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밭으로 살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 말입니다.
말씀이 이미 여기 내 마음밭에 있는데, 저기 콩밭에 가 있는 나의 마음. 그 씨는 벌써 내 마음 안에 뿌려졌는데, 정작 나는 그걸 모르고 자꾸 저기 남의 콩밭으로 향하는 것은 아닐까요? 사랑이 벌써 내 마음에 심겨 있는데 물은 주지 않고, 밖으로만 도는 것은 아닐까요?
남의 콩밭에 마음을 빼앗겨 벌써 씨 심겨진 내 밭에 물주고 거름주는 것을 잊지는 말아야 겠습니다. 너무 뜨거우면 그늘막도 쳐주고 비 많으면 물길도 내고, 뜨거운 태양빛에 지치면 나도 그 그늘막에서 기도하고 비 오면 잠시 비를 피해 말씀 읽고, 그리고 다시 물 주고 그 기도와 그 읽은 말씀을 일상으로 살고, 좋은 꽃 피우고 좋은 열매 맺는 좋은 밭으로 살면 좋겠습니다.
좋은 땅, 좋은 꽃, 좋은 열매를 위해 그 땅의 돌 고르고 쟁기질도 하고 또한 씨도 뿌리는 농부, 지금 예수께서는 그 쟁기질도 하시고 그 씨도 뿌리시며 골고다로 가십니다. 내 거친 마음밭에 가득한 돌멩이를 들어내고 무성한 가시덤불 뽑아내는 것은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그 쟁기질에 농부의 마음도 아픕니다. 쟁기질로 생긴 그 골이 농부의 가슴팍에도 등짝에도 깊이 파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은 땅이 되고, 좋은 꽃을 피고,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 지금도 그 농부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쟁기질과 씨 뿌리기는 멈추지 않습니다.
사순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