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에 닿아 전해진 삶

노는(遊)신부의 사순절 ‘함께 걷는 어둠’

by 교회사이


사순절 두 번째 주간 화요일, 걸으며 읽는 마가복음서 (12)


“큰 무리가 뒤따라오면서 예수를 밀어댔다. 그런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아 온 여자가 있었다. . . . 이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서, 뒤에서 무리 가운데로 끼어 들어와서는,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 그 여자는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터인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곧 출혈의 근원이 마르니, 그 여자는 몸이 나은 것을 느꼈다. 예수께서는 곧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몸으로 느끼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아서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 . . 예수께서는 그렇게 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셨다. 그 여자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므로, 두려워하여 떨면서, 예수께로 나아와 엎드려서 사실대로 다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마가복음서 5:21-34)


옷깃에 닿은 마음.jpg photo by noneunshinboo


여인의 그 뻗은 손이 당신 몸에 닿을 그때를 기다리시는 주님.


너무 빨리 걸으면 내가 당신 쫓아오지 못할까 싶어, 너무 느리게 걸으면 내가 혹시 당신 지나칠까 싶어 내가 너무 앞서 갈까 싶어, 나의 시시각각 흔들리는 발걸음에 맞추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로 걷고 계신, 그 속 깊으신 나의 주님.

당신께서 너무 가까이 다가오시면 혹 내가 놀랄까 달아날까 싶어, 너무 가까이 계셔 되려 내가 당신을 모를까 몰라볼까 싶어, 나 부끄럽다 죄스럽다 염치없다 그 마음 먹지 않도록, 그래서 나의 물러남이 없이 슬쩍 당신께 손 뻗지 않을까 싶어, 그 뻗어 닿을 수 있는 그 만큼의 거리를 두고 걷고 계신, 그 정 깊으신 나의 주님.

그 뒤에서 걷는 둥 마는 둥 드는 오만가지 생각에 머뭇거리고 몸과 마음이 혼미한 나에게 그 온 신경이 온통 쏠려 있음을 나는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나를 모르고, 그런 나 뭐라 하실까 어떻게 반응하실까 그만 머뭇거려야 하는데, 나의 움켜쥔 손에 땀만 차고, 그래서 폈다 오므렸다만 반복하는 나. 나의 그 뻗은 팔, 편 손이 당신 몸에 닿을 그때까지 섰다 걷다, 기다리기를 반복하시는 나의 사랑이신 주님.




“누구냐?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그 눈길이 가 있는 곳에 내 손만 대어도 느껴지는 사랑이 있습니다. 거기 그 공기에 내 몸이 닿아도 느껴지는 슬픔이 있습니다. 그 드리운 그림자에 내 발 걸치기만 해도 전해오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그 뒷모습만 보아도 내 눈에 들어오는 아픔이 있습니다. 여기 그 뻗은 손이 닿아 옷깃으로 전해지는 슬픔과 외로움과 아픔이 있고, 그 전해진 마음에 응답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 온 삶이 담긴 간절한 소망과 치열한 믿음이 아낌없이 주는 거룩한 사랑과 만났습니다. .


제자들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십니다. 그리고 이 여인도 압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 지금 군중 속의 말 못할 기쁨과 행복으로 바뀐 것. 한 통속이 된 무리 속에 끼지 못하고 홀로 내뱉어진 듯 뒤에 남겨진 채로 관계의 단절과 소외, 그리고 몸과 마음과 영혼에 입은 상처는 이제 주님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새로운 관계가 되어, 관계 있음의 존재, 관계 속 존재, 그리고 관계의 삶이 되었습니다.


옷깃에 닿은 마음 2.JPG photo by noneunshinboo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그래서 없는 용기를 짜내어 여기에 왔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이제 이 여인은 자유한 사람, 건강한 사람으로 더 이상은 의사가 필요치 않은 사람으로 살까요? 치료가 끝나 건강을 회복한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분명 이루 말할 수 없는 환자의 고마움과 의사로서의 뿌듯함이 있어 아름다운 관계였음에 분명한데,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더 이상은 서로의 얼굴을 볼 이유가 없는, 서로가 더 이상은 필요하지는 않은 관계, 그래서 점차 서로의 얼굴이 잊혀지는 관계가 될까요? 어떤 환자에게는 그 기억이 싫어 애써 잊고, 의사에게는 수 많은 환자들 중의 한 명이어서 잊고, 그래서 점차 서먹해지고 애매해지는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제 이 의사는 나를 아는 그리고 내가 아는 나의 패밀리 닥터가 되었습니다. 내 병력도 알고 내 가족력도 알고, 내가 아팠던 자리도 알고, 내 염려도 알고 불안도 알고, 지금 나의 선 자리도 알고, 내가 앞으로 무엇을 조심해야 하고 또 무엇을 먹어야 하고 어떤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하는지, 건강한 삶의 리듬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조언하고 체크하고 친구 같은 패밀리 닥터가 될 것입니다. 예전에는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줬다면 이젠 옆에서 같이 걸어가 줄 것입니다. 이젠 필요 없다, 난 이젠 괜찮다, 고맙지만 사양하겠다, 절대 그럴리 없지만 혹시 다시 아프면 그때 찾을 테니, 고맙지만 이제 혼자서 걷겠다, 그러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얼마 전 일입니다. 아주 늦은 밤,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던 길, 저기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듯, 나를 마주보고 걸어오는 한 젊은 남자가 왠지 낯설지 않습니다. 어, 어, 어, 서로 그러다 ‘hi, how are you . . .’ 우리 가족의 패밀리 닥터였습니다. 알고보니 이웃이었습니다. 우리는 길 이 쪽에 그리고 닥터는 길 저 쪽에 이웃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늘 그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하여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늘 친절하고 마음씀이 넉넉한 참 좋은 닥터입니다. 서로 반가움에 한참을 서서 오랜만에 마스크 없이 떨어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닥터는 제 아내의 안부를 묻고, 제 아이의 학교 생활을 궁금해하고, 팬더믹에 건강은 어떤지 묻습니다. 저는 그 닥터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많은 사람들이 의지하는 소중한 닥터이니 당신이 아프면 우리도 아프다, 아프지 말고 너를 위해 너를 찾는 우리를 위해 건강하라고 . . . 농담 같은 진담을 햇습니다. 그렇게 웃고 대화를 나누는데 옆에 가만히 있던 그의 반려견이 산책길에 취객이라도 만난 듯 저를 노려보기 시작해 헤어졌습니다.

예수께서는 늘 우리를 염려하시고 건강하기를 바라시는, 그리고 옆에서 함께 걷는 친구 같은 패밀리 닥터이십니다.


오늘 이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친구 같은 패밀리 닥터로 함께 가실 것입니다.

나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건강을 돌보고 염려하시는, 우리의 패밀리 닥터이신 예수님과 함께 걷는 사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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