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왠지 늘 거슬러 불어온다

노는(遊)신부의 사순절 ‘함께 걷는 어둠’

by 교회사이


사순절 두 번째 주간 금요일, 걸으며 읽는 마가복음서 (15)


“그들과 헤어지신 뒤에,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올라가셨다. 날이 저물었을 때에, 제자들이 탄 배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셨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이 노를 젓느라고 몹시 애쓰는 것을 보셨다. 바람이 거슬러 불어왔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로 가시다가, 그들을 지나쳐 가려고 하셨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유령으로 생각하고 소리쳤다. 그를 보고, 모두 놀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쳤다. 그래서 제자들은 몹시 놀랐다. 그들은 빵을 먹이신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무뎌져 있었다.” (마가복음서 6:46-52)


바람은 왜 늘 1.JPG photo by noneunshinboo


나에게 바람은 왠지 늘 거슬러 불어오는 것 같습니다.

‘나만 그런 것일까, 그 이유를 나만 모르는 것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어디부터 어디까지 잘못된 것일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꼬리가 다른 꼬리를 잡고, 그렇게 돌고 또 돌고. 그러다 말겠지, 불다 말겠지, 그러나 그 불어온 바람도 혼자 오지는 않았는지 또 다른 억센 바람이 그 꼬리를 물고 불어옵니다.


남들에게 불어오는 바람은 죄다 순풍이고, 스치는 바람에도 돛을 단 듯 금빛 은빛 수면 그 위를 소금쟁이도 저리가라 잘도 미끄러져 수월하기만 한 삶인데, 한 방향으로 줄곧 가도 너무 잘 가는데.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삶이 고달픈게 지난 설에 먹다 남은 이빨도 들어가질 않는 딱딱하게 굳은 가래떡이고, 삶이 빡빡한게 며칠 굶어 등에 달라붙은 허리 펼까 허겁지겁 물 없이 먹는 남이 먹다 남긴 카스텔라빵입니다. 저들은 저기 크루즈 선상에서 저렇게 좋은데 저렇게 서로 정답기만한데, 나는 지금 그 유투브 광고에 정신줄 놓고 홀로 이렇구나 하며, 누가 말하길 그대가 곁에 있어도 외롭고 그립고 쓸쓸하다는데 내가 정말 그렇구나, 이러저러 생각 끝에 이런 생각도 듭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일 백번 고쳐 생각해도 나는 이 길이 맞는 것 같은데 이쪽이 틀림없는데, 그게 아니라고 바람은 자꾸 정 반대로 불어옵니다. 여기가 분명 맞는데 자꾸 저기가 맞다고, 이 길로 정말 가고 싶은데 자꾸 저길로 가라고, 이 방향이 확실한데 아니라고 저 방향이 맞다고. 왜 바람은 항상 내 생각, 내 뜻, 내 맘을 거슬러 불어오는 것일까, 내 잘못일까, 아님 지금 부는 바람이 잘못된 것일까, 또 드는 생각에 잠도 없습니다.




태산(泰山)이 높다 하지만 하늘 아래 산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

사람이 자기 스스로 오르지않고 산을 높다 하는구나*


그렇다는데, 누구에게는 그렇다는데, 누구는 태산도 저 아래에 있고, 이젠 그 태산도 넘어 하늘에 닿을 듯, 옳다구나 부는 바람에 그 올린 돛 그 날갯짓 한 번에 창공을 나는 듯 싶은데, 나는 바람과는 영 관계가 없는 사람인지 그 불고 분다는 바람은 왜 죄다 나와는 정반대로 불어오는지 . . .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인가? 나만 그런가? 정말, 나만 그런가? 이젠 억울한 생각도 듭니다.


그런 요즘 내 마음을 아는지, 어렵게 시작해 조금씩 입에 붙던 기도생활도 언제부터인가 ‘말 안 해도 아시지요 주님’ 그 기도 밖에는 더 붙일 말이 없고, 그것도 한 두번이지 이래도 되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정말 태평양 한가운데 오도가도 못하는데, 길은 먼데 바람은 나를 거슬러 불어오는 것 같은, 정말 무엇에 꽉 가로막힌 심정일 때가 있습니다.


나만 그런가? 나만 그럴까? 나에게만 바람은 거슬러 불어오는 것일까?




사실은 그리고 솔직하게는 우리 모두 다 그렇습니다. 살면서 적어도 우리는 모두 한 번은 두 번은 . . . 그런 심정이 있었고, 이고, 또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오늘 우리만 그런건 아니었나 봅니다. 여기 예전에 그 똑 같은 심정을 살았던 한 시인이 또 그 똑 같은 심정을 살게 될 먼 나중의 우리에게 주는 고마운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 . . 하나님의 백성마저도 그들에게 홀려서, 물을 들이키듯,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덩달아 말한다.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무엇이든 다 알 수가 있으랴?’ 하고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가 악인인데도 신세가 언제나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구나.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내 손으로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시편 73:1-13)


온종일 이런 생각이 시인을 괴롭히고 힘들게 만듭니다. 벌에 쏘인 듯 잠 못 이루게 하고, 점점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罰)처럼 느껴집니다. ‘나도 그들처럼 살아야지’ 시인에게도 그런 갈등이 찾아오고 그 유혹이 힘겹습니다. 지금 시인은 그리고 시인이 탄 배는 거센 비바람과 높은 파도 안에 있습니다. 유령이 시인의 눈 앞에 있습니다.


바람은 왜 늘 2.jpg photo by noneunshinboo


그러나,


“내가 이 얽힌 문제를 풀어 보려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 . 아침이 되어서 일어나면 악몽이 다 사라져 없어지듯이, 주님, 주님께서 깨어나실 때에, 그들은 한낱 꿈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 . . . 나는 우둔하여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 . . 내가 주님과 함께 하니, 하늘로 가더라도, 내게 주님 밖에 누가 더 있겠습니까? 땅에서라도,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 . .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에 든든한 반석이시요, 내가 받을 몫의 전부이십니다. 주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망할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정절을 버리는 사람은, 주님께서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나에게 복이니, 내가 주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주님께서 이루신 모든 일들을 전파하렵니다.” (시편 73:16-28)


시인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마침내 깨닫습니다. 저들에게 불어오는 그 바람이 순풍이 아니고, 나에게 불어오는 이 바람이 역풍이 아니라는 것, 그것을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들어가서야 시인은 비로소 깨닫습니다.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쳤다.”


우리를 당신의 성전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 안에, 내가 탄 배 안에 오르시니, 그 성령 하나님의 바람이 내 안에서 불어오시니, 밖에서 불던 그 세찬 바람이 그칩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아예 나를 당신의 성소로 성전으로 삼으시고 내 안에 머무시니, 내 안에서 거슬러 불던 그 모질고 거친 바람은 멎고 이제 부드럽고 고요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으니**, 여기 태평양 한가운데 홀로 덩그러니 놓여있다 했던 나는 그리고 내가 탄 배는 벌써 저기 내 고향 그 항구 근처에 이미 와 있습니다.


“유령이다!”

“아니다, 나다!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유령처럼 오는 불안과 걱정과 근심, 그리고 거센 바람과 파도처럼 오는 두려움과 공포는 이 한 말씀으로 물러납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지도 않으시고 하늘을 펼치시는 그분은, 바다의 파도를 짓밟으시는 그분은 나를 그리고 내가 탄 배를 그냥 지나쳐 가실 수 있습니다. 아니, 내가 그리고 내가 탄 배가 그분을 그냥 지나쳐 갈 수 있습니다. 내 곁을 지나가신다 해도 내가 볼 수 없고, 내 앞에서 걸어가신다 해도 내가 알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기 쉽습니다. 사실 그렇게 많이도 지나쳐 왔습니다 (욥기 9:8, 10-12).


“그들과 헤어지신 뒤에,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올라가셨다.”


예수님께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를 하셨듯이 우리에게 기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깨어 기도하라’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시편이 주는 위로가 필요한 사순절입니다.



*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이며 서예가(書藝家)인 양사언의 시조

** 요한복음서 1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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