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적인 사랑, 규칙 없는 사랑

노는(遊)신부의 사순절 ‘함께 걷는 어둠’

by 교회사이


사순절 두 번째 주간 토요일, 걸으며 읽는 마가복음서 (16)


“그들은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을 보았다. 바리새파 사람과 모든 유대 사람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켜, 규례대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또 시장에서 돌아오면, 몸을 정결하게 하지 않고서는 먹지 않았다. 그 밖에도 그들이 전해 받아 지키는 규례가 많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대를 씻는 일이다. . .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이 전하여 준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 . . ‘이 백성은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 .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마가복음서 7:2-9)


규칙적인 사랑 1.JPG photo by noneunshinboo


예수님과 제자들은 쉼이 필요하여 외딴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쉴 수가 없습니다. 목자 없는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다 지쳐 더 이상 걸을 힘도 살아갈 희망도 남아있질 않은, 이래저래 힘겹고 고달프고 서글픈 사람들이 거기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을 돌봐 줄 참 목자가 마침내 오셨다는 소식에 그래도 그 남은 힘 쥐어짜 그 먼 길을 돌고 돌아, 자기들을 구할 그 선한 목자를 기다리고 있어 잠깐도 쉴 수 없으셨습니다. 그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은 늘 하시던 대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들의 육체의 배고픔을 또한 아시는 예수님은 그들을 거기 푸른 풀밭에 앉게 하시고, 그 있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갖고 오라 하신 후, 그것으로 거기 모인 사람들 모두를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


그 배고팠던 그 사람들은 이제 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이야기를 들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습니까? 왜 장로들이 전해 준 전통을 따르지 않고, 그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저들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픔이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도 쥔 것이 없는 그 배고픈 그 빈 손에는 도대체 관심이 없고, 그 손이 더러운가 깨끗한가에만 온통 관심이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관심하는 그 가난한 손, 지금 하나님 나라를 쥔 그 손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사람의 전통이 관심하는 깨끗한 손, 정결한 손, 사람의 전통을 놓치 못하는 티 없는 손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배고픈 손에 건네진 그 생명의 빵이 허기진 입으로 옮겨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 무슨 정신으로 우물물 찾아 그 물 길어올리고, 무슨 정신으로 그 옷소매 걷어 그 더러워진 손 씻고 수건으로 그 물기를 닦아내며,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길고 긴 시간과 정성을 기울일까, 그 끼어들 그 틈이 없는데.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배가 고파 우물 옆에 놓인 두레박 쥐고 쓰러져 죽을 지언정, 그 더러운 손으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그건 모세의 율법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도 모르고, 전통이고 뭐고가 아예 없는 이방인들이나, 죄인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그건 중요한 것이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지금 이들은 배가 고파 돌도 씹겠다는데,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그럼 뭣이 중헌디?”




“아니, 왜 당신은 전통을 따르지 않습니까? 왜 그 씻지도 않은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그것도 저런 불결한 사람들, 저런 부정한 사람들, 저런 죄인들, 저런 이방인들과 어울려서 먹느냔 말입니다.”


이제 그 사람의 전통이 하나님의 아들마저 버리려 합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는 길, 그 하나님의 아들에게 가는 길, 그 길도 막아서려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것에 대한 더 나은 이해, 그리고 올바른 실천을 위한 말씀의 해석들이 조금씩 쌓이고 전해져 전통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점점 그 사람의 전통이 말씀과 동등한 위치로 올라서고, 이젠 아예 말씀을 넘어서려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 그 하나님의 말씀에 줄곧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도록 사람을 도와야 할, 그 길을 안내해야 할 전통이 어느새 그 말씀이 오는 길을 막아서고, 높고 단단한 벽이 되어 말씀을 빙 둘러싸고, 이젠 아예 사람이 그 말씀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만듭니다.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이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렸고, 외로워진 건 사람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서로를 살리는 말씀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말씀으로 받아 안고, 그래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그 옳은 삶의 꼴과 결을 갖추어 함께 살아가도록 돕고 가르쳐야 할, 우리 모두가 그 길을 함께 즐겁게 걷도록 이끌어야 할 전통이 어느새 그 말씀을 흐리고, 이젠 되려 사람과 사람을 나누고 구별하고 차별하고 소외시키고 제외시키는 촘촘한 장벽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 서로가 이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너가 되어버렸고, 외로워진 건 또 사람입니다.


규칙적인 사랑 2.JPG photo by noneunshinboo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그것도 이젠 모자라 하나님의 아들마저 버리고, 너희 사람의 전통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외로워진 건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외로워지는 사이, 하나님께서도 외로워지셨습니다. 두고도 보고, 참아도 보고, 이렇게 저렇게 누구 누구 보내도 보고, 하다 하다 그러다 정말 안 되겠다 싶어, 그 아들 오셨습니다. 율법과 전통의 마침이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말씀 여기 오셨습니다.


“그럼 뭣이 중헌디?”


거기 답을 하시려고, 그 답을 보여주시고, 그 답을 가르쳐주시려고, 그 답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답이 누구인지 알려주시려고, 그 직접 답이 되어 오셨습니다.


“선생님,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첫째는, . . .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둘째는 . . .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마가복음서 12:28-31)




더러운 것은 그 손이 아니라 그 마음입니다. 사람을 미워하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나누고 구별하고 차별하고 나보다 낮게 보고 없이 보고 하찮게 보고 틀리게 보는 그 마음이 나쁜 마음, 더러운 마음입니다.


“그러니, 너희가 어떻게 내가 살 집을 짓겠으며, 어느 곳에다가 나를 쉬게 하겠느냐? . . .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며,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다. 겸손한 사람, 회개하는 사람, 나를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을 내가 좋아한다.” (이사야서 66:1-2)


배고픈 마음, 배고픈 손**. 하나님께 열린 그 빈 마음, 하나님께 벌린 그 빈 손. 거기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마음이며 하나님과 함께 내가 쉴 수 있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잡아주신 나의 손이고 또 내가 내 이웃에게 뻗는 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모두가 맞잡는 영원한 쉼이 있는 손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모르고 따르고 지키던 그 많은 전통들, 그것이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리는 전통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가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흐리는 전통인지, ‘왜’ 라는 질문을 반가워하는 전통인지, 아니면 ‘왜’ 라는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 전통인지, 묻지도 못하고 따지지도 않고 마냥 따르고 지킬 일만은 아닙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두 계명에 비추어 보면 좋겠습니다.



규칙적인 사랑, 규칙적인 사람이 아니라,

규칙 없는 사랑, 규칙 없는 그 사랑이 규칙인 하나님의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사순절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을 위해 지금 수난의 길 가십니다.



*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 (참조, 마가복음서 6:30-44)

** 산상수훈 혹은 산상설교 (참조, 마태복음서 5, 누가복음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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