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아우성* 날개를 달다

노는(遊)신부의 사순절 ‘함께 걷는 어둠’

by 교회사이


사순절 세 번째 주간 월요일, 걸으며 읽는 마가복음서 (17)


“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자가 곧바로 예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의 발 앞에 엎드렸다. 그 여자는 그리스 사람으로서, 시로페니키아 출생인데,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그 여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개들도 자녀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 그 여자가 집에 돌아가서 보니, 아이는 침대에 누워 있고, 귀신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마가복음서 7:24-30)


소리 없는 아우성 1.JPG photo by noneunshinboo


소리 없는 아우성이 아닙니다. 푯대 끝에 달아 맨 깃발, 부는 바람 거기에 따라 공중에서 나부끼는 깃발, 바람이 부는 대로 흐르는 깃발, 그 맨 줄이 헐겁던 팽팽하던 거기 푯대를 벗어나 맘대로 날아갈 수 없는 깃발이 이제 더는 아닙니다.


나와는 너무 먼 미래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먼 나라를 향한 뒤에 남겨진 자의 동경이나 집착, 가당치 않은 한 사람의 영원을 향한, 영원한 세계와 영원한 생명을 향한 향수, 절대 오지 않고 절대 갈 수 없어 내 것일 수 없고 내 것이 될 수 없는 구원과 해방과 자유에 대한 넋놓은 기다림이 이제 더 이상 아닙니다.


여기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그 소리 없이 외치는 슬픔과 아픔과 설움으로 나부끼는 삶을 살던 여인이 있습니다. 묶은 줄이 겨우 푯대 그 끝에 서게 할 뿐인 여인입니다. 그 묶인 줄이 조금 느슨해지면 조금 공중으로 내딛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줄이 없으면 푯대 끝 너머로 날아 오를 수 있지 않을까, 누가 그 줄 풀어준다면 그 너머로 날아갈 수 있지 않을까, 추락한대도 여기 푯대 그 끝에서 저기 땅 그 바닥까지 그 거리만큼은 공중을 날지 않을까, 누가 그 묶은 줄을 풀어주지 않을까 혹시,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 . .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이 땅으로부터 저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 . 으로 데려 가려고 한다. . . 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게 하겠다.” (출애굽기 3:6-10)


하나님은 그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듣고 계셨습니다. 소리 없이 외치는 나를 보고 계셨습니다.


혹시 이 나사렛 예수가 그 모세는 아닐까? 누구는 그럴 수도 있다고, 누구는 그럴리가 없다고, 그건 옛날 이야기지, 모세도 죽고 모두 죽고, 설사 살아 다시 돌아온다 하더라도 나는 이방인인데, 게다가 이방 여자인데, 게다가 딸마저 저렇게 귀신이 들렸다 손가락질 발가락질에 지나가는 주인 없는 개도 절래절래 고개젓는 우리인데, 그래도 혹시, 해서 여기 왔습니다.




“딸을 고쳐주십시오. 내 딸도 그리고 나도 이제 귀신에게서 놓여나고 싶습니다. 악에서 죄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더 이상 노예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날아 오르고 싶습니다.”


용기를 내었습니다. 더 이상은 그러고 싶지 않아서, 나도 적어도 내 딸이라도 저들과 함께 봄이어야 해서, 내 손으로라도 내 딸을 조금 하늘로 밀어올리고 싶어서, 조금이나마 날게 하고 싶어서, 너라도 너만이라도 조금 날아보라고 . . . 더는 가만 있을 수 없어 왔습니다. 그리고 소리 내어 외쳤습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아니, 던져 주십시오.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그 테이블, 그 아래에 우리도 자녀로 있습니다. 정말 힘에 겨워 여기 왔습니다. 그 먹던 빵 부스러기 던져주지 말고, 이젠 나를, 우리 모녀를 저 하늘로 던져주십시오. 그 테이블 다리에 묶은 줄 그만 풀어 우리도 공중산책을 하고 싶으니, 그 날개짓의 헛짓이라도 할 수 있게 저 공중에 냅다 던져주십시오. 그 순간만이라도 자유이고 싶고 해방이고 싶고 구원이고 싶고 백조이고 싶으니, 저 하늘로 던져주십시오. 개라고 불러도 좋으니, 공중그네라도 좋으니 한껏 밀어주십시오.”


이 여인은 지금 간청을 하는 것도 요청을 하는 것도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건 사랑하는 자식으로 엄마 아빠에게 하는 요구입니다.


그 가혹한 그 매몰찬 세상, 그 매몰찬 목소리만 들리는 세상, 세상에 부는 그 거센 바람에 굴하지 않고, 아픈 딸 자식을 위한, 그 들린 귀신에서 벗아나게 만들고 싶고, 그러나 그냥 아픈 딸을 향한 슬픈 엄마의 간절한 바램을 넘어, 간곡한 간청을 넘어, 나 이젠 더 이상은 미운 오리 엄마로 살고 싶지 않다고, 내 딸 더 이상은 미운 오리 새끼로 살게 하고 싶지 않다고, 나도 내 딸도 창공은 아니어도 적어도 여기서 저기만큼은 나는 듯 뛰고 싶다고, 그 주인이 공중에 던진 원반 잡겠다고 그 목줄 놓고 개도 저렇게 뛰어 오르는데, 나도 내 딸도 공중으로 하늘로 저 만큼이라도 뛰어 오를 수 있게, 하늘로 밀어달라고 공중으로 던져달라고, 당당하고 떳떳고 절실하고 통절한 요구입니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주님은 세상의 매몰찬 얼굴로 여인을 바라보셨고 그 목소리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정말은 여인에게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무슨 TV 드라마를 보는 듯, 자기들은 시청자이고 관객이 된 듯 바라만 보는 거기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인 내가 말한다. 영원한 안식일인 내가 묻는다.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 옳으냐? 이 여인이 그 줄을 끊고 그 안식일로 날아 오르게 하는 것이 옳으냐, 토요일도 없이 매일이 월요일부터 금요일로만 있게, 깃발로만 있게 하는 것이 옳으냐?”


소리 없는 아우성 2.JPG photo by noneunshinboo


“여인아,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걸어서 말고, 훨훨 날아서 네 딸에게 돌아가거라. 너를 묶고 너를 가두었던 그 줄이 끊어졌으니, 그 귀신이 네 딸에게서 그리고 네게서 떨어져 나갔으니, 네 딸에게로 날아가거라. 가서 네 딸과 함께 하늘을 날아라. 하늘에 계신 너의 하나님 아버지께로 날아 올라라.”


예수님은 여인을 공중으로 던져 주십니다. 봄바람 속으로, 성령의 바람 그 속으로 던져 날게 하십니다. 여태껏 아프고 불쌍한 오리 새끼로 키운 이 여인의 예쁜 딸이 더는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고, 이 여인 또한 더는 미운 오리 엄마가 아니고, 멋지고 아름다운 백조 엄마로 아이로 맘껏 날게 하십니다.


주님은 지금껏 나를 미운 오리 새끼로 알고, 또 너를 미운 오리 새끼로 여기고, 그래서 서로를 미운 오리 새끼로 알아 뒷방 뒷곁 뒷마당 뒷동산에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나만 백조로 알고 내가 알고 인정하는 너만 백조로 여기고 살았던 사람들, 그 모든 우리 사람들이 다 함께 하나님의 사랑받는 멋지고 아름다운 백조로 이 땅에서 하늘에서와 같이 구원과 해방과 자유와 그리고 화해의 날개짓으로 살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함께 사순절입니다.



* 유치환의 시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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