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마라톤

올해 목표인 풀코스 완주를 향한 하프 재도전

by 노정희

어느새 올해 들어 아이들과 함께 하는 두 번째 마라톤이다. 보성 녹차 마라톤은 신청 당시 매우 기대가 컸었던 대회이다. 보성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 10km 정도 이어진, 가장 아름다운 마라톤 코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서 나는 하프, 첫째 아들은 10km, 둘째 아들과 남편은 5km를 달렸다.


대회를 앞둔 그 주에 유독 비가 많이 왔다. 일기 예보를 보니, 대회당일에도 비가 온단다. 나는 비 오는 날 마라톤을 한 경험이 없기에,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비가 많이 오면 신발이 젖고 무거워지며 발에 물집이 생겨서 달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준비만 충분히 한다면, 할 수 있다.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이고 배움이다. 비 오는 날 마라톤을 위해 필요한 준비물을 아래에 정리해 보았다.


1) 가벼운 기능성 옷과 양말
면 티셔츠나 면양말은 물을 머금으면 무겁고 쓸림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흡습 속건 기능성 의류가 도움이 된다. 두꺼운 양말보다는 발에 밀착되는 얇고 빠르게 마르는 기능성 양말이 쓸림과 물집 방지에 좋다. 그래서 빠르게 마르는 기능성 양말을 준비했다.


2) 방수스프레이

대회 전날 신발에 방수 스프레이를 뿌려놓으면, 신발이 젓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아이들과 나의 러닝화에 뿌려놓고 하루 이상 말렸다. 하지만 비가 너무 많이 오는 경우에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니트 재질의 러닝화보다는 매쉬 재질의 경우 방수 스프레이의 효과가 더 크다.


3) 얇은 방수 재킷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체온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가볍고 얇은 방수재킷을 준비했다.


4) 모자

나는 비 오는 날 집 주변에서 러닝을 한 적이 있다. 이때 챙이 있는 모자를 쓰니, 빗물이 얼굴에 흘러내리는 걸 막아줘서 시야 확보에 도움이 되었다. 특히 안경을 쓰는 사람은 챙이 있는 모자가 많은 도움이 된다.


5) 배수 잘 되는 러닝화

신발 안으로 물이 들어가면 배출이 잘 되는 러닝화로 준비했다.


6) 바셀린 바르기
가장 중요한 준비과정 중 하나이다. 물집 예방을 위해 대회 전날 밤에 발가락 사이, 발바닥, 뒤꿈치 등에 바셀린을 발라주었다. 한 마라톤 고수의 블로그에서 대회 전날 자기 전에 발에 바셀린을 듬뿍 바르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글을 보았다. 발 외에도 겨드랑이, 허벅지 안쪽, 스포츠 브라 밑 등은 물에 젖었을 때 쓸림으로 따가울 수 있으니 충분히 발라주었다.


7) 1회용 우비

출발 대기 시에는 1회용 우비를 입고 출발 직전에 벗거나 뛰다가 벗으면 체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회 당일 아침, 비가 내렸다. 전주에서 보성까지 이동하는 동안에는 비가 더 많이 내렸다. 남편은 운전하면서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데 정말 대회를 하냐'라고 계속 물어보았다. 주최 측에서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기에 당연히 한다고 생각하고 보성을 향해 갔다.


그러나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염원 덕분인지, 출발시각이 다가오자 다행히도 비가 그쳤다. 땅은 젖어있었지만 비가 내린 덕분에 공기는 청량하고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다. 또다시 러닝에 대한 설렘과 그로 인한 흥분감이 나를 감싸온다. 어서 달리고 싶다.


지난번 대회도 그렇지만, 이번 보성 마라톤에서도 출발시각에 간당간당하게 도착했다. 오히려 조금 늦어서 나는 하프 마라톤인데도 10km와 같이 출발했다. 다음에는 좀 더 여유 있게 도착해서 스트레칭을 하고 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난번에 출전했던 금산 코스에 비해 보성은 도로가 넓었다. 도로가 넓어서 늦게 출발했음에도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고 여유 있게 러닝을 즐길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뛰면 에너지를 얻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달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시야가 좁아져 약간의 불편함도 있다. 마라톤 코스별 신청자수를 비교해 보면 보통 5km 신청자 수가 가장 많고, 그다음이 10km, 하프, 풀 순이다. 10km 반환점을 지나니 달리는 사람 수가 확 줄어들었다. 시야가 확 트였다. 갑자기 속도가 난다.


비가 내린 뒤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마치 세상이 다시 태어난 것처럼 맑고 투명한 느낌이 들었다. 촉촉하게 젖은 잎들은 초록빛을 더욱 짙게 머금었고, 나무 사이사이로는 갓 씻긴 하늘이 보였다. 달리면서 얼굴에 감기는 차가운 공기에서 물기 어린 흙내음이 느껴졌다.


나는 그 길을 달리며 온몸으로 자연의 숨결을 느꼈다. 비로 씻긴 세상 위를 가볍게 나아가는 이 순간, 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흘러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달릴 때마다 얼굴과 온몸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이 너무 좋다.
나는 이 느낌이 좋아서 러닝을 한다.
그 바람은 나의 마음을 씻기고 비워내고 다시 채운다.
마치 바람으로 나의 마음을 샤워하는 기분이다.



이런 기분에 취해서 달리니 속도가 났다. 더 강하고 더 차가운 바람을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속도를 더 높였다. 숨은 거칠어졌지만, 심장은 더 뜨겁고 빠르게 뛰었다. 내 마음이 행복으로 충만해지는 기분과 동시에 자유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중간에 속도를 너무 냈던 탓인지 마지막 1km에서 지난번 대회만큼 속도를 많이 내지는 못했다. 피로감도 느껴졌다. 하지만 끝까지 완주했고, 끝까지 달려냈다.


기록은 1시간 53분!!!


지난 대회보다 10분 이상 단축했다. 사실 이번 대회에서는 2시간 이내에 들어오고 싶었다. 왜냐하면, 풀코스 신청을 위해서는 하프 2시간 이내 기록 혹은 풀코스 5시간 이내의 기록이 있어야 한다. 올해 풀코스 완주가 목표이기에, 하프 2시간 이내의 기록이 필요했다.


마라톤 대회를 나가본 사람들은 안다. 평소 혼자서 달릴 때보다 마라톤 대회에서는 더 잘 달려진다. 그것을 대회뽕(?)이라고 한다던데.. 이날 나는 대회뽕을 단단히 받았던 것 같다.


대회의 후유증은 1주일 정도 갔다. 처음에는 골반이랑 허벅지가 아팠다. 2~3일 뒤에는 갑자기 발목이 아팠다. 지난번에는 종아리가 땅기더니, 이번엔 종아리가 괜찮다. 근력이 생긴 건가? 나름 만족감을 느끼며 1주일간 러닝을 쉬었다.


나는 운동신경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빠르게 달리는 건 잘 못한다. 학창 시절 운동회에서도 달리기만 하면 늘 꼴찌였다. 빠른 달리기는 어느 정도 타고난 신체 능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에 비해 오래 달리기는 꾸준히 훈련만 한다면 누구나 해낼 수 있다. 내가 마라톤을 좋아하는 이유다.


지난번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달렸다. 빠르지 않아도 좋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출발선에 서고 결승선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그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완주란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이겨낸 끝에 찾아오는, 자신에 대한 작은 믿음과 커다란 기쁨이다. 나는 그 기쁨을 아이들의 마음속에 심어주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출발하지만, 나는 굳이 속도를 맞추지 않는다. 나는 나대로 달리고,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속도로 달린다. 남편은 내가 아이들을 버리고 내 운동에만 집중한다고 나를 비난(?)한다. 하지만 나에게도 다 생각이 있다.


함께 출발하지만, 달리는 길은 결국 각자의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스스로 페이스를 찾고, 넘어지기도 하고,
혼자서 다시 일어서며 달리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
누군가의 뒤를 쫓기보다는 자기만의 호흡과 리듬으로 완주하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법을 익히길 바란다.



내가 먼저 나를 위한 러닝을 즐길 때,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달리는 즐거움’을 발견한다고 생각한다. 함께 있지만 의지하지 않고, 응원하지만 간섭하지 않는 그 거리감 속에서 아이들은 조금씩 독립된 개체로 성장해 간다. 그리고 완주 후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아이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각자의 길을 스스로 달려온 그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엄마 아빠와 함께 도전한 이 시간들이 아이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작은 용기의 씨앗이 되었으면 한다. 오늘도 우리는 함께 달리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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