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러닝과 페이스 조절하기
드디어 대망의 11월 8일, 해남 풀코스 마라톤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풀코스 마라톤은 나에게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내가 20대였던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특별한 준비 없이 가벼운 조깅 수준의 운동만 하던 나는 첫 마라톤을 풀코스로 출전했다. '일단 경험부터 해보고 시작하는' 지극히 나다운 선택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무모함과 순수함이 공존하던 시절이다.
서울의 청계천을 달리는 대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33km 지점에서 결국 버스를 탔다. 3월 초, 그날 하필이면 꽃샘추위가 매섭게 몰아치던 날이었다. 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그 당시의 나는 걷다 뛰다를 반복하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거의 걷다시피 했고,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걷기에 그날 날씨는 너무나도 추웠다. 콧물이 흘러서 얼어붙을 정도의 차가운 날씨. 그렇게 나는 첫 풀코스를 포기했다. 이후 3~4번 정도 하프 마라톤을 하다가 결혼 후 출산하면서 달리기를 자연스럽게 접었다.
그러다가 작년 육아휴직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매일 5km 이상 꾸준하게 달린 지 어느덧 만 2년이 조금 넘은 것 같다.
1년 정도의 러닝 후 올해 3월부터 지금까지 하프 마라톤 3회, 10km는 2회를 완주했다. 달릴 때마다 매번 최선을 다해서 뛰었기 때문에 기록이 더 좋아지긴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달리기 마일리지는 배신하지 않는다. 매번 달릴 때마다 기록이 단축되었다. 3월 첫 하프를 2시간 5분에 완주한 후, 5월은 1시간 52분, 최근 10월에는 비가 많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1시간 51분으로 그전보다 1분을 단축했다.
나는 달릴 때 거의 시계를 보지 않는다. 그냥 최선을 다해서 뛸 뿐. 기록 단축을 목표로 훈련하지도 않는다. 그냥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가능한 오래 달리고 싶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나의 러닝 실력이 늘어남이 기록에서 보인다. 그리고 10월 올해 마지막 하프에서는 달린 후에 후유증도 별로 없었다. 첫 번째 하프 완주 후에는 종아리 발목 골반 엉덩이.. 전체적으로 하체 상태가 말이 아니었는데.. 내 몸이 강해졌음(?)이 느껴진다.
이제 올해 마지막 도전인 11월 8일 풀코스가 남았다. 20년 전의 내가 포기했었던 풀코스에 대한 재도전이라 감회가 남다르다. 솔직히 풀코스를 5시간 이내 완주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번 대회 나의 목표는 절대 걷지 않기!
느리더라도 온전히 달리기만으로 42.195km를 완주하는 것
으로 세웠다.
퇴근 후 저녁마다 6~7km씩 달리던 나는, 풀코스 2주 전부터 점심 러닝을 추가했다. 훈련도 이유이지만 무엇보다 가을이다!! 회사 사무실에서 창밖의 단풍과 파란 가을 하늘을 볼 때마다 매번 생각을 한다. 아마 모든 러너들이 같은 생각을 하지 않나 싶다. "이런 날씨에는 밖에서 뛰어야 하는데.."
10월 말 저녁 바람은 차다. 거기다 7시 이후는 해가 져서 어둡다. 어두운 밤길을 달리면 공원 바닥 조명과 다가오는 자전거 조명이 눈을 때린다. 나는 햇살 아래에서 청명한 가을 하늘과 공기를 그대로 느끼며 달리고 싶었다. 그래서 점심 러닝을 시작했다.
평소 나는 인터벌이나 빠른 페이스의 달리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가끔 컨디션이 너무 좋아서 날아갈 듯 몸이 가벼울 때만 5분 초반대로 달린다. 하지만 대부분은 6~7분대의 느린 페이스로 뛴다. 만에 하나라도 무릎이나 발목에 무리가 오면 안 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나는 빨리 뛰는 것이 아니라 아프지 않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달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을의 공기와 하늘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천천히 달리는 시간을 온전히 즐겼다.
매일 점심과 저녁 두 번을 달리다 보니 하루 약 10~15km를 달릴 수 있었다. 점심 러닝 후에는 가볍게 물샤워만 하고 핑거푸드나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다. 2주간은 점심 약속을 최소화하고 달리기에 집중했다.
점심시간마다 선선한 공기 속을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달린다. 이보다 더 좋은 힐링이 있을까 싶다. 더욱이 요즘은 기지제 곳곳에 단풍이 내려앉았다. 눈도 마음과 함께 즐겁다. 달리다 보면 생각은 잔잔해지고 고요해진다. 일상의 스트레스도 바람과 함께 흩어진다. 달리면서 2주 후의 풀코스를 완주하는 나를 상상한다.
대회 2주 전부터는 자전거도 타지 않았다. 혹시 모를 부상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3일 정도 연속해서 달리면 하루나 반나절은 쉬어주며 몸의 리듬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날 대회를 위해 새로 구매한 아이템(?)들을 모두 장착해서 그날의 복장과 같은 상태로 뛰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대회 3일 전부터는 식단도 조절했다. 탄수화물을 중심으로 섬유질과 지방, 단백질을 점차 줄여나갔다. 하루 전날은 거의 탄수화물만 먹었다. 파스타와 떡국이 주 메뉴였다. 특히 떡국은 사골육수 베이스라 수분과 염분 보충에도 좋았다. 대회 하루 전날은 두 끼를 떡국으로 해결했다.
대회 3일 전쯤 이상한 꿈을 꾸었다. 늦잠으로 대회장에 늦게 도착했다. 심지어 날씨는 비도 오고 바람도 엄청 분다. 에너지젤을 담은 힙쌕을 집에 두고 왔다. 심지어 늦잠을 자서 무릎 테이핑도 하지 못했다. 달리려고 보니.. 운동화가 아닌 삼선슬리퍼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내가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다 잠에서 깼다. 내가 긴장하고 있나 보다.
대회 2일 전에는 출근 전 5km를 뛰고 쉬었다. 사실 그날 출장이라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잘 된 셈이었다. 대회 전날에는 기지제를 플로깅 했다. 그동안 나를 품어준 러닝 코스를 걸으며, 즐겁게 달리기를 할 수 있게 해 준 기지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쓰레기를 주웠다. 그리고 저녁에는 둘째 현수와 사우나에서 근육을 풀었다.
대회 전날 밤, 아이들과 함께 다음 날 입을 옷과 준비물을 챙겼다. 며칠 전 꿈에서 준비물을 통째로 두고 대회에 출전한 경험(?) 덕분에 이번에는 빈틈없이 잘 챙길 수 있었다.
이번 대회도 아이들과 함께다. 엄마는 풀코스, 첫째 중2 아들은 하프, 둘째 초4 아들은 5km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남편은 우리의 로드매니저다. 해남까지는 차로 2시간 반이 걸리기 때문에 새벽 5시 반에는 출발해야 한다.
자기 전 피부 쓸림을 방지하기 위해 아이들과 몸 구석구석 바셀린을 꼼꼼히 발랐다. 내일 가장 고생할 발은 특별히 어루만지며 듬뿍 발라 주었다. 발톱도 길진 않는 지 확인한다. 그리고 내일의 레이스를 상상하며 천천히 잠에 든다.
** 마라톤 전날 체크리스트 **
1. 발톱 깍기
2. 몸 구석구석 바세린 바르기 (발포함)
3. 내일 입을 의상 모두 챙겨놓기 (모자, 일회용 우비, 상하의, 운동화, 발목보호대, 양말 등)
4. 에너지 젤
5. 테이핑 준비 (가위 포함)
6. 저녁 식사는 소화 잘되는 탄수화물 중심 & 내일의 간단한 아침 (바나나 등)
7. 충분한 수분 보충 (조금씩 자주)
8. 레이스 후 갈아입을 여분옷
9. 워치 충전
10. 배번 & 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