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내가 좋아했던 청하, 이름 그대로 청아한 그릇 모양의 넓은 입구를 가진 맑은 잔에 따라먹으면 내 마음도 덩달아 넓어졌다.
이렇게 다양한 술이 각자의 특별한 옷을 입고 나의 목 안쪽을 유유히 적실 때 충족되고 술 먹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잔에 대한 글을 쓰고 보니 나는 정말 술을 즐기고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주방 정리를 하다 술잔들이 모여있는 공간을 보았다. 금주 전 사용했던 예쁜 잔들이 있다.
맥주잔, 와인잔, 소주잔, 소맥잔 등등 속이 훤히 비친다.
이제는 술잔이 아닌 예쁜 유리잔들이다. 아직 반짝반짝함을 간직한 채 잠들어 있는 잔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할 일 없이 얌전히 있구나. 그래도 예쁘다. 너희들.
와인잔을 꺼냈다. 물을 따른다. 투명한 잔에 투명한 물을 따르고 엄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을 모아 잔의 얇은 몸 통을 꼭 잡고 마셨다. 와인옷을 입은 물. 빨간 물의 삽싸름한 맛은 아니지만 평소에 먹는 물과 느낌이 다른 맛이다. 괜찮다. 와인을 먹을 때 미처 몰랐다. 와인은 먹을 때 잔에 꽉 차게 따르지 않아서 몰랐었던 것 같다. 조그맣게 보이는 잔에 물의 양이 이렇게나 많이 들어가는 줄.
항아리의 옷의 와인잔, 생각보다 넉넉히 품는 큰 녀석이었다. 편하게 물컵으로 쓰기에는 불편하지만 가끔 특식을 먹을 때 물컵으로 쓰면 분위기 전환에 딱이겠다 생각 들었다.
와인옷을 입은 맑은 물
와인잔에 꼭 와인만 먹으라는 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며 그 틀을 깨 보기로 했다. 잔들에게 창의성으로 생명을 불어넣자. 소맥잔에 견과류와 요거트를 넣어 먹고, 맥주잔에 포도를 넣어먹었다. 다르게 사용해 보니 특이하고 재미있다. 창조하는 습관이 길러진다.
촐랑대는 견과류를 품은 당황한 소맥잔
2 곱하기 2는 4가 아니다.
4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는 도스토옙스키도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카뮈도, 앙드레지드도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신기할 정도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2 곱하기 2는 4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나만의 답을 찾아보라고 말한다. 그게 5가 될 수도 있고 23이 될 수도 있고 498이 될 수도 있다.
나만의 직관으로 나만의 2 곱하기 2의 해답을 찾으라는 말이다.
고명환작가의 '고전이 답했다' 중에서
남들이 말하는 어느 정도의 술은 좋다! 술이 있어야 인생이 즐겁다! 좋은 음식에 술이 있어야 한다! 하는 개념(2+2=4) 이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