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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이년생 꼰대 May 08. 2021

음치

 “사랑하는 21학번 신입생 여러분,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우리 대학은 고심 끝에 1학기 전면 원격 수업을 결정했습니다.”

 꽃 하나에 MT와 꽃 하나에 이성과 꽃 하나에 설렘을 가질 3월, 방구석에서 사이버 강의나 듣자니 생긴 괴벽이 있다.          


 집안사람들이 하나둘 나가면 내 방은 자그만 콘서트장이 된다. 방금까지 조신한 나는 어머니의 출타까지 확인하고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쥐던 샤프를 마이크인 체 대용하고 짐짓 베테랑 가수처럼 자세를 잡는다. 앞에 네 발로 앉은 몽이 씨가 유일 관중, 콘서트의 텅—빈 허전감은 곱절이다. 급기야 나는 상상 속 관중까지 한 백여 명 소환해 몽이 씨 앞뒤로 빽빽이 펼쳐놓고 만다.

 “조았쓰! 이제 mr을 틀어보잇?”          


 ▷을 터치하니 손 떼기 무섭게 휴대폰 똥구멍에서 음들이 휘청휘청 겨 나온다. 음들은 곧 악마의 전주로 합된다. 그리고 시작하는 변신. 나는 전주에 맞춰 마치 닥터 지킬의 발작처럼 차마 나라고 부를 수 없는 누군가를 내 안에서 솟도록 부추긴다. 한 10초 걸려보잇? 누런 셔츠에 가르마를 탄 채 솟아난 그가 나를 흔적도 없이 삼키는 것이다. 그리고선 내가 쥐던 마이크를 뺏어 태연히 열창하는 그.        

   

 “때론 가슴도 저리겓찌이이이 외로우무로오오오.”

입을 허업 벌린 그가 큰숨을 들이고 발성을 내친다.

 “사랑핻—

 찌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안!”    

      

 서른 즈음의 울림 많고 한 많은 목소리가 <사랑했지만>을 완창한다. 노래가 끝나자 그는 꺼지는 촛불처럼 움츠러들더니 나를 도로 뱉는다. 다시 마이크를 쥐고 서 있는 나. 변신은 그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찌 김광석만 돼보잇?”

이번엔 임재범이 되어 무심하듯 흥겹게 골반을 투욱투욱 튕기며 <이 밤이 지나면>을 불러보고, 전람회의 김동률로 변해선 골 깊은 저음으로 양양의 서핑족처럼,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음을 자유자재 타보기도 한다.          


 그렇게 두어 곡 부르면 살인 후 하이드가 닥터 지킬의 집으로 허겁지겁 향하듯, 목힘이 다한 나는 어서 오늘의 변신을 수거해야 할 지친 몸이 된다. 겨 나온 음들을 휴대폰에 도로 우겨 넣고, 전방의 뜬구름 같던 관중을 상상의 집으로 귀가시킨다. 

 콘서트장은 다시 조그만 내 방이 된다. 방에는 김동률 대신 숨을 헐떡이는 나, 그리고 언제 드러누웠는지 실눈으로 숨을 쌕쌕 내는 몽이 씨가 있다. 둘의 날숨이 방 공기를 후덥게 데핀다. 그중 인간이란 자는 마이크 둔갑하느라 축축해진 샤프를 책상에 내려놓고 의자에 삐그덕 기대어 눈을 감는다. 이어지는 망상에 푸욱 잠겨보잇······.          


 어느 날 주방에서 양은냄비 뚜껑을 열었더니 팡! 한국 지사로 파견된 K-지니가 튀어나와

 “타인의 능력 하나를 복제해 네게 주겠다! 뭘 갖고 싶던?” 묻거든 

일단 나는 군침이 돌 정도로 탐나는 것들이 많다.

 J-Park의 춤, 빈지노의 스타일부터 손흥민의 축구 실력, 이태준의 문장력, S대 친구의 집중력까지 몽땅 내겐 없는 하나같이 맛스러운 능력임에 침이 꿀꺽 넘어간다. 허나 이 맛난 것들을 치우고 결국 나는 K-지니에게 

 “부디 김광석이니 김동률이니 하는 가인의 가창 능력! 그 하나만을 제게 주소서!” 

파리처럼 손을 싹싹 비비며 읍소할 지경이 눈에 분명하다.


 음치가 가인의 가창력을 갖춘다? 흐헤헤헤. 상상만 해도 무척 설레는 일이다.

 노래를 잘 하니 더는 노래방의 개그맨이 되지 않을 것이고, 음치가 이걸 배워 뭐 하나 싶어 구석에 내친 기타를 다시 집을 것만 같다. 내키면 잘 배운 기타로 대학가에서 버스킹도 해볼 노릇이다. 그리하여 고교 가창 때 추노처럼 내 목에 찍힌 ‘C’ 낙인에는 새 살이 돋고 나의 괴벽, 인간 관중 하나 없는 방구석 변신은 그만 멈추리.

 무엇보다 기쁠 변화는 드디어 가까운 사람 앞에서 노래 한 곡 부를 수 있는 소소함이다. 침대에 눠 노래를 흥얼거리면 그 소음에 “누굴 닮아 어쩜 저리 못 부르던” 혀를 끌끌 차시면서 나를 기이히 보시는 어머니께 <바람기억> 한 곡 쩌렁히 바치는 이 기쁨!

 그리도 마냥 내가 노래를 잘하게 된다면! 흐헤헤헤. 상상만으로도 해볼 일이 참 많아 어느새 등짝땀이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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