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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이년생 꼰대 Apr 11. 2021

꼬마 손님

 피자집 알바를 시작했다.

 꼬마 손님이 오면 마음이 가고 몸도 간다. 계산대 옆으로 살짝궁 빗겨 나와 무릎을 낮춰 꼬마 손님과 눈을 맞춘다.

 "꾹찌 찝원어찌만 쪼요!"

하는 어린 황만근처럼 꼬마 손님도 당차고 막힘없이

 "뽀떼이또 삐짜 하나 쪼요!"     


 그 당차고 막힘없는 주문 뒤에 숨은 상기와 떨림을 나는 안다.

 잠시 꼬마 손님에게 어릴 제 나를 비춘다. 엄마의 계란 두 판 심부름을 이고 가게로 가는 길 내내 콩닥콩닥, 가게에 들어서면 이방인의 출입으로 느껴 얼굴이 달아올라 계란을 찾는 동안도 콩닥콩닥콩닥, 겨우 계란을 찾아 계산대에 서면 걸리버를 목도한 소인국 주민이 되어 또다시 콩닥콩닥콩닥콩닥, 했던 초등의 나. 그 초등학생을 비추어 꼬마 손님을 보면 그예 마음과 몸이 안 갈 수가 없는 것이다. 혹여 계산대의 걸리버로 보일까 무릎을 낮추고,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이런 조그만 심부름도 제대로 못하냐며 타박을 듣진 않을까 피자값도 두 번 셈하고, 어른 손님은 얄밉게 놓고 가는 영수증이란 것도 구태여 필수품처럼 쥐여 준다.

     

 계산을 마치면 오븐에서 피자가 밀려 나오기까지 족히 10분은 소모된다. 이 인고의 시간을 꼬마 손님은 절대 앉아서 기다리는 법이 없다. 부동의 자세로 서서 그 시선만은 오븐 레일 위 피자의 걸음을 쫓는다. 마침내 오븐 출구로 피자가 밀려 나오면 꼬마 손님은 정승처럼 굳은 발을 떼고선 당장 뛰어나갈 기세로 이번엔 문 옆에 찰싹 붙어서 다시금 정승이로다. 그간 나는 오븐에서 피자를 살포시 테이블로 내려 커팅을 하고 소스칠을 한 다음 피자곽 속에 무사히 안착시킨다. 마지막으로 곽을 묶기 위해 줄을 뽑아 들 때면 한 건 또 끝냈다는 방심이 피어올라 손놀림이 굼떠...지려는 찰나, 마치 마을 어귀부터 외지인을 째려보는 정승의 눈초리가 뒤통수에 아른거려 그 여유를 고쳐먹고 얼른 줄을 쒹—쒹— 휘둘러 곽에 리본을 맺는다.

 "피자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여."

 "감사합..."

건네기 무섭게 꼬마 손님은 언제 열어둔 문으로 전류처럼 새나간다. 그 탓에 ‘니다’는 도로의 버스 한숨 소리에 묻혀 가게 안까지 차마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꼬마 손님이 가네.

 계산대로 돌아온 나는 문득 궁금하다. 피자를 받쳐든 꼬마 손님은 집에 가 제 엄마한테 무어라 말할까? 적지에서 포로를 구출해 돌아온 군인처럼 득의양양한 투로,

 "엄마! 내가 삐짜 가져왔어!"

소리를 지르진 않을까?

 여하간 꼬마 손님이 오면 마음이 가고 몸도 가며 근무시간에 이러한 과대망상도 걸어본다. 고백하건대, 어떤 손님에겐 정맛이 뚝 떨어져 어서 꺼지라는 은연의 응대도 하지만, 꼬마 손님에게 그럴 순 없는 노릇이다. 설령 한 손으로 만 원 지폐 내미는 사춘기 손님이 와도 나는 마음이 가고 몸이 갈 듯싶다. 회색은 아직 하얀색에 가깝기에, 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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