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슉 슈슉. 슈슉 슈슉.
친구 3과 부산에서 2박을 묵고 해질녘에 탄 서울행 KTX. 우리는 노곤함만큼이나 가득히 쌓인 제 폰 안 사진을 돌려 보며 키득키득 댔다. 당초 여행을 계획할 제,
└ 사진 찍는 법 다들 연습해놔ㅋㅋ
└ ㅇㅇ남는 건 사진뿐
└ 아이유 사진법 검색ㄱㄱ
└ 방수팩 챙겼냐? 해운대에서도 찍어야지ㅋㅋ
진즉 톡방에서 남자 4이 다분히 요란을 떤 것이다. 그렇게 연신 찰칵찰칵 대며 얻은 결과물을 돌려보며 지난 2박을 꼭꼭 씹으니 부산이 좋고! 해운대가 좋고! 여행이 좋고! 친구가 좋고! 20이 좋구나! 절로 우러나는 감상이었다.
열차가 경남의 궤도를 벗어날 즈음엔 대화가 팽당하고 하나둘 제각각 편한 자세로 쉬이 곯아떨어졌다. 소강엔 나의 사색만 덩그러니 남아 눈을 감고 검은 장막에 다시금 부산을 켜보는 것이었다.
뽀글뽀글.
저 멀리, 거품 끓이며 달려오는 파도.
“에계, 겨우?”
싶은 파도는 점점 성을 내더니 부글부글, 가득 키운 품에 날 묻힐 듯 진격해선
↘.
“에계, 겨우?”
내 발톱 앞에 코 박는 것이다. 고개 올려 다시 바라본 수평선엔 뽀글뽀글, 새것이 또 죽으러 옴에 아! 나는 춥다. 숨 죽어나도 주야장천 부활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달려오는 저 파도의 한숨이!
건달처럼 침 찍찍 뱉는 슬리퍼 끌며 도착한 세족장에 발목 수심의 물이 고여 있다. 찰 줄 알았건만, 물이 귀하던 적엔 닦은 세숫물이 발에 부어지듯 뜨뜻미지근하다. 온각은 머리로 하여금 전국각지에서 와 물을 휘젓고 간 발들의 수량을 계산케 한다. 그리고 나온 수량에 서울 팔족(八足)도 더해보이.
“서울에서 와써예? 며 뿌이요? 넷이라꼬? 열로 안짜예.”
조금 기다리니 냄비가 불에 오르고 조금 더 기다리니 그 머리가 열린다.
팡!
도깨비 방망이 뚝딱 친 듯 연기가 솟고 그 아래 감춰진 보배란 풍선처럼 부푼 낙지, 혈 아닌 유유(流油) 사태의 곱창, 나체로 누워 홍당무 된 새우임이 분명하다. 불식간 오르는 대선주(大鮮酒)의 취기가 대뇌로 향하려는 차! 검은 장막이 걷히고 눈 때리는 LED 전등에 나는 이렇게나 외쳐 보는 것이다.
“마! 뿌산 아이가!”
시청미촉각의 기억은 열차에 냉큼 부산을 실었다. 한데 너 하나의 기억은 왜 저것들만치 냉큼 나타나지 못하느냐. 맞은편 잠든 친구의 안면을 치어다보며 골몰하다 그의 징그러울 정도로 새하얀 입가에서 마주친 답.
실로 코로나 2년 차 여름에 부산 여행이었다.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을 지키느라 서울에 놓고 온 미안한 친구도 몇. 그리 도착한 부산, 바닷물에도 우리는 새하얀 피부로 코와 입의 숨을 덮어야 했다. 그 탓에 부산의 냄새는 어딨던가. 기껏해야 잔을 입술에 댈 때 들인 알코올 냄새와 모텔방의 비릿한 물내만 기억이지 않더냐.
낮 2시 해운대 냄새, 저녁 7시 그 앞 저잣거리 냄새, 새벽 6시 동백섬 냄새, 낮 3시 흰여울 골목길 냄새, 새벽 4시 다시 거기 해운대 냄새. 우리는 분명 그 시간 그곳에 있었지만 그들의 냄새는 없던 것이다.
후각의 기억은 나 모르는 사이 인체에 오래오래 숨는다는데, 냄새 없는 부산 여행은 쉬이 기억 말소되진 않을까 울컥 걱정을 갖다가, 딴은 냄새 없는 곳이 어디 부산뿐이랴 서울, 도쿄, 뮌센, 뉴요크 다! 그래 조소를 져본다.
슈슉 슈슉. 슈슉 슈슉.
서울로 오르는 빠른 열차 안, 나는 이 역병을 힘껏 원망해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