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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이년생 꼰대 Jun 27. 2021

철봉

 인스타그램에 운동을 시작한다는 사진이 꽤 보인다. 헬스장 거울 앞에서, 아니면 동네 달밤을. 20살이 되어 급식 냄새 밴 곤색 후리스를 벗어던지니 비로소 성인으로서의 몸매를 벚꽃과 초록 그 사이 날에 직시하나 보다. 5월, 나에게도 그날이 불현듯 걸어왔으니.      


 나흘 전인감? 화장실 문턱에 올랐다가 희끗한 세면거울에 비친 어깨선을 보았다. 뒷목에서 늙은 나뭇가지처럼 갈라 내린 두 좁길. 개미 새끼도 영 시시해 걸을 맛 안 날 정도의 좁짧은 어깨라. 실화인감? 눈 크게 키고 헐레 웃통 벗고 다시금 거울 앞에 내보였건만 괜히 심각한 감상만 더했다. 어깨 각자 내 머리 한 통 못 실을 것 같았다.

 그날부로 확장 공사를 결심했다. 곧 해병대에 입영하는 친구의 어깨처럼, 고속도로같이 뻗쳐있으며 그 노면은 온갖 근육으로 포장된 정도는 진정 바라지 아니하고 최소껏 머리 한 통씩은 버젓이 실을 정도로 확장코자 한 것이다. 공사는 그 저녁 뒷산에서 바로 착수. 산이라곤 민망할 정도의 언덕을 5분 겨 오르면 레그프레스니 벤치프레스니 번쩍한 운동기구가 널려있지만 나의 시선은 오직 두 다리 굳게 박힌 저것으로 달린다. 전쟁통 폭격에 초목과 기구는 다 뽑혀나도 저 두 다리만은 뿌연 먼지 속에서 비릿한 쇠내음 풍기며 꼿꼿이 서 있을 철봉.      


 철봉은 진즉 친근한 것이었다. 초등 시절 삼삼오오 모인 여학우 앞에서 철봉에 다리 걸고 몽키처럼 거꾸로 매달리면 답보로 “꺄르르르” 웃음소리를 받던 유쾌한 기억을 살리며 이게 별건감? 호기롭게 봉을 잡았다.

 “호이이잇촤하” 힘껏 당기어 오르는데

 .

 .

 .

 “악!”

대지에서 발사한 지 5초도 채 못 가 신음 지르며 추락하고 말았다. 아으아, 나는 당황했다. 여학우와 철봉은 한낱 호접지몽이었나! 믿기지 않아 다시 한번 봉을 잡고

 “오이이잇촤하”

 .

 .

 퍽!

더 빨리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게 “호이이잇촤하”와 “오이이잇촤하”를 번갈아 내고 그 중간에 “악” 소리까지 끼면서 깔짝깔짝 몇 세트 해냈다. 이 내 모습을 뒤에서 허리를 돌리고 계신 어르신의 시선에 들어가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페에엥 저 점눔이 쯧쯧” 타령이 절로였다. 

 그래도 열흘째인감? 오늘도 뒷산에 오른다. 봉을 잡기 전 두 손을 펴 본다. 중지 시작마디에 굳은살이 붙었다. 체내야! 체내야! 어서 내 옹졸한 어깨에도 변화를 주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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